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기존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실현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서 제동이 걸린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강화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IT조선은  [SW의 힘, IT 코리아의 미래] 연중기획을 통해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중요한 이유를 심층 분석하고, 국내외 다양한 사례와 정책 등을 비교해 국내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IT조선 박상훈 기자] 우리 경제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산업이 소프트웨어(SW)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 참석해 “SW 산업 육성은 창조경제를 구현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우리 경제가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핵심산업”이라고 말했다. 올 4월에 신년 구상을 밝히는 자리에서는 보건의료, 교육, 관광, 금융과 함께 SW를 5대 유망 서비스산업으로 지목하고 이를 집중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SW 정책은 지난해 10월에 나온 'SW 혁신전략’으로 집약된다. 인력과 시장, 생태계로 구분해 분야별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거시적인 선순환 구조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 기존의 SW 지원 정책과 차별화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 정부의 'SW 혁신전략' 주요 내용 (표=미래부)

 

먼저 인력 분야를 보면 SW 전공자에 대한 장학금 지급과 대학 복수전공 지원을 통해 SW 전공인력을 늘리고 IT 연구센터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석박사급 연구인력을 기업이 원하는 SW 분야의 연구개발(R&D) 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젊은층의 창업과 기존 중소기업 SW 개발자의 재교육을 지원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시장 측면에서는 SW 시장을 확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동차, 선박, 플랜트 등 주요 산업분야별로 시장 창출형 대형 R&D을 지원하고 국방 무기체계 같은 분야는 개발 기획단계부터 국산 SW 적용을 검토한다. 의료, 안전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과학·ICT 접목을 통해 산업 활력을 높이고, SW R&D 투자를 현재 정부 R&D 투자의 3.2% 수준에서 2017년까지 6%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생태계 분야에서는 창업-성장-글로벌화로 이어지는 기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공공 SW 분야에서 용역 위주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상용 SW 유지 관리대가를 2017년까지 15%로 높이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민간 SW 시장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면 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는 기술유출 분쟁 조정제도도 강화하기로 했다.

 

SW 혁신전략 추진 반년, 성과는 ‘글쎄…'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혁신전략이 발표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현재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상용 SW 유지관리 대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실제 발주처인 공공기관에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에 대해서는 기업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재 양성, R&D 투자 확대 등은 모두 예산 확보 여부가 관건이어서 담당 부처의 의지 이외에 외부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외부 요인에 의해 변화 가능성이 큰 불확실한 정책 외에 정부가 '건강하고 적극적인’ SW 소비자가 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국산 SW 지원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건강하다'는 것은 국산 SW에 제값을 주고 외산 SW와 차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안전행정부의 '2013년 공공기관 SW 사업 수요예보' 자료를 보면, 국내 공공부문 SW 도입 예산은 2조5000억 원이지만 이 가운데 국산 SW 점유율은 32% 수준에 그친다. 운영체제와 데이터베이스 같은 핵심 SW 점유율은 고작 4%대에 불과하다.

 

▲ 2013년 기준 분야별 국산 SW 비중 (표=안전행정부)

 

국산 SW 점유율이 이처럼 낮은 것에 대해 발주처 관계자는 처리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SW 성능이나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심지어 이런 논리로 특정 외산 SW만 지원하는 기능을 명시해 사실상 이 제품만 입찰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 외산 데이터베이스 제품인 오라클의 RAC(Real Application Cluster) 기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성능과 신뢰성 관련해서는 이미 정부가 스스로 일정 수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GS(Good Software) 인증이나 SP(Software Process) 인증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증을 받아도 외산 제품과 제대로된 경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실제 SW 공급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인증에 대해 불만도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공공부문의 국산 SW 이용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SW는 그 특성상 시장에 먼저 진입한 제품이 추가 구매될 가능성이 높아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의 시장 진입이 매우 어렵다”며 “시급한 영역을 선별해 국산 SW 의무구매를 시범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저사양 SW가 공급될 우려를 제기할 수 있지만 GS 인증이나 SP 인증 등을 개선하고 요구사항을 사전에 공지해 SW 업체가 대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며 “한미 FTA에서도  중소기업 제품 구매를 위한 할당분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국제적 분쟁 가능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부터 ‘건강하고 적극적인’ SW 소비자가 돼야

 

정부가 '적극적인' SW 소비자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기존 SW 정책 철학의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다. 현재 정부는 R&D 지원, 마케팅 지원, 해외 진출 지원 등 다양한 국산 SW 기업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 중 상당수가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거나 혹은 대중소기업 공동 연구 형태여서 실제로 중소 SW 기업이 최종 성과를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일종의 이권 사업화되면서 지원업체 선정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선정 작업 자체에 낭비되는 행정력도 상당하다.

 

따라서 프로젝트성 중심의 지원책보다는 정부가 적극적인 SW 소비자가 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즉, 다양한 정부 업무에 SW를 더 많이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실제 SW 업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SW 혹은 SW 서비스를 많이 구입해 사용하면 이 시장을 발판으로 성장하는 국산 SW 기업이 등장하고 다시 기술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됐을 때 정부가 'SW 혁신전략’에서 제시한 SW 기업 성장 지원책도 더 힘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SW는 그 특성상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누군가 구입해 써주지 않으면 SW 완성도를 높여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 SAP 같은 글로벌 SW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 자체를 가질 수 없다. 공공부문부터 건강하고 적극적인 SW 소비자가 되면 국산 SW 기업이 다양한 개발 경험과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면 결국 민간 시장도 더 건강하게 바뀔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은 “SW산업진흥법 등 현재의 SW 관련 법규를 보면 일이 터질 때마다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땜질하는 방식으로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빠른 시일내에 전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SW 업계에 대한)전통적인 지원 방법은 이제 역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며 “SW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클라우드 중심으로 가고 있으니 업계는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 형태로 SW를 내놓고 정부가 이를 적극 구매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육성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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