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기자가 다뤄본 디지털 카메라와 교환식 렌즈 개수를 세 봤더니, 1000대를 넘었다. 그 중에는 강렬한 '손맛'과 '사진 맛'을 안겨준 제품이 있는가 하면, 이게 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실망과 실소를 부른 제품도 있었다.

'지금까지 써 본 교환식 렌즈 가운데 최고의 제품을 든다면?'. 렌즈 교환식 DSLR·미러리스 카메라가 유행하면서 제법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리고 기자는 늘 대답한다. 인상적인 렌즈가 지금까지 3개 있었노라고. 이들은 모두 출시된 지 오래된 구형이지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제품이기도 하다.

우선, 소니 알파 마운트 칼 자이스 플라나 T* 85mm F1.4 ZA를 들 수 있겠다. 이 렌즈는 인물 촬영에 적합한 준망원 초점 거리를 지원한다. 조리개가 F1.4로 밝은데, 조리개를 모두 열면 아주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의 사진이 만들어진다. 풍성한 빛망울, 몽환적인 배경 흐림도 인상적이다.

소니 칼 자이스 플라나 T* 85mm F1.4 ZA. / 소니 제공
소니 칼 자이스 플라나 T* 85mm F1.4 ZA. / 소니 제공
조리개를 F2.0으로 한 단만 조이면 이 렌즈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해상력이 높아져 피사체를 선명하고 날카롭게 묘사한다. 소위 '쨍한' 사진을 원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그렇다. 소니 알파 마운트 칼 자이스 플라나 85mm F1.4 ZA는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요소를 한 몸에 품은 렌즈다. 렌즈 한개가 렌즈 두종류의 역할을 해내는 셈이다. 단, 구형 제품인 만큼 거슬릴 정도로 큰 자동 초점 소음은 감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신 제품인 소니 FE 85mm F1.4 GM보다 이 렌즈에 더 호감을 느낀다.

그 다음 인상적이었던 렌즈가 올림푸스 포서즈 포맷 렌즈, 주이코 디지털 12-60mm F2.8-4 SWD다. 이 렌즈는 35mm 환산 24-120mm 초점 거리를 지원한다. 넓은 풍경 사진, 인물 사진, 접사에 야경 등등 어떤 촬영 환경에도 어울린다. 게다가 조리개 값은 F2.8-4로, 표준 줌 렌즈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밝다. 이 렌즈의 진가는 출시 당시(2008년) 올림푸스 플래그십 DSLR 카메라였던 E-3 혹은 E-5와의 조합에서 나온다.

기자가 사용하던 올림푸스 포서즈 DSLR 카메라 E-3와 주이코 디지털 12-60mm F2.8-4 SWD 렌즈. / 차주경 기자
기자가 사용하던 올림푸스 포서즈 DSLR 카메라 E-3와 주이코 디지털 12-60mm F2.8-4 SWD 렌즈. / 차주경 기자
올림푸스 주이코 디지털 12-60mm F2.8-4 SWD와 E-3(혹은 E-5)가 자동 초점을 잡는 속도는 오늘날 최고급 DSLR·미러리스 카메라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렌즈의 초음파 모터는 조용하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스스로의 역할을 해낸다. 높은 수준의 방진방적도 지원한다. 당시 온라인 동호회에서는 이 렌즈에 물을 끼얹는 퍼포먼스가 유행하기도 했다.

단점은, 올림푸스가 포서즈 포맷 카메라 시스템 개발을 중단했다는 점. 이제 이 렌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올림푸스 주이코 디지털 12-60mm F2.8-4 SWD를 보고 있노라면 올림푸스가 사뭇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는 라이카 M 주미룩스 50mm F1.4 ASPH를 들고 싶다. 쏟아질 비난을 알고 있기에 미리 이야기한다. 이 렌즈는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 렌즈를 구입할 비용이면, 경쟁사의 50mm F1.4 렌즈를 10대 이상 구입할 수 있다. 중고급 렌즈 교환식 디지털 카메라와 고급 렌즈 서너개도 살 수 있다. 최단 촬영 거리도 70cm로 길어 불편하고, 심지어 초점은 수동으로 맞춰야 한다. 장점이라 일컬어지던 화질도 최신 고화질 렌즈와 비교하면 평범한 수준이다. 작은 부피는 확실한 장점이지만.

라이카 M 모노크롬과 M 주미룩스 50mm F1.4 ASPH. / 차주경 기자
라이카 M 모노크롬과 M 주미룩스 50mm F1.4 ASPH. / 차주경 기자
그럼에도 라이카 M 주미룩스 50mm F1.4 ASPH와 M 시스템은 한번은 체험해볼 가치가 있다. 라이카의 역설이랄까. 비싸고 사용하기 불편하며 다루기도 어렵지만,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 준다. 소비자로 하여금 사진을 더욱 신중하게 찍게 만든다. 이 렌즈는 사진을 한장 한장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 그 진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최신 제품인 ASPH 버전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구형 버전(1~4세대)을 접하는 것도 좋다. 라이카 렌즈는 출시 시기와 설계에 따라 세대가 달라지는데, 세대별로 렌즈의 발색과 특성이 모두 다른 덕분이다.

아쉽게도, 기자는 2010년 이후 출시된 렌즈 중에서는 아직까지 인상적인 제품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기자가 사진을 찍는 한 언젠가 '위 렌즈들을 넘어서는 최고의 렌즈'를 만날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