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최재필] 국민들의 가계통신비 절감을 목적으로 도입된 '단말기 단통법'이 시행 6개월만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정부는 여전히 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병헌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와 함께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2층 제1세미나실에서 '단말기 유통법 6개월'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전 의원을 비롯해 ▲박성용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 ▲ 박노익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보호국 국장 ▲김보라미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 ▲박기영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 실장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 등이 참석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단말기 유통법 6개월 진단' 토론회장 앞에 '단통법 폐지?존치?'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단말기 유통법 6개월 진단' 토론회장 앞에 '단통법 폐지?존치?'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전 의원은 먼저 요금인가제 폐지 및 단말기 판매와 통신서비스 판매를 분리하는 이른바 '완전자급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말기 유통법 시행 후 소비자는 물론 통신, 유통 사업자들 사이에서도 폐지의 목소리가 높다"며 "이 법은 지난 6개월간 통신시장의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 선택의 제약을 가져왔으며, 이통사 간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가제를 통한 통신요금 담합 구조를 만들어 준 꼴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요금인가제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며 "오랫동안 지속돼 온 단말기와 통신서비스의 결합 판매 역시 소비자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촉진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 의원은 단말기 유통법 개정 또는 폐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췄다.

전 의원은 "현재로서는 소비자, 통신사, 유통망 모두가 단말기 유통법에 불만족하는 상황이기에 국회의 개정논의는 필연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본다"며 "그러나 단순히 법의 일부분을 개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박기영 공동대표, 김보라미 변호사, 이병태 교수, 전병헌 의원, 박성용 교수, 박노익 국장, 이종천 이사가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기영 공동대표, 김보라미 변호사, 이병태 교수, 전병헌 의원, 박성용 교수, 박노익 국장, 이종천 이사가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단말기 유통법 시행 후 정부가 판단하는 '법의 효과'에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이 교수는 "단말기 유통법 시행으로 출고가가 내려갔다고 방통위원장이 말했는데, 가전제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게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미국의 경우 출시 15개월 이상 지난 갤럭시노트3가 25~27달러 요금제 2년 약정 기준으로 1달러에 판매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가 말하는 '단말기 교체 주기가 늘어났으니 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은 다른나라에서는 최신폰 갤럭시S6 엣지를 쓰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갤럭시S5 쓰는게 합리적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교수는 저가요금제 계약비중이 늘어나는 것을 법의 효과라고 분석하는 정부의 판단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달에 데이터 사용량을 4GB 쓴다고 저가요금제를 선택했다가 상황에 따라 6~7GB를 쓰게 되면 결국 내는 통신비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썼을 때보다 훨씬 많이 나오게 된다"며 "저가요금제 확대가 통신비 절감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단말기 유통법 시행 후 한 휴대폰 매장에서 '어디를 가도 똑같은 가격으로 구매한다면 서비스 1등 매장에서'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어 놓고 있는 모습
단말기 유통법 시행 후 한 휴대폰 매장에서 '어디를 가도 똑같은 가격으로 구매한다면 서비스 1등 매장에서'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어 놓고 있는 모습

아울러 이날 토론회에서는 단말기 지원금 지급에 대한 부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보라미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 변호사는 "법에서 단말기 지원금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 가격의 형성을 방해해 기존 시장의 고착화를 야기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는 것"이라며 "이는 영세판매점 등의 존립을 위협하고 단말기 제조업자의 경쟁력을 제약함은 물론 후발 이통사에게만 불리한 규제"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단말기 지원금이 불법에 이르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새로운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부당하게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거래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반 마케팅의 범위로 해석되는 것이 헌법이 정한 '자유시장경제질서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유통망 대표로 참석한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도 " 현재 법 적용 단말기 구입 시 지원금과 고객혜택(15%) 위약금 부담으로 나눠져 있는데 15% 외에 단말기 할부금 대납, 페이백 등의 음성적 고객 할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봤을 때 지원금 상한제는 폐지되는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통사업자 대표로 나오는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 역시 단말기 유통법 시행 후 이통사들도 고민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단말기 유통법이 시행되면 마케팅 비용이 절감되고 그 비용이 이용자 편익 증대 등으로 쓰일 것으로 기대를 했다"며 "그렇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리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지 않고 고정비용화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 시행 전과 달리, 저가요금제를 선택하는 소비자에게도 지원금을 줘야하고 유통망에서 판매수수료 확대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 대표로 참석한 박노익 이용자보호국 국장은 지원금 과다 지급 등이 사회적 폐단 현상으로 지적돼 왔고 그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규제가 불가피 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박 국장은 "단말기 유통법에서는 지원금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고 과도한 지원금을 규제한 것"이라며 "과도한 지원금이나 리베이트가 지급된다고 해서 가계통신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가계통신비라는 것이 전국민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 사업자, 정부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며 "하지만 어느 하나 쉬운게 없듯 시장이 포화상태고 제로성 게임에서 답을 찾기가 정말 어려운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최재필 기자  jpcho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