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일어난 스테이블코인 테라(UST)의 급격한 폭락은 누군가가 UST를 시장에 대량으로 팔며 시작됐다. 가격 방어에 수천억원을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고,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혁신적인 알고리즘처럼 보였던 ‘무담보 스테이블코인’은 그렇게 허물어졌다. 조단위 가상자산을 무너뜨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선 테라의 폭발적 성장을 야기한 ‘미러프로토콜’과 ‘앵커프로토콜’을 짚어봐야 한다.

미러프로토콜의 부상, 해시드코인베이스도 추가 투자

2021년 게임스탑(GME) 사태를 기억하시는지. 대규모 헤지펀드 세력이 공매도 포지션으로 게임스탑의 주가를 끌어내리려 하자,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며 주가를 폭등시켰다. 결국 헤지펀드 세력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당시 개미들의 반동을 저지하고자 미국 증권거래 앱 로빈후드(Robinhood)는 일시적으로 개인 투자자의 주식 거래를 제한하기도 했다. ‘의적’의 이름에 맞지 않는 행동에 투자자들은 맹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일론 머스크, 잭 도시 등 테크 분야의 리더들이 SNS 프로필을 ‘비트코인’으로 바꾸며 중앙화된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꼬집은게 이 때다.

유명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스템, ‘디파이(DefI)’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테라폼랩스도 뜻밖의 수혜를 입었다. 마침 새로 내놓은 디파이 미러프로토콜(Mirror Protocol)이 전통금융의 대항마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론칭한 미러프로토콜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빅테크 기업의 주가를 따라가는 가상자산을 만들고 이를 거래할 수 있는 디파이 플랫폼이다. 이용자는 직접 애플사의 주가를 추종하는 mAAPL, 구글 주가를 반영한 mGOOGL등을 미러프로토콜로 발행할 수 있고, 이를 사고팔수도 있다.

 미러 프로토콜 변동
미러 프로토콜 변동
게임스탑 사태를 계기로 미러프로토콜 거래량은 급속도로 커졌다. 미러프로토콜의 예치금액은 출시 3달만에 3000억원을 웃돌았다. 미러프로토콜의 성장은 곧 테라의 성장이었다. 테라 블록체인에서 발생한 수수료는 순식간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러 내 모든 활동은 테라의 스테이블코인 UST로만 가능했다. 누군가 새로운 가상자산인 ‘m주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행할 토큰과 같은 양의 UST를 미러프로토콜에 예치해야 했다. 구매도 UST로만 할 수 있었다. 거래량이 많아질수록 UST 발행량 또한 빠르게 늘었다.

미러의 흥행을 맛본 테라폼랩스는 2021년 1월, 차이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신규 투자를 유치한다. 갤럭시, 코인베이스, 판테라 캐피탈 등 미국 대형 투자사들이 신규 투자사로 합류했고 국내에서는 해시드도 추가 투자에 참여했다. 다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투자 자회사인 두나무앤파트너스는 테라의 이러한 공격적 행보를 성급하다 판단했던 듯하다. 2021년 2월, 두나무는 2018년 취득한 루나 2000만개를 3년 만에 전량 매각했다.

실제 미러프로토콜은 한국과 미국 양쪽 수사당국 모두의 감시망에 걸렸다. 2021년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미러프로토콜에서 발행한 m자산이 규제를 우회한 ‘미등록 증권’이라며 연방증권법 위반 혐의로 권도형을 기소했다. 한국 검찰 역시 "미러프로토콜은 테라폼랩스가 자산의 80%를 보유, 공급량과 가격을 조작했다"고 봤다.

엉성하고 위태로운 앵커 시스템

테라폼랩스는 2021년 3월, 개발 시작 1년만에 앵커프로토콜을 론칭한다. 당시 많은 디파이가 대출과 예금으로 이자를 제공하는 구조로 통상 3~5% 정도의 이자를 제공했다. 테라 앵커프로토콜이 제시한 20%의 이자율은 디파이 시장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높은 이자율의 비결은 스테이킹이다. 앵커프로토콜은 예치에 대해서는 19.5%의 금리를, 대출에는 18%의 금리를 매겼다. 대출 금리가 예치 금리보다 낮아 예대마진으로는 이자를 제공할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앵커는 담보로 루나를 비롯해 스테이킹이 가능한 가상자산을 받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냈다.

여기에는 나름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앵커는 담보로 받은 자산의 스테이킹을 유도하기 위해 영수증 역할을 하는 ‘b토큰(bonded 토큰)’을 만든다. 예를 들어 100 루나를 가진 사람은 앵커에 이를 보관하고 100 b루나를 받을 수 있다. 이용자는 이 b토큰을 앵커에 담보로 맡겨 UST를 대출받고, 이 UST를 또 다시 앵커에 예치, 이자를 받는다.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까. 루나는 한번 스테이킹하면 나중에 출금하기 위한 스테이킹 해제에만 21일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묶인 루나로 예대마진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b토큰이다. 이렇게 스테이킹으로 묶인 자산을 유동화한 토큰은 추후 다른 디파이들도 흔하게 도입했지만 처음으로 구상해 낸 곳은 테라다.

획기적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 돌려막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선 예치보다 대출이 많아야 한다. 예금액이 대출보다 많아지면 지급할 수 있는 이자가 동난다.

또 다른 전제는 UST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미러프로토콜 같은 쓸모가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UST 수요가 줄면 루나 가격이 하락하고 스테이킹 수익으로 받은 루나 가치보다 지급해야 할 이자가 더 많아지면 앵커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되돌아 보면 허점은 이 외에도 많았다. 너무 성급하게 앵커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고, 테라폼랩스 개발 인력의 역량 부족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구멍을 낸 것 아니냐고도 한다. 한 개발자는 "루나와 같은 가격이어야 하는 b루나 가격이 루나보다 내려갈 때도 많았다. 이것 때문에 앵커에서 빠져나간(유실된) 금액만 본 것이 10억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앵커프로토콜은 결국 출시 넉달만인 8월, 이자 지급을 위한 잔액이 떨어졌고 테라폼랩스는 인위적으로 예비비 1000억원(7000 UST)을 채워넣었다. 이후에도 높은 이자를 유지하기 위해 잇따라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시장에서는 앵커의 지속가능성을 끊임없이 지적했다.계속되는 우려에 권씨는 2022년 1월, 테라 생태계 준비금 조성을 위한 비영리 재단 LFG(Luna Foundation Guard)를 만든다.

한 테라폼랩스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해시드를 포함한 두 세개 계좌가 앵커프로토콜의 거의 모든 TVL(예치자산총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프로젝트를 평가할 때 TVL이 어떻게 분포되어있는지는 보지 않았다. 그저 앵커 예치액이 1000억이 넘었다는 것만 봤다"고 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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