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오면서 전세계 의료계에 근본적인 치매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세계 첫 치매 치료제로 등장했으나 수많은 논란만 낳은 ‘아두헬름’으로 치매 신약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츠하이머. / 픽사베이
알츠하이머. / 픽사베이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다국적제약사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 후보물질 ‘레카네맙(lecanemab)’이 후기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입증했다.

바이오젠은 최근 레카네맙이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글로벌 임상3상(Clarity)에서 주요 효능평가 기준을 충족하며 증상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레카네맙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경도 인지장애(MCI) 치료를 위한 항아밀로이드 베타(Aβ) 항체다. 현재까지 의학계에서는 과다 생산·축적된 Aβ는 끈적한 막인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형성해 뇌와 뇌혈관 주위에 쌓여 알츠하이머를 일으킨다고 보고 있다.

이번 임상시험에서 레카네맙은 치료 18개월 후 임상치매척도(CDR-SB)를 위약 대비 27% 개선해 주요 효능평가 기준을 충족했다. 임상시험에서 22%를 개선했던 아두카누맙이나 23% 개선했던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 임상2상 결과에 비해 개선된 수치다. 레카네맙 치료군은 투약 6개월째부터 CDR-SB값이 유의미하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또한 레카네맙은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통해 평가한 뇌 내 아밀로이드 수치도 위약군에 비해 낮았다. 다른 2차 평가지표인 알츠하이머 평가척도-14(ADAS-cog14), 알츠하이머 복합점수(ADCOMS) 기준도 모두 충족했다.

미셸 보나소스 바이오젠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연구 결과는 뇌에서 응집된 Aβ를 제거하면 질병 초기 단계 질병 둔화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줬다"며 "레카네맙이 승인되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는 동시에 인지 기능도 영향을 줘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를 27% 늦췄다는 점만으로 긍정적이다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카네맙은 지금까지 개발한 치매 항체 치료제 계열 약물 중 가장 높은 효과를 나타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환자에게 사용할 치료제로 보기엔 임상학적 효과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십 년 간 노력을 통해 치매 치료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지만, 아직도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명확하지 않다"며 "레카네맙 등 항체 치료제가 치매 증상 악화를 늦추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손상된 인지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을 완전히 막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노프만 메이요클리닉 소속 임상 신경과 전문의 역시 "레카네맙의 기대감이 충분히 높지만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정도가 다소 낮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할지도 여전히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부 의학계에서는 레카네맙을 단순히 성공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치료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아두헬름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첫 치매 치료제로 등장한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하면서 인류가 치매를 정복 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여러 부작용 논란과 미미한 효과로 인해 실패한 신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15년간 아밀로이드 베타가 알츠하이머를 유발시킨다는 가설로 권위를 인정받은 논문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금까지 연구해온 치매 치료제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제약바이오 업계는 레카네맙 임상을 상당히 고무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번 임상결과를 통해 FDA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산업계와 증권가는 레카네맙의 임상 결과가 23%의 증상 개선 효과를 보인 아두헬름보다 높다는 점을 들며, FDA 조기 승인을 기대할 수 있다 평가하고 있다.

로널드 피터슨 알츠하이머 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결과가 대단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점은 분명 존재한다"며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에 기반한 치료법이 옳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레카네맙 국내 임상에 참여한 양동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27%라는 개선 효과는 지금까지의 모든 약물에 비해 긍정적인 수치다"라며 "알츠하이머 질환의 근본적 원인인 아밀로이드를 직접 제거한다 점도 임상을 통해 어느정도 증명됐기에 충분히 고무적이다"고 답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