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관계자들좀 모아 놓고, 그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 정책을 만들었으면 한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본시장 선진화 초안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하던 중 나온 이야기다.

금융위는 최근 한국거래소, 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정책세미나를 개최하고 자본시장 국제 정합성 제고 관련 정책과제 초안을 공개했다. 해당 검토 초안은 기업공개(IPO) 허수성 청약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증권신고서 제출 전 투자수요 조사를 허용하고 ▲수요예측 기간 연장 ▲주관사의 기관 주금납입능력 확인 제도화 ▲상장 당일 가격제한폭 확대 ▲공모주 매도내역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등이 골자다.

정책과제 초안 발표 후 학계, 업계, 당국이 한자리에 모여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패널 토론자로는 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창화 금융투자협회 증권·선물 부문대표 전무, 전균 삼성증권 이사, 이정의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상본부 상무, 임태훈 신한투자증권 국제영업본부장, 임형준 금융연구원 박사 등이 참석했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나온 공통적인 의견은 "이번 금융위의 검토 초안이 탁상공론과 다름없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사람 중 IPO 시장의 직접적인 플레이어가 아무도 없다는 게 이를 반증한다. 생생한 업계 의견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무리가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20년 말 개편된 균등배정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이번 개편안을 크게 우려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기존 비례 배정 제도에서는 소액 투자가 한 주도 배정받기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 대상 공모주 물량의 50%를 의무적으로 균등배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IPO 호황기 때는 문제가 없지만, IPO 비수기 때는 실권주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제도를 수정 없이 시행했고 그 결과 IPO 시장이 침체된 현재에 반영되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중 총 9개사가 공모 청약을 받았다. 이 중 절반이 넘는 6개 기업이 균등배정에서 실권주가 발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당시 공청회는 운용사, 증권사 등 시장 참여자의 참가 신청을 받아 마련됐고 이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였다"며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각종 의견을 쏟아내도 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정책이 나와 허탈했다"고 말했다.

만약 기존 제도였다면 한 자릿수 경쟁률이 나와도 실권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업계에선 말한다. 오히려 균등배정이 도입되고 난 후부터는 최소 증거금만 넣기 때문에 추가 납입을 하지 않는 투자자도 많아 실권주가 나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가 "주관사와 발행사 모두에게 부담"이라는 말하는 지적에 일리가 있다.

금융위는 업계 의견을 충분히 넣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초안을 마련하면서 단계마다 업계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다"며 "주관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관사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충분히 반영됐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시장을 이끌어 가는 주체에는 투자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 기업은 물론, 주관사와 운용사도 시장을 구성하는 한 축이다. 거간꾼이 없으면 흥정은 누가 붙이겠나. 나름의 고충이야 있겠지만 금융당국은 업계 구석구석을 찾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보다 섬세하게 정책을 설계해 업계 의견 반영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민아 기자 j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