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최재필] "마감시간에 그날 팔지 못한 생선은 소수 고객에게 떨이로 판매해 혜택을 주는데, 단통법은 마감 시간에도 할인을 하지 말라는 법이다."

 

이달들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소비자와 유통점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학적으로 단통법이 제조사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단통법 시행 보름되던 날의 한 휴대폰 판매점 모습

 

바른사회시민회는 컨슈머워치와 공동으로 1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예견된 파행, 무엇을 간과했나'라는 주제로 단통법 해법 모색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손정식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왔고,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송정석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경제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날 참석자들은 일제히 "경제학적 관점에서 봤을때 단통법이 제조사에게도 악영향을 끼칠수 있는 법"이라며 법의 재개정 또는 폐지를 촉구했다.

 

 

단말기 교체주기·가격 논하는 것은 '억지'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단통법을 시행한 이유는 혼란한 시장 안정화와 가계통신비 절감에 있다.

 

모든 소비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는 소비자들이 값비싼 단말기를 구입함에도 불구하고 15개월에 한번씩 제품을 교체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왼쪽부터)이병태 교수, 손정식 교수, 조동근 교수, 손정석 교수가 '단통법 해법 모색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를 근거로 정부가 휴대폰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형평성을 논하며 단통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가 이용자의 단말기 교체 주기에 대한 형평성을 정의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단말기 교체주기에 대한 형평성을 논하는 것은 억지 논리"라며 "계절이 바뀌었다고 매년 옷을 사는 사람과 유행에 무관하게 옷을 입는 사람 사이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통법에서 말하는 '형평성'의 개념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스마트폰과 같은 하이테크 제품은 기본적으로 제품주가가 짧고 혁신경쟁이 치열해서 제품의 소비를 빨리 유도해야 한다"며 "신제품 출시 전 구제품을 소진하지 못하면 큰 피해로 돌아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6가 너무 잘 팔리게 되면 삼성전자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격할인을 해야 한다. 회사가 자금 유동성 위기에 빠지거나 재고 처분 등 필요가 있을 때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통법은 이같은 방법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가를 내리는 것과 할인을 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며 "명품의 가격을 낮추면 더이상 명품이 아니지만 할인 판매를 하면 여전히 명품"이라고 비유했다. 가격은 브랜드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한번 내린 가격은 올리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우리나라 스마트폰 제조사가 프리미엄 등급으로 출시한 제품 가격을 내수 시장 때문에 출고가를 인하하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치도 하락할 위험이 높다.

 

이 교수는 "구찌 같은 명품이 가격을 인하해서 300만원 핸드백을 30만원에 판다면 그 브랜드는 더이상 프리미엄이 아닐 것"이라며 "정가와 실제 가격은 차이가 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리공시 무산이 단통법 실패 원인 아냐

 

이번 단통법 실패의 원인으로 '분리공시' 무산이 자주 등장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는 연관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반 소비자들은 누가 얼마의 보조금을 주느냐를 따지며 단말기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보조금이 높아지면 그만큼 월간 통신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가계 통신비도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총 얼마의 지원금을 받느냐다"라며 "분리공시가 빠졌다고 해서 이를 단통법의 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통신사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임차해 사업하는 만큼 정부의 규제를 받을 수 있지만 제조사는 인·허가와 무관하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아니다"며 "국내 단말기 시장에서 내수시장의 비중이 크지 않은데 제조사 장려금을 공개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제조사의 협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송정석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도 "향후 단말기 성능이 더 좋아지는데 보조금 상한액 지정이 소비자들의 제품 구입에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신제품 판매량 감소는 단말기 생산업체의 연구개발 등에 제약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재필 기자 jpchoi@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