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디바이스 업계를 관통한 키워드가 '프리미엄'이다. 냉장고·TV·세탁기 등 각종 가전 제품, 디지털 이미징 기기에서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IT 디바이스 부문에서 프리미엄 제품군이 인기다.

제조사들의 신제품 라인업과 홍보 전략도 프리미엄 제품군 위주로 맞춰졌다. 소비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이들 제품으로 몰린다. 이제는 IT 디바이스 시장에서 '프리미엄' 단어가 붙지 않은 제품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지금처럼 프리미엄으로 쏠린 IT 디바이스 업계 유행이 자칫 소비자의 '선택의 권리'를 앗아갈까 우려된다.

프리미엄 제품군은 일반 제품보다 성능과 디자인이 우수하고 가격도 비싸다. 그렇기에 기기를 처음 접하는 초보 사용자, 가격대비 성능을 중요시하는 실속파 소비자들은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군이 아닌 중저가 스탠다드 제품군을 찾는다.

IT 디바이스 업계 태동기인 2000년 초반에는 보급형·스탠다드형·프리미엄형 제품군이 골고루 출시됐다. 소비자들은 용도와 예산에 맞는 등급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군이 대세로 자리 잡았고, 보급형이나 스탠다드 제품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초보자나 실속파 소비자는 금전 부담을 감수하고 프리미엄 제품군을 구입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탠다드 제품군이나 중고 제품이 나올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의 권리가 매우 좁아지는 셈이다.

프리미엄 제품군에 주력하는 IT 디바이스 제조사를 질타하려는 것이 아니다. 프리미엄 제품군뿐 아니라 보급형, 스탠다드 제품군도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스탠다드 제품군이 시장에서 외면 받은 만큼, 프리미엄 집중 전략이 타당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스탠다드 제품군의 라인업을 정리하고 효율을 꾀할 일이다. 소비자 수요와 가격대를 더 정확히 계산할 일이다. 라인업 자체를 없앨 일이 아니다.

디자인 선호도와 필요 기능, 구매 예산은 소비자마다 다르다. 이들 모두의 요구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수요를 모두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몰아넣어서는 안된다.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권리는 최대한 확보해야 하며, 그 기본은 제품군 분화다.

프리미엄 제품군이 기술을 견인하고 시장을 발전시킨다. 이어 스탠다드 제품군이 소비자의 선택의 권리를 확보하고 시장 규모를 초보 사용자로까지 넓힌다. 이처럼 이상적인 IT 디바이스 시장을 만들 것을 제조사에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