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사이퍼(Decipher): 난해한 문장의 뜻을 판독하다. 암호를 해독하다.

지난달 금융당국이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토큰증권의 발행 및 유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발표 이후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증권형 토큰의 발행이 허용된다는 기대가 가상자산업계는 물론,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기존의 증권업계에도 따뜻한 봄바람처럼 넘실대기 시작했다.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와 비슷한 기대가 넘쳐나는 상황을 예전에도 겪었던 적이 있다. 바로 자산유동화(ABS: Asset Backed Securitization) 붐이 일었던 1990년대 말부터 2007년까지의 시간이다.

자산유동화는 부동산, 매출채권, 기타 유가증권 등 현금흐름이 있지만 유동적이지 않은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다수의 사람들이 취득하는 금융기법을 말한다. 이는 비유동성 자산을 당장 현금화하고 싶은 기업의 수요는 물론, 그러한 자산에 투자하고 싶지만 기회가 없었던 수많은 투자자들의 수요 역시 동시에 충족시키는 금융혁명으로 불리웠다.

이 자산유동화 구조에서 자산 소유자는 그 자산을 특수목적회사(SPC, Special Purpose Company)에 양도하고, SPC는 장부상 그 자산의 보유자가 돼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대신 의무적으로 그 업무와 자산의 관리를 별도의 업무수탁자와 자산관리회사에 위탁하여야 했다.

이렇게 자산 보유와 업무, 자산 관리를 각자 법률로 다른 회사에 맡기도록 의무화했던 이유는, 그러한 역할이 어느 한 당사자에게 집중이 될 경우, 필연적으로 권한 남용으로 인한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즉, 기존의 자산유동화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반하여 필요한 권한을 분산함으로써 서로 견제하게 하여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것에 포커스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토큰증권의 허용은 기존의 자산유동화와는 완전히 다른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 수단을 매개로 하다보니 자산유동화와 같이 불신에 기반한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기술로써 참여자들의 신뢰가 전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자산유동화가 가능하게 한다는 결정적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자체가 참여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하고, 그러한 신뢰를 기술적으로 담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기존의 자산유동화와 같이 번거롭게 자산의 진정한 양도나 업무 및 자산관리의 위탁이 없이도 유동화가 가능한 구조가 된 것이다.

즉, 지금의 토큰증권 허용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하여 모든 자산의 유동화를 가능하게 한, 커다란 한 걸음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우리나라 금융과 증권의 역사에 기술과 금융이 만나 새로운 큰 이정표를 세우는 기회가 될 것임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작은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자산유동화의 붐이 사실상 끝나게 된 것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면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여러 단계의 자산유동화 상품들이 다시 여러 파생상품들로 묶이고 재발행되는 가운데 정상적인 신용평가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꼽힌다.

앞으로 수많은 자산의 유동화를 토큰증권을 매개로 진행하게 되었을 때,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들이 여러 단계로 진화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순간 어떤 괴물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으로 접어들 수 있다.

토큰증권의 활성화에 기대에 가득 찬 지금, 우리가 지난 자산유동화 붐의 쓰라린 기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대표 변호사 jhcho@dcodelaw.com
법무법인 세종 등에서 기업, 부동산 자문과 거래를 18년간 담당했다. 여러 IT기업들과 스타트업을 대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테크놀러지법 분야를 개척해온 변호사다. 현재 법무법인 디코드(D.CODE)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