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기밀문서 폭로…해킹 노려 '위장' 인터넷 카페까지 차려

남아공·터키 등 동맹국도 노려…美는 당시 러시아 대통령 도청

 

영국이 2009년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개최하며 각국 대표단에 조직적으로 컴퓨터 해킹과 전화 도청을 벌였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은 17일 북아일랜드 로크에른에서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어서 이번 보도는 큰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G20 회원국이다. 2009년 런던 회의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해 미국, 중국, 일본 등과 북한 로켓 문제와 보호무역주의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감청 내용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국내외 감청망 실체를 폭로한 미국인 에드워드 스노든(29)이 추가로 공개한 기밀문서에서 드러났다.

 

◇ '함정' 인터넷 카페에다 실시간 통화감시

 

가디언이 전한 문서 내용에 따르면 영국의 감청기관 '정보통신본부'(GCHQ)는 2009년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4월)과 G20 재무장관회의(9월)에서 각국 대표단의 인터넷 및 전화 통신 내용을 대거 가로채는 '획기적(ground-breaking) 첩보수단'을 활용했다.

 

이 문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터키 등 영국의 오랜 동맹국에도 적극적 도청을 벌였다고 적시했다. 도청이 자국 외교관계와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파문이 일 전망이다. 가디언의 이번 보도에서 한국이 도청 대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GCHQ는 2009년 회의 당시 각국 대표단이 주고받은 이메일 본문을 몰래 가로채 분석하고 직접 행사장에 인터넷 카페도 차려 대표단이 쓰도록 유도했다.

 

이 인터넷 카페는 감청을 노린 일종의 '함정' 시설로 GCHQ는 여기서 대표단의 '로그인 키(key) 정보'를 확보했다고 문서는 밝혔다. 외국 정부 요인의 접속 ID와 암호 등을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GCHQ는 또 참여국 인사들의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해킹해 이메일 내용과 전화통화를 도청하고 전문 분석가 45명을 동원해 대표단의 전화 통화 실태를 24시간 감시했다.

 

특히 GCHQ는 각국 대표단이 구체적으로 누구와 전화를 하는지를 실시간 그래픽 화면으로 구성해 GCHQ 작전실 내 15m 대형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주시했다.

 

이렇게 분석된 각국의 통화 정보는 바로 G20 영국 대표단에 넘어가 영국이 신속하게 협상 우위를 점하는 데 활용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 국익 증진 등 목표로 폭넓게 감청

 

GCHQ는 감청 작전의 이유를 "G20 의장국으로서 영국 정부가 설정한 목표와 연관된 첩보를 (영국) 당국자에게 적시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기밀문서는 2009년 고든 브라운 총리 내각 때 GCHQ의 이 작전이 고위직 단계에서 제재를 받았지만, 도청으로 확보된 첩보는 당시 영국 장관들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이번 감청은 테러나 군사 분쟁 등 국가 안보에 직결된 사안이 아니라 '국제 협상에서 국익 증진' 등 폭넓은 목표 아래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문서를 인용, GCHQ가 특정 범죄에 연루됐다는 개연성이 없는데도 2009년 9월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터키 재무장관과 관료를 '잠재적 표적'으로 정해 감청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 도청의 목표는 "4월 G20 정상회담에서 맺은 합의에 대해 터키의 견해를 확인하고 다른 G20 회원국과 협력하려는 의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또 GCHQ는 남아공 대표단의 컴퓨터를 해킹해 남아공 외무부 전산망의 접속권한을 확보하고 G20 및 G8 회의와 관련한 대표단 측 보고서도 가로챘다.

 

GCHQ는 영국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MI5와 국외 스파이 작전을 수행하는 MI6와 함께 영국의 3대 첩보 기관으로 꼽힌다. 감청을 이끈다는 점에서 미국 NSA와 조직 성격이 비슷하다.

 

◇ 미국은 러시아 대통령 도청 시도

 

한편 미국 정보 당국은 영국 주재 요원을 시켜 2009년 4월 G20 런던 정상회담에 참석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도청을 시도했다고 가디언이 기밀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문서에 따르면 영국 중부 해러게이트시의 'RAF 멘위스힐' 기지에 있던 NSA 요원들은 2009년 4월1일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대표단이 모스크바로 건 기밀 위성전화 신호를 가로채고 나서 신호에 걸린 암호를 풀려고 했다.

 

RAF 멘위스힐은 미국이 1954년부터 영국에서 임차한 시설로 NSA 분석관 수백 명이 근무한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감청 시설로 알려졌고 GCHQ 직원들이 영국 정보 당국을 대표해 함께 상주한다.

 

가디언은 2009년 미국 요원들이 메드베데프 대통령 측의 통화 내용을 얼마나 파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단 이 신문은 NSA가 영국과 호주 등과 공유한 첩보 문서를 인용, "미국이 러시아 측의 통신 활동을 분석했고, 러시아 최고 수뇌부의 전화 신호가 전송되는 방식이 바뀐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 문서 내용은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가디언은 내다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G8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리아 내전 해결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도청 파문'이 자칫 대화의 맥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앙숙인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감청을 일삼는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많았으나 미국이 러시아 최고 지도자에게 조직적으로 도청을 감행했다는 의혹이 구체적 문서로 제기된 것은 드문 일이다. 앞서 러시아는 올해 라이언 크리스토퍼 포글 등 미국 외교관 2명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잇달아 추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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