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 시장 규제안인 미카(MiCA, Market in Crypto-Assets)가 지난달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를 통과, 본격적인 제도화의 기틀을 닦았다. 유럽 본회의 승인만 남은 상황인데, 최종 투표만 무사히 마치면 2024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미카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상자산을 정의하며 시장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EU는 가상자산 송금 규제, 디파이(탈중앙화금융) 감독 솔루션 연구 등 후속 작업에 분주하다. 자금세탁이나 거래소 규제, 개인지갑 관리 등 제반 논의에도 불이 붙었다.

시장에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며 기대하는 눈치다. 실제 미카 법안 전문 내용에는 "가상자산은 시장 참여자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결제 기회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포함되는 등, 전반적으로 시장의 성장과 안정적인 운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반해 유럽보다 먼저 가상자산 규제 논의를 시작한 미국은 속도가 더딘 편이다. 5월에 터진 테라-루나 사태가 한 몫한 것도 있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간 알력 다툼이 보다 본질적인 이유로 보인다는 게 정설이다. "디지털자산 상품으로 봐야 한다"는 CFTC의 논리에 맞서, SEC는 이를 "증권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금융당국도 일단, "유럽의 미카 법안을 참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김용태 금융감독원 디지털금융혁신국장은 한 세미나에서 "미카 법안 중 가상자산 수탁과 교환 업종에 추가 건전성 규제를 부과한 내용을 참고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을 골자로 하는 가상자산 육성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코인투자 수익을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고, 국내 코인발행(ICO)을 허가하고, NFT(대체불가토큰)거래 활성화하는 등,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새로운 시장에 적극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당정이 내놓은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안에 대해, 업계의 우려가 적지 않다.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사업자에 대해서는 감독, 검사, 시정명령, 영업정지, 고발 등 살벌한 문구가 가득하다. 불공정 거래를 했다고 여겨지는 사업자에 대해 압수수색은 물론, 취득한 재산 몰수, 유기징역, 벌금 등 처벌 조항이 적지 않다.

마침 세계 2위권 거래소인 미국의 FTX가 파산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등, 가상자산 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이러한 당정의 대처에 명분이 붙었다. 실제 미국 법무부까지 FTX의 사기여부에 대해 조사에 나서기로 하는 등, 투자자 보호는 전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이용자 예치금 신탁과 디지털자산 보관, 해킹 등 전산사고에 대비한 보험 및 공제 가입 등 이용자 자산보호가 근간을 이룬다.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게 그 취지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 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투자자보호를 시작으로 그 첫 단추를 꿴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해한다. 업권법이 만들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서는 안된다. 시장의 순기능을 살리는 후속조치가 뒤를 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올 3월부터 트래블룰을 시행, 가상자산 시장의 자금세탁 방지 장치를 시행하고 있는 상태다.

시장을 옭아맨다는 인상을 주면 산업은 후퇴하기 마련이다. 정책금융당국과 정치권이 규제 일변도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글로벌 플레이어를 키울 수 있는, 블록체인의 삼성전자를 키울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으면 한다.

손희동 디지털파이낸스부장 sonn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