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통신맨 유기준이 '게임패드' 만드는 이유

입력 2020.07.13 06:00

유기준 에이케이시스 대표는 1990년부터 금성통신, LG정보통신, LG전자를 거쳐 30년 이상 통신 업계에 몸담은 전문가다. 주로 유럽 지역에서 판매하는 상품 기획이나 전략을 세우는 유통 분야 경력도 갖췄다. 그런 그가 2015년부터 ‘게임패드’ 제작 전문업체 에이케이시스를 이끈다.

평생을 통신맨으로 살아온 유 대표가 게임패드에 집중하는 배경은 뭘까. IT조선은 최근 경기도 안양 인덕원에 본사를 둔 에이케이시스를 방문해 유기준 대표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유기준 에이케이시스 대표가 자사 게임패드를 소개하고 있다. / 오시영 기자
클라우드 게임패드의 핵심은 기기 아닌 ‘통신 기술’

게임패드와 통신은 얼핏 듣기에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두 분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5G 시대 게임 업계의 미래 먹거리는 다름 아닌 ‘클라우드(스트리밍) 게임’인데, 이것이 두 분야간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클라우드 게임은 게임 콘텐츠를 네트워크 상의 서버에서 구동하는 중 개인이 보유한 PC나 스마트폰 등 기기에 화면을 전송해 게임을 즐기도록 하는 방식을 쓴다. 개인용 단말기는 고사양 게임을 직접 구동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게임을 PC나 스마트폰 등 일부 플랫폼은 물론 어떤 기기에서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예를 들어, 게임 패드에서 게이머의 손놀림을 신호로 만들어 서버로 보내는 고도의 통신 기술을 쓰면 클라우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유기준 대표는 게임패드 사업에서 통신 사업자가 유리하다고 밝혔다.

그는 "게임패드라고 하면 버튼이나 그립 등 게임패드 기기에 내장한 하드웨어를 떠올리기 쉽지만, 기존 게임패드 표준에 따른 제품의 조작 퀄리티를 어떻게 높이느냐가 중요하다"며 "클라우드 게임 시대 게임패드의 핵심은 신호 정합성(데이터의 값이 서로 일치하는 정도)과 속도, 프로토콜 등 통신기술이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세계 통신 업계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거침없이 ‘클라우드 게임’을 거론했다. 이미 통신 서비스는 쓸만한 사람은 다 쓰는 레드오션 시장이고, 통신사는 가입자당월평균매출(ARPU)를 늘릴 요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5G 등 새로운 통신 규격이 나올 때나 일시적인 ARPU 인상을 노릴 수 있다. IPTV 등 유료방송 시장도 정체기에 돌입한 만큼 게임과 같은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그는 "클라우드 게임은 5G 통신 기술이 상용화하기 전부터 유망 분야였고, 이를 고려해 일찍부터 게임패드 사업을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에이케이시스는 현재 도이치텔레콤, 텔레콤이탈리아를 비롯해 룩셈부르크와 이스라엘 등 국가기간통신사에 게임패드를 단독으로 납품 중이다.

유 대표 "우리 패드는 빠른 반응속도, 호환성이 강점"

유 대표는 자사 게임패드의 장점으로 빠른 반응속도를 꼽았다. 이용자가 게임을 조작했을 때 게임에 해당 조작이 얼마나 빠르게 반영되느냐에 따라 게임 경험이 크게 달라진다. 반응 속도가 느리면 소위 말해 ‘렉(Lag, 지연현상)’이 걸려 게임성을 망칠 수 있다.

초당 60프레임을 보여주는 게임 기준으로, 1프레임이 나오는 속도는 16~18ms(마이크로세컨드)쯤 된다. 에이케이시스의 게임 패드는 평균 14.3ms쯤의 반응속도를 보인다. 1프레임 이내에 조작 신호가 서버에서 처리된다는 뜻이다. 유 대표에 따르면 M사, S사 등 유력 기업의 패드는 반응 속도가 30ms가 넘고, 표준 편차가 커서 비교적 불안정한 면이 있다.

유 대표는 자사 제품의 다른 장점으로 ‘호환성’을 꼽았다. 에이케이시스의 게임패드는 iOS, 맥, 윈도우,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특히 유럽 시장 진출 당시 맥을 지원하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게임패드와 함께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에서 가상 마우스, 저격 조준 등 다양한 기능도 지원한다.

에이케이시스의 게임패드 이미지 / 에이케이시스 홈페이지
유 대표에 따르면 일반 게임을 즐길 때도 경쟁사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시중에 나온 옥토퍼스, 판다 등 외국 게임패드 연동 앱보다 더 깊은 영역에서 입력 신호를 처리하므로 휴대전화에 과도한 권한을 요구하지도 않고, 입력 신호를 터치 신호로 변환하는 데 거치는 단계도 훨씬 적어 속도도 빠르다. 이 덕에 B2C 브랜드 ‘샥스’는 네이버, 다나와 등 각종 판매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유 대표는 예전에 안드로이드 기반 태블릿이라는 개념이 희박했을 때부터 태블릿을 만들어 수출하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실패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패드만 만들던 기업은 안드로이드의 복잡한 구조를 알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며 "우리는 과거 안드로이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경험 덕에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구조를 꿰고 있어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게임패드 업계 ‘업계 표준’ 만드는 기업 되고파

아직 게임패드 통신 분야에는 국제 표준이 없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어떤 신호를 전송할지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이야기다. 유기준 대표는 에이케이시스가 자체적으로 표준을 확립해 여러 나라에 공급하면 사실상의 업계 표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새 기능을 추가해 컨트롤러에 넣어 상용화시킨다면, 마치 탐험가가 새로 발견한 지역의 이름을 정하듯 표준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에이케이시스의 궁극적인 목표가 게임을 포함한 모든 콘트롤러 업계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해외 기업에 싹쓸이되다시피 한 주변 기기 시장에서 우선 ‘메이드 인 코리아’ 붐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다.

그는 "드론, 맨·머신 인터페이스,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는 콘트롤러는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며 "향후에는 물리적인 콘트롤러가 없어도 ‘음성’만으로 조종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데, 이 모든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기준 대표 / 오시영 기자
"클라우드 게임도 넷플릭스에 잠식 당한 OTT 산업 전철 밟을라"

유기준 대표는 한국 게임 업계 발전을 위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넷플릭스’ 등 외국 플랫폼이 점령해버린 OTT시장처럼, 게임계 미래 먹거리인 ‘클라우드 게임’도 외국 플랫폼에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의 차이를 들었다. 갤럭시와 애플은 기기 판매 면에서는 견줄 수 있지만, 애플은 앱스토어 플랫폼을 보유한 점에서 앞서나간다. 2019년 앱스토어에서 발생한 거래액은 626조원쯤 된다. 이는 한국 정부 1년 예산(2020년 본예산 512조3000억원)보다도 많은 수치다.

유 대표는 "좋은 게임패드 장치는 플랫폼과 함께할 때 좋은 성적 낼 수 있는데, 한국에는 적절한 플랫폼이 없다"며 "한국에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유력 게임사가 많은데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사업을 눈 뜨고 해외에 빼앗기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통신사에서 MS, 엔비디아 등 대기업 플랫폼을 들여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한국 통신사 생태계에 플랫폼을 둔 것이 아니라, 기존 해외 플랫폼 생태계에 우리 통신사가 들어간 모양새라 영향력이 적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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