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무너지는 것이 꼭 거대 이슈 때문만은 아니다. 아주 작은 사소한 불씨가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창업자가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더라도 이를 인정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집이 되어버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시간과 자본을 낭비하다 결말을 맞는다는 비극이 그러하다.

권도형의 발명품인 ‘테라’도 이와 비슷했다. 2022년, 앵커프로토콜의 높은 이자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때 테라는 이자를 낮추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앵커의 고이율을 유지하고 싶었던 권도형의 선택은 엄청난 실수가 되고 말았다.

무리한 이자…지속 불가능했던 앵커

2021년 말, 앵커 이용자는 날이갈수록 많아졌고 테라 스테이블코인 UST의 덩치도 커졌다. 테라 블록체인에 묶인 돈은 자그마치 24조원, 전체 블록체인중에는 이더리움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2021년 12월, 테라 TVL이 바이낸스를 넘어섰다 / 출처 = 코인마켓캡
2021년 12월, 테라 TVL이 바이낸스를 넘어섰다 / 출처 = 코인마켓캡
하지만 테라의 성장은 여전히 앵커에 의존하고 있었다. 테라 기반 서비스 13개가 24조원 규모의 UST를 만들어냈고, 전체 UST 중 앵커에 묶인 돈은 70%로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테라 다음으로 많은 자산이 예치된 바이낸스스마트체인(BSC)이 225개 앱으로 20조원을 굴리고 있었으니, 앵커에 편중된 테라의 자산이 얼마나 컸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앵커 이용량은 대출보다 이자 획득을 위한 예치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4월 말이 되자, 앵커가 대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이자로 나가는 비용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예치는 점점 더 대출을 앞질렀고, 테라는 이자 지급을 위해 추가 자금을 수혈했지만 계속 부족했다.

테라를 지켜보는 시장의 평가도 점차 회의적으로 바뀌었다. 스테이블코인 메이커다오 창업자인 크리스 텐슨은 1월 자신의 트위터에 " 테라는 회복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고 차익실현이 안되면 가치가 0에 수렴할 수 있다. 높은 이자를 준다며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돌려막기’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테라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앵커 이자를 낮추거나, UST의 다른 쓸모를 만드는 것이다. UST의 수요가 많아져야 UST를 빌리고자 하는 대출이 늘고, 이를 통해 이자를 지급하는 선순환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권씨가 택한 방법은 후자였다.

잘못된 판단, 폭락 방아쇠를 당기다

새로운 UST 수요를 만들기 위해 그가 고안한 것은 일종의 스테이블코인간 ‘통화스와프’다.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모아 맞교환 할 수 있는 저장소인 풀(pool)을 만들고, 테라와 다른 스테이블코인과 안정적으로 바꿀 수 있게 해 유통 채널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테라는 4월 초, 탈중앙화거래소 커브(CURVE) 에서 4종의 스테이블코인을 모은 4pool(UST-USDC-USDT-FRAX)을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도 테라는 커브에 3pool(UST-USDC-USDT)을 만들었지만, 이를 더욱 크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결국 루나 몰락의 신호탄이 된다.

5월 7일, 테라는 4pool을 만들기 위해 커브 3pool에 이미 두고있던 2억5000만달러(약 3300억원) 규모의 UST를 회수한다. 순간적으로 3pool에 있는 UST 양이 급격히 줄어 다른 스테이블코인들과 테라의 교환 비율이 어긋나기 시작한 순간이다.

익명의 공격자가 이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다. 테라가 UST를 출금한지 13분 후, 누군가 3pool에서 8500만달러의 UST를 매도했다. 1달러에 유지되야 하는 테라 가격은 순식간에 0.98달러로 떨어졌다. ‘디페깅(Depegging, 가격비동조화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죽음의 소용돌이, ‘테라-루나’사태로

20조원 덩치의 가상자산이 흔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동요했다. 같은 날 투자자들은 앵커에서 하루만에 무려 3조원의 UST를 출금해 시장에 던졌다. 앵커는 b루나를 만들어 담보를 유동화해 고객이 만기 없이 자산을 상시 입출금할 수 있게 했다.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만든 방식은 결국 앵커에게 독이돼 돌아왔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오로지 믿음으로 이뤄진다. 약간의 어긋남은 시장에 테라의 구조 자체에 대한 의심을 낳았고,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 불가능했다. LFG(루나파운데이션가드)가 2조원을 투입하며 폭락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연쇄 매도가 이어지며 UST 가격은 디페깅을 넘어 빠르게 0원을 향해갔다.

테라의 자매코인 루나도 ‘죽음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테라의 가치를 담보하기 위해 설계된 루나는 같은 가치의 테라와 바꿀 수 있다. 루나와 테라를 교환하려는 사람이 몰리며 루나 발행량은 수직 곡선을 그렸다. 국내외 거래소에서는 루나 매도가 몰리며 입출금 지연 현상까지 발생했다. 10일이 되자 며칠 전까지만해도 15만원이던 루나 가격은 0.001원으로 주저앉았다.

권도형 트위터 / 트위터 캡쳐
권도형 트위터 / 트위터 캡쳐
"내 발명품이 모두에게 고통을 줬다는 점이 마음 아프다. 여전히 탈중앙화 기반 경제에는 탈중앙화 화폐가 필요하다고 믿지만, 지금 UST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혼란의 일주일이 지난 14일, 권도형은 트위터를 통해 실패를 자인했다. 테라·루나라는 그렇게 커다란 핵폭탄이 돼 시장에 떨어졌고, 피해액만 50조원에 추산된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평생 모은 돈을 날렸다는 항의가 쇄도했고, 권씨의 가족이나 집에 직접 찾아가 호소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권씨는 싱가포르로 떠난 상태였고 자신의 행방은 비밀에 부쳤다. 한국 검찰과 미국 수사당국은 수 개월간 그를 찾았다.

권씨는 결국 사태 발생 11개월 후, 이름도 생소한 동유럽의 한 소국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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