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토큰증권 가이드라인 발표로 블록체인 업계는 물론, 증권과 미디어, 콘텐츠 등 관련 업계 반응이 뜨겁다. 특히 기초자산의 발행 주체가 될 부동산이나 음악·미술 등 산업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관련 법 제정이 요원한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그나마 사업화를 열어준 사실상의 첫 사례이기는 하지만, ‘증권’으로 규정한데서 보듯 제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업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우리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써의 가능성과 한계, 의미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토큰증권(ST, Security Token) 허용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가상자산 시장과 유가증권 시장 모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발행된 디지털 자산이 ‘증권’으로 인정받게 돼 그간 쪼개팔기 어려워졌던 여러 실물자산의 유동화가 가능해 진 것이다.

지난 달 금융당국은 이르면 내년 토큰증권을 제도화해 자본시장법에 포섭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연내 디지털자산의 증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 규율 체계 등을 정비할 계획이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증권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 증권사를 비롯해 일정 요건만 갖추면 증권화된 ‘토큰’을 발행할 수 있으며, 한국거래소와 장외거래 중개업자들이 유통을 맡게 된다.

실물자산 유동화 확대, ‘대체투자’ 시장 열린다

시장이 주목하는 토큰증권의 가장 큰 장점은 ‘쪼개 팔기’다. 부동산, 신탁증권 뿐만아니라 예술품과 골동품, 한우, 선박까지 개인이 사기 어려운 자산을 여러개의 토큰으로 조각내 조금씩 투자하는게 가능하게 된다.

비싼 자산을 여러개로 나눠 투자한다는 점에서 기존 비상장주식이나 NFT(대체불가능토큰)과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비상장주식은 발행 이후 주주 추적이 어렵고 거래 편리성도 다소 떨어진다. NFT 역시 하나의 자산을 여러개로 쪼개 거래가 가능하나 아직 제도권에 편입된 상황은 아니다.

이에 반해 토큰증권은 24시간 거래되는 유통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할 전망이다. 제도적으로도 ‘투자계약증권’으로 분류, 자본시장법상 규제를 받게 돼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다양한 자산에 투자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토큰증권은 블록체인의 특징인 거래 투명성과 비용 효율화라는 효용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거래를 자동화하는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거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절감한다. 계약 내용은 분산원장에 소유 내역과 법적 책임을 기록해 거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걸음 바빠지는 증권사들…플랫폼 인수도 추진

토큰증권 생태계는 발행사와 유통 플랫폼, 기초자산을 구성하는 실물자산을 가진 업체, 세 가지로 분류될 전망이다. 토큰증권을 발행하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이 신설되며, 증권사와 은행 등이 계좌관리기관이 돼 유통을 맡는다. 투자자들은 증권사, KRX(한국거래소) 산하 거래소 등에서 이를 매매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현재 토큰증권의 유통은 증권사만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향후 발생할 이해상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발행과 유통 주체를 엄격히 분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STO(증권형토큰)을 시범적으로 진행한 카사코리아, 펀블, 뮤직카우 등 조각투자 업체들은 직접 증권토큰을 발행한 뒤 자사 유통 플랫폼에서 판매해왔다. 현재는 잠정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제도화 이후에는 투자계약증권 발행기관으로서 수반되는 각종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증권사 등 유통 플랫폼과 손을 잡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증권사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자 이들 발걸음 역시 빨라지고 있다. 토큰증권 발행 플랫폼과 협업 형태로 손을 잡거나, 직접 플랫폼 구축을 구상 중인 모습이다.

가장 먼저 준비를 시작한 곳은 미래에셋증권이다. 지난 2021년 디지털자산 TF를 구성하고 신설법인 ‘디지털엑스’ 설립을 준비해왔다. 키움증권 역시 연내 자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인 영웅문에서 토큰증권 거래를 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신파이낸셜그룹은 이달 14일 국내 1호 조각투자플랫폼 카사코리아를 아예 인수, 토큰증권 발행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협업을 택한 곳도 많다. KB증권은 지난해 SK C&C와 디지털자산 관련 인프라 구축을 시작해 한우 조각투자업체 뱅카우, 미술품 조각투자업체 서울옥션블루 등과 협력 중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시세판을 바라보는 투자자/뉴스1
가상자산 거래소 시세판을 바라보는 투자자/뉴스1
가상자산 시장 대응 아직…"명확한 구분 어려울 듯"

가상자산 거래소들 역시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공개에 발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토큰증권의 유통이 증권사들의 몫이 돼 가상자산 거래소는 더이상 이를 취급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현재 유통되는 가상자산을 증권이냐 아니냐로 딱 갈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앞서 가상자산 리플(XRP)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리플의 증권성 여부를 두고 2년여간 법적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당 소송이 국내외 가상자산 업계의 증권성 판단 기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가상자산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자산인 점, 네트워크의 성장 단계에 따라 가치 창출의 원천이 진화한다는 점, 오픈소스 기여도가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증권 여부를 현행법상 흑백으로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역시 토큰증권의 분류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 증권성 판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증권성 판단 TF를 구성, 관련 기업들과 논의를 통해 개별 토큰들의 증권성 판단을 논의한다. 또 내달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를 방문해 토큰증권 판단 기준과 관련 쟁점들을 살펴볼 계획이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