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자료사진)

 

"외지고 조명 없는 곳 많은데 순찰 인력은 부족"

 

제주 올레길에서 40대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최근 몇년간 우후죽순 생긴 각종 둘레길의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느림의 문화'를 추구하는 풍토가 확산하면서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이들 둘레길에는 폐쇄회로(CC)TV 등 범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역은 넓은데 비해 순찰할 치안 인력은 부족한 형편이어서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강력범죄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산책할 때 여성 홀로보다 가족이나 동반자와 함께 움직일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서울 둘레길 CCTV 없어…순찰 여건도 한계 = 연합뉴스 사건팀이 25일 확인한 결과 서울에 있는 북한산, 불암산, 관악산, 용마산 등 4개 산의 둘레길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사무소에 따르면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CCTV가 서부(북한산)에 49대, 동부(도봉산)에 4대가 각각 있다.

 

그러나 이는 정규 등산로의 산불 감시나 주차장 내 차량 관리, 계곡 내 등산객 불법행위 감시에 쓰는 카메라일 뿐 둘레길에는 카메라가 없다.

 

북한산 둘레길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기 양주시 교현리를 잇는 우이령을 비롯해 북한산과 도봉산 둘레 71.8㎞를 21구간으로 나눈 길이다.

 

서울과 접한 남쪽은 민가나 대로변과 인접한 구간이 많지만, 북쪽으로 넘어가면 여느 산길 못지않게 외진 구간이 나온다. 산기슭을 따라 걷는 구간이 대부분이어서 수풀이 우거진 곳도 얼마든지 있다.

 

공단 측은 비록 CCTV가 없더라도 사무소 직원들이 수시로 순찰을 하는 데다 민가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에서 올레길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북한산사무소 관계자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올레길과 달리 둘레길을 별도로 관리하는 부서가 있고 수시로 순찰도 한다"며 "다소 외진 곳이 있더라도 민가나 큰길과 가까운 편이어서 안전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불암산과 관악산, 용마산 둘레길 역시 CCTV는 설치되지 않았다.

 

이들 산은 국립공원이 아니어서 자치단체의 관리 대상이다. 이름은 둘레길이지만 보통 산길과 같은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산처럼 따로 관리하지는 않는다.

 

불암산을 담당하는 노원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기존 등산로를 개선해 만든 길이라 민가를 지나지는 않는다"며 "어두워지면 다니는 사람이 없어 인적이 드물지만 아직 특별한 범죄나 사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일반 산길과 경계가 모호하다 보니 둘레길에 조명이 설치된 곳도 없어 야간에 다소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북한산의 경우 둘레길도 국립공원에 속한 구간은 일몰 후 2시간~일출 전 2시간 야간 출입이 금지되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이 약수터를 이용하거나 야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산은 국립공원이 아니어서 밤에도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경찰도 여러 여건상 둘레길을 집중적으로 순찰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관할 구역은 넓지만 인력은 한정돼 있고, 산속까지 들어가 순찰할 시간도 없다 보니 인근을 순찰하면서 둘레길 초입을 돌아보는 정도다.

 

둘레길 일부 구간을 낀 경기 고양경찰서의 한 파출소 관계자는 "순찰차는 2대뿐인데 심야에 출동하고 발생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둘레길 순찰 간격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최근 이런 지역들이 안전 취약지대임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벌어져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CCTV 설치엔 의견 갈려 = 제주 올레길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은 둘레길처럼 한적한 길을 걷기가 전처럼 편안하지는 않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CCTV 설치에 대해서는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선다.

 

직장인 김태희(25ㆍ여)씨는 "올레길 사건 때문에 불안해서 당분간 등산이나 산책은 하고 싶지 않다"며 "CCTV가 설치돼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 있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모(22)씨도 "둘레길은 이미 공개된 장소이니 CCTV가 있다고 해서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 크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범죄 예방뿐 아니라 야생동물 관련 사고에도 CCTV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소영(35ㆍ여)씨는 "CCTV가 범죄 예방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고 설치 과정에서 환경 파괴가 일어날 우려도 있다"며 "여행객 스스로 안전을 도모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백모(36ㆍ여)씨도 "둘레길은 자연을 즐기려고 가는 곳인데 곳곳에 CCTV가 있으면 경관을 크게 해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개인정보 유출이나 인권침해 소지도 있어 설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은 둘레길과 같은 탐방로를 '보행자길'로 지정, CCTV나 보안등과 같은 안전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경찰은 공식 트위터 등을 통해 "올레길이나 둘레길 등을 산책할 때 여성 홀로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니 가족이나 동반자와 함께하라"는 내용의 주의를 전달했다. 둘레길 등 관광지 순찰 활동도 강화할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르면 내주 중 전국 둘레길 등에 대한 일제 방범점검을 하고 보안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에는 당분간 순찰을 강화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CCTV나 비상벨을 설치하는 방안도 중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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