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위의 지뢰'라고 불릴 말큼 위험천만한 싱크홀 문제를 사전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도입될 전망이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싱그홀 대응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도심의 지하공간을 꿰뚫어 보는 것은 물론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도심을 삼키는 공포의 싱크홀에 국민 불안감 '증폭'

2014년 8월 서울 석촌 지하차도에서 폭 2.5m, 길이 8m, 깊이 약 5m의 대규모 싱크홀이 생겼다. 당시 6~8월까지 이 지역에서 발견된 싱크홀은 4개에 달하며, 싱크홀 발생 후 인근 주민이 불안에 떨었다.

이후 몇 년 간 싱크홀 사고가 잇따르자 국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2016년 8월 16일 오후 4시경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인도에서 지름 2m, 깊이 2m 크기의 싱크홀이 생겨 길을 지나던 행인 임모(61)씨가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17일 오후 2시경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의 한 소방도로에는 지름 30cm, 깊이 1m의 싱크홀이 생겼다. 이 사고는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2시간 넘게 도로가 통제돼 혼잡을 빚었다.

 2014년 8월 22일 서울 석촌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싱크홀 / 조선일보 DB
2014년 8월 22일 서울 석촌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싱크홀 / 조선일보 DB
싱크홀은 땅 속에 있는 암석·토양이 침식되거나 무너지면서 지반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원통 모양으로 땅이 꺼지는 현상이다. 싱크홀은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로 하루 빨리 징후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이기영 경기연구원(GRI) 선임연구위원은 '도시를 삼키는 싱크홀, 원인과 대책' 연구보고서에서 "싱크홀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며 "싱크홀 위험 지도를 작성해 도시계획부터 사업 승인·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조례 등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2016년 3월 28일 인천시 동구 중앙시장에서 발생한 싱크홀/연합뉴스 제공
2016년 3월 28일 인천시 동구 중앙시장에서 발생한 싱크홀/연합뉴스 제공
◆ 2018년 세계 최초 '싱크홀 특별법' 시행된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전국에서 생긴 싱크홀 발생건은 총 4088개에 달한다. 2011년 573건, 2012년 723건, 2013년 898건, 2014년 858건, 2015년 1036건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2.8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국토부는 2014년 서울 송파 석촌 지하차도 지반침하 사고를 계기로 민·관 합동 특별팀을 구성, 같은해 12월 지반침하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2016년 1월 7일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싱크홀 관련 특별법'이 시행되는 것은 세계 최초다.

전문가들은 싱크홀이 도심의 지하개발로 인한 지하수의 대량 유출과 지하수 변화에 따른 지반 약화의 결과로 본다. 지하공간에 동공이 발생하거나 하중으로 인한 지하구조물이 파손되며 지상 도로함몰과 같은 형태의 사고가 나타난다.

지하안전관리에관한특별법은 지하를 안전하게 개발하고 이용하기 위한 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하고 공공의 안전 확보를 목적으로 사후 처리에만 의존했던 싱크홀 사고를 사전에 미리 방지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법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지하공간의 정보를 수집하고 지하시설물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지하공간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 "싱크홀 발생 0% 도전… 지하공간도 MRI 검사처럼 빈틈없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싱크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12월 'UGS(UnderGround Safety) 융합연구단'을 선정한 후 연구에 착수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기연),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도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 연구원들로 구성된 UGS 융합연구단은 연구 돌입 약 1년 8개월만에 국내 기술로 싱크홀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도시 지하매설물 모니터링 및 관리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UGS 융합연구단의 성과는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출연연구기관 간 연구의 장벽을 허무는 융합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것이다. NST가 꾸린 9개의 융합연구 과제 중 처음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UGS 융합연구단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촬영(MRI)으로 인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하공간에서 싱크홀과 같은 재난재해 사고를 유발하는 주요 위험 요인을 샅샅이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지질 환경이나 지하수 분포와 변화, 상하수관 누수, 도시철도구조물, 주변 지반 등 도심 지하 환경의 구조와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지금까지는 특정 지역에서 싱크홀 사고가 발생하면 빠르게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복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어느 지역에서 싱크홀이 발생할지 모르니 싱크홀이 생기면 빠르게 보수하는 방식이었다. 서울시가 지하 탐사 레이더 장비인 'GPR(Ground Penetrating Radar)'을 일본에서 들여와 도심 곳곳을 탐지해 싱크홀 발생 가능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GPR 장비 운용 비용이 워낙 비싸 서울 전 지역을 커버하기 어렵다.

이인환 UGS융합연구단장은 "GPR 장비 운용 예산은 1km 탐지에 약 200만원으로 비싸 지자체의 예산만으로는 어렵다"며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을 활용하면 위험 지역을 미리 예측해 더 정밀하게 탐사하거나 위험 지역을 보수하는데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맨홀 탐사용 통신칩으로 '지하공간 데이터를 한 곳에'

연구단이 개발한 시스템의 핵심 기술인 'UGS FSK 무선통신 칩 기술'은 지난 7월 국내 중소기업인 에이투유정보통신에 이전됐다. 이 기술은 무선통신을 통해 1km 이상 원거리에서도 지하매설물의 상태 정보를 수집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장거리 무선통신 칩 기술이다.

이 칩은 지하 공간에 있는 모든 구조물(가스관, 송유관, 철도구조물 등)과 상하수관, 지하수 등에 부착한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주변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립형 맨홀에 통신칩을 탑재하는 방식이다. 지하에서 수집 된 모든 데이터는 ETRI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매립형 맨홀 안테나를 타고 관제센터로 보내진다.

 이인환 UGS 융합연구단장이 매립형 맨홀 안테나를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김민수 조선비즈 기자
이인환 UGS 융합연구단장이 매립형 맨홀 안테나를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김민수 조선비즈 기자
상하수도관의 누수 및 손상, 지하 지질, 도심철도 구조물 위협 등을 정확하게 탐사하고 계측하기 위한 센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지질연과 철도연, 건기연 연구원들이 힘을 보탰다.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지하 지반의 이상 징후와 원인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인환 단장은 "싱크홀의 원인중 약 84%에 달하는 것은 하수관 손상으로 인한 누수와 지반 약화며, 서울시에는 30년 이상 노후화된 하수관 비율이 약 48%다"며 "노후화된 하수관이 많은 지역과 지하철이 많이 다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지하공간 상황을 조기에 감지, 예측하는 IoT 기반 지하공간 그리드 시스템. 각 위협요소별로 부착한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를 맨홀 매립형 안테나에서 통합 수집한 뒤 사전에 위험 지역을 예측해 준다. / UGS 융합연구단 제공
지하공간 상황을 조기에 감지, 예측하는 IoT 기반 지하공간 그리드 시스템. 각 위협요소별로 부착한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를 맨홀 매립형 안테나에서 통합 수집한 뒤 사전에 위험 지역을 예측해 준다. / UGS 융합연구단 제공
연구진은 개발한 기술을 적용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지하철이 있는 지자체와 협력해 도심 지하 공간 지도를 작성할 계획이다. 지도가 완성되면 취약 지역을 선정하고 우선 순위를 고려해 사전 대응한다.

이 단장은 "기존에 지반 침하가 많이 발생했던 도로 정보, 상하수도 정보(서울시 관리), 하수관 정보(환경부)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 수 있다"며 "이를 분석해 어디가 위험한지 미리 확인하고 실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다"고 말했다.

◆ 출연연 드림팀이 맺은 첫 결실… '융합연구' 효과 톡톡

융합연구단의 이번 기술은 국민의 안전은 책임지는 것은 물론, 직접적인 인명 피해까지 줄일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기존 출연연이 개별적으로 담당하던 연구 영역을 융합연구를 통해 성과를 끌어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출연연 고유의 연구 영역에서 주요한 연구성과들이 나오긴 했지만 복합적인 문제의 경우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례로 철도연이 지하철도 구간의 시설물 관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반 변위나 지질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지질연이 보유하고 있는 지질특성·지하수 등에 대한 분석 자료를 활용해 지하철도 구간 지질특성이 취약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고, 싱크홀 및 균열 등과 같은 위험상황 발생 징후를 센서 기술로 녹여낼 수 있게 됐다.

이 단장은 "전세계적으로 지하관리를 특별법으로 제정한 곳은 한국 뿐이다"며 "지하 공간에 대한 안전성이 중요한데, 이번 연구 결과로 사전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여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인환 UGS융합연구단장 "연구 방향 수정하는 유연함 얻어"


UGS 융합연구단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국민들이 체감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연연 간 연구의 벽을 허물기 위해 도입한 역점 사업인 '융합연구사업'에 선정돼 출범했다. 출연연에 흩어진 연구인력이 한 곳에 모여 연구를 진행하고 연구과제가 종료되면 원 소속기관으로 복귀하는 연구 조직이다. 개방형 온사이트(On-Site)라는 개념으로 한 곳에 모여 얼굴을 마주보며 연구를 진행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인환 UGS 융합연구단장은 NST 융합연구와 관련 "매일 연구원들과 토론하며 제대로 된 연구 방향을 잡아나가는 유연함이 융합연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실제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수행한 덕을 봤다"고 말했다.

-현재 UGS융합연구단의 연구원들의 구성은 어떻습니까.

"현재 UGS융합연구단 인력은 약 50명입니다. 건설기술연구원과 철도기술연구원, 지질자원연구원에서 파견된 연구원이 각각 7명씩 있으며 ETRI 연구원은 24명입니다. 전체 연구원은 45명 입니다. 나머지는 연구지원 등 행정업무를 담당합니다."

-한데 모여 연구를 수행하는 융합연구를 실제로 해보니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건설IT 관련 연구만 10년째 했습니다. 건설기술연구원과 공동연구도 많이 했지만 각기 자기 자리에서 연구를 수행하다 보니 직접 대면해서 의견을 교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작성한 연구계획서를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서 융합연구를 진행하면 연구원마다 매일 개별 미션을 수행하고 함께 점검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지는 것도 장점입니다."

-연구원마다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 방향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연구 방향에 대한 이견이 있으면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연구계획서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구성원들이 목표에 동의했던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융합연구단으로 파견 나온 연구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는 있습니까. 연구 종료 후 원래 기관으로 복귀합니까.

"파견 연구원들에게 주는 파견 수당이 있습니다. 연구를 완료한 뒤 소속 기관에 돌아갔을 때 참여할 수 있는 연구과제가 없는 상황일 수 있기 때문에 융합연구에 참여한 뒤 복귀한 연구원들을 주요 연구과제에 우선 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융합연구를 진행할 때는 융합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연구 참여를 배제합니다. 융합연구에만 집중하도록 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