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인가, 아들은 파란색, 딸은 분홍색이라는 색깔로 성을 구분하는 '컬러의 편견'을 깨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됐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파란 옷을 준비해야 할까요, 분홍색 옷을 준비해야 할까요' 라고 물어보는 엄마의 의식 자체가 아이에게 컬러 선택에 대한 자유권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논란의 중심 속에 태어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구매력을 갖춘 많은 여성은 분홍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2008년 영국 뉴캐슬대학의 한 신경과학자는 몇 가지 실험을 근거로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분홍색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또 붉은 색의 익은 열매를 구분하여 따내는 원시시대의 습관이 몸에 베인 것이라며 진화론적 설명을 근거로 풀이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8~9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많은 기업은 계속해서 분홍색을 여성성을 대변하는 아이템으로 내놨다. 하지만 최근처럼 분홍색을 '한정'이 아닌 '정식' 판매 제품으로 내놓고, 이에 부응하는 소비자도 많지 않았다.

지난 가을 GM대우자동차(쉐보레)는 자동차 회사로는 다소 파격적으로 분홍색 자동차를 정식 모델로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차 '마티즈 크리에이티브'가 그것이다. 하얀색, 파란색, 회색, 검정 등의 모델은 많았지만 정식으로 분홍색을 자동차라는 고가의 제품에 적용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우리가 시중에 본 분홍색 차라면 개성이라는 이유로 자본력을 갖춘 소수 여성의 것이었다. 이것 또한 맞춤 제작한 자동차로 다량의 생산 주문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GM대우 마케팅 측에서도 자동차라는 고가의 제품을 분홍색으로 구매할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 때문에 출시 일이 늦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자동차는 결국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전체 판매량 중 27%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놀랐다는 입장이다.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등장한 제품이 또 있다. PC부품의 하나인 키보드 마우스다. 물론 주변기기에 분홍색을 적용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정식 제품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기업에게 모험이 포함되는 일이다. PC주변기기 업체 아이락스는 지난해 8월 1000개 한정으로 분홍색 키보드를 선보였다가 올해 다시 정식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한정 판매를 실시하고 소비자로부터 재판매 요청이 계속 들어온 것이다. 이에 힘입어 아이락스는 마우스까지 분홍색으로 출시했다.


후지제록스에서 내놓은 핑크색 프린터 또한 정식으로 판매된 모델. 프린터 제품 군으로서도 다소 파격적인 컬러가 아닐 수 없는데, 이 또한 아담한 사이즈와 컬러의 매치가 잘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친구나 친구 집들이로 선물해주고 싶을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선물용으로 프린터를 생각나게 하는 유일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전문가들이나 지니고 다니는 전유물의 DSLR도 많은 소비자들이 이용하면서 일반 여성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됐다. 이를 노려서인지 펜탁스는 다소 진한 분홍색의 DSLR을 선보였다. K-r 핫핑크 모델이다.  

컬러를 보자면 꼭 장난감 같은데도, 평가는 좋다. 어깨에 메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나 중급기에 버금가는 사양을 갖췄다는 등의 평이다. 총 120개의 컬러로 구성된 K-r모델 중 블랙과 화이트, 핑크만 국내에 출시한 펜탁스 한국지사의 전략이 나름 성공한 것이다. 어찌됐든 이 카메라 또한 한정판이 아닌 정식 판매 모델로 현 여성들에게 주목 받는 분홍 아이템이다.

연한 분홍이나 진한 분홍이나 분홍이 강하게 섞인 보라 및 빨강에 반응하는 여성에 대해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제품이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은 분홍이 많고, 남성이 좋아하는 아이템에는 파란색 계열이 많다고. 또 반대로 여성이 분홍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성관련 제품에 분홍이 많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업체의 상술이든 원초적인 본능이든 지금의 우리는 분홍색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는 것일 뿐.

IT조선 정소라 기자 ssora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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