[인터뷰] 전문 패션 디자이너와 MD가 게임 만들게 된 사연

입력 2020.05.18 06:00

패션 디자이너·MD라는 직업과 게임 회사는 일반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연결고리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데브시스터즈의 개발자회사 루비큐브에서는 디자이너와 MD가 각 2명, 옷을 3D로 구현하는 모델러가 8명이나 일한다.

패션계 종사자가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는 4월 16일 선보인 스타일링(꾸미기)게임 스타일릿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다. 이 게임은 출시 시점부터 2000종쯤의 의상·소품을 선보였다. 게임 내 패션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실제 패션 업계 경험자가 직접 뛰어든 것이다.

(왼쪽부터) 여현동 루비큐브 서비스디자인팀장, 조혜진 디자이너, 허윤아 MD의 모습 / 오시영 기자
게임 개발 초기만 해도 게임과 패션은 서로 잘 모르는 분야였다. 실제로 여현동 서비스디자인팀장은 스마일게이트 등에서 일하며 격투게임, 역할수행게임(RPG) 등 코어 게이머 위주의 게임을 주로 개발한 탓에 패션이라고는 전혀 몰랐다. 허윤아 MD는 반대로 RPG, NPC 등 기본적인 게임 용어도 모를 정도로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하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평생을 게임만 만들던 ‘아저씨 개발자’도 최근에는 서로의 옷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현동 팀장도 "게임 개발을 시작한 지 2년 반쯤 됐는데, 전문가 옆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패션 전문 용어도 잘 알게 됐다"며 "아내가 외출할 때 입을 옷을 나에게 물을 정도"라고 말했다.

패션 디자이너와 MD를 포함한 스타일릿 개발팀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패션의 본질이다. 그동안 다른 게임에서는 옷에 등급을 책정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탓에 ‘파워가 강한’ 옷을 구매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닌자 장갑에 드레스를 착용해도’ 스테이지를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일릿은 다르다. 디자이너, MD 같은 전문 인력이 오로지 예쁜 옷을 만든다는 목표로 의상을 만들면 개발팀에서 이를 바탕으로 즐길 거리를 만들어 제공한다. BM이나 게임 설계를 위해 예쁜 의상을 만든다는 본질을 해치는 일을 최대한 방지한다.

IT조선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루비큐브 사옥에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여현동 서비스디자인팀장, 의상 콘셉트를 기획하고, 만든 의상을 상품화하는 허윤아 MD, 콘셉트에 맞는 의상을 직접 디자인·구현하는 조혜진 콘셉디자이너를 만나 패션 업계 종사자가 게임을 만드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게임 내 소셜 기능으로 다른 이용자와 소통하는 한 게임 이용자의 모습 / 오시영 기자
―MD,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어떻게 되나, 게임사에 입사한 계기가 궁금하다.

조혜진 디자이너 어렸을 때부터 만화, 게임 캐릭터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에서는 섬유 디자인을 전공한 탓에 침구 전문회사에서 패턴 드로잉 일을 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좋아하던 일이 계속 생각나서 게임 관련 학원을 등록하고, 스타일릿 프로젝트를 접해 참여하게 됐다. 지금은 스타일릿 캐릭터가 입는 의상을 디자인하는 덕에 전공과 흥미를 동시에 살릴 수 있게 됐다.

허윤아 MD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MD 일을 시작해 SK네트웍스, 로러스 인터내셔널 등 패션 회사에서만 6년쯤 일했다. 이후 일을 쉬는 기간에 복직할 패션회사를 찾다가 루비큐브에서 내 이력서를 보고 제안을 주셨다. 게임 회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입사하게 됐다.

조혜진 디자이너의 / 오시영 기자
―실물 상품을 대상으로 디자인·MD 업무를 할 때와 게임 아이템을 대상으로 할 때 차이점이 있나.

조혜진 디자이너 게임에서 활용하는 의상은 시스템 상 한계로 구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우터 중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의상이다. 이 탓에 상품을 디자인 하는 과정에서 ‘작업 지시서’를 쓰게 되면 실물 상품의 경우 100% 지시대로 나오지만, 게임에서는 실제 작업자가 구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수정하게 된다.

허윤아 MD 사실 실물 상품을 대상으로 MD 업무를 할 때와 크게 보면 비슷하다. 하지만 체형과 옷의 판매 성적에 따른 추가 생산, 재고율 등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게임에 옷 판매 데이터가 전부 쌓이는 데다가 이용자가 피드백에 더 적극적이므로 이를 확인하기는 더 쉽다.

―게임에 사용하는 옷은 옷은 기존 브랜드옷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제작하는 것인가.

허윤아 MD 옷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우선 MD가 콘셉트를 잡는다. 이를테면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으니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느낌 옷을 만들어주세요’ 같이 부탁한다. 디자인 팀에서는 이를 듣고 콘셉트에 맞는 레퍼런스를 다수 참조해 실제로 옷을 디자인한다.

여현동 팀장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직은 접촉한 곳이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해보고 싶다.

―게임 내에서 인기 많은 아이템을 실물 상품으로 만들 계획이 있나.

여현동 팀장 게임 기획 내용에 따르면, 제품 초기 서비스가 안정화되면 추가적인 확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갈 예정이다. 다만 아직 출시 초기이므로 처리할 일도 많고 저변 확대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

조혜진 디자이너 스타일릿은 의상을 디자인할 때 실제로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므로, 실제 제품으로 만든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MD의 경우 실물 상품을 다룰 때는 특별 기획전 같은 것을 열기도 하는데, 게임에도 그런 것이 있나, 게임 내 의상 설명은 MD가 직접 추가하는 것인가.

허윤아 MD 게임 내 ‘프리미엄 샵’이라는 상점에서 선구매 혜택으로 사은품이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거나, 마치 현실처럼 반짝 세일이나 기획전을 열기도 한다. 상품 설명의 경우, 담당자와 함께 적는다.

허윤아 MD / 오시영 기자
―스타일릿은 한 달에 패션 아이템 200개쯤을 추가할 계획이라던데 너무 많아 힘들진 않나.

조혜진 디자이너·허윤아 MD 게임 아이템이 많을수록 이용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이고, 이용자 다수가 바라는 사항이기도 해서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선보이고 싶다. 우리를 포함해서 옷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내부 인력은 디자이너 2명, MD 2명, 모델러 8명쯤으로, 많은 분들이 작업에 참여한다. 최선을 다해 새 아이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현동 팀장 일부 2D 꾸미기게임은 사진을 후보정(리터칭)해서 아이템을 손쉽게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전혀 다르다. 의상을 만들 때는 정말 최선을 다해 만든다. 신발 안쪽에 있는 깔창과 디자인까지 전부 직접 구현할 정도다.

―스타일릿은 실제 원단 질감을 게임에 구현한 점을 홍보했다. 어떻게 구현한 것인가.

여현동 팀장 스타일릿 개발팀은 자체 연구 개발(R&D)을 통해 원단 질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셰이더(게임 픽셀의 위치와 색상을 계산하는 도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엔진은 실시간으로 옷을 겹쳐 입었을 때 어떻게 될지를 계산한다. 시스루, 프릴 같은 여성의 일반적인 옷차림을 게임으로 구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영역에서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조혜진 디자이너 자수에 들어가는 오버로크, 악어백의 악어 무늬를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직접 그린다. 게임에 알맞은 그래픽으로 세부사항도 모두 살릴 수 있어 수작업을 선호한다.

여현동 팀장 / 오시영 기자
―게임 콘텐츠 중에는 주제에 맞는 패션 감각을 뽐내고 서로 평가하는 ‘콘테스트’ 기능이 있는데, 전문가가 보기에 이용자의 패션 감각은 어떤지.

조혜진 디자이너 콘테스트를 고려해 코디 세트 단위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제로 콘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용자를 보면 생각지도 못한 코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재야의 고수’와 해외 이용자를 보고 우리도 많이 배우는 편이다.
허윤아 MD 화면을 꾸미는 용도로 제공했던 검은 스티커를 절묘하게 배치해 패션 타투처럼 이용하는 게이머를 보고 모두들 놀라워했다. 이용자는 항상 우리 상상 위에 있는 것 같다.

여현동 팀장 향후 전문가가 이용자 코디를 보고 ‘에디터 픽’처럼 알려드리고 싶은 내용을 골라 잡지 한 페이지처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한다.

―대형 업데이트가 있다면, 어떤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을까.

여현동 팀장 가장 우선하는 것은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꾸미고 평가받는 ‘리퀘스트’의 추가 콘텐츠, 퀴즈 콘텐츠를 기획한다. 이용자의 게임 플레이 발자취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업적 시스템도 준비한다. 또한 이용자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리퀘스트 문제를 출제하는 시스템도 생각 중이다.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포즈, 소품, 친구와 함께하는 동영상, 사진 콘텐츠, 재화 수급 콘텐츠 등도 연구·개발 목록에 있다.

―스타일릿 이용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여현동 팀장 게임 출시 이후 새 취미가 생겼다. 저녁에 게임 리뷰를 읽는 것이다. 남성향 게임에서는 과격한 리뷰가 나오기 마련인데, 게임의 발전 방향이나 감상에 대해 굉장히 섬세하게 써주셔서 도움이 많이 된다. 심지어 게임을 만들어주셔서 고맙다는 반응도 봤다. 행복하다. 게임 이용자 여러분이 재미있게 즐기시고, 패션 센스도 올리는 계기로 삼으신다면 좋겠다.

허윤아 MD 향후 추가할 새 콘텐츠와 예쁜 옷이 아주 많다. 계속 기대해주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조혜진 디자이너 나도 한 사람의 이용자로서 게임을 하면서 평소 입어보고 싶던 옷을 캐릭터에 입히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패션 관련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 앞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아이템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드릴 예정이다. 즐겨주셔서 감사하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IT조선은 6월 2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는 클라우드를 살펴볼 수 있는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 IT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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