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서 9부 능선을 넘으며 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도시바메모리 주력 생산공장인 미에현 소재 요카이치 공장 전경. / 도시바 제공
도시바메모리 주력 생산공장인 미에현 소재 요카이치 공장 전경. / 도시바 제공
27일 SK하이닉스는 이사회를 열고 도시바메모리 지분 투자건을 의결했다.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의 도시바메모리 인수 금액은 2조엔(20조원)이며, 이 중 SK하이닉스의 투자 금액은 3950억엔(4조원)이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도시바메모리 인수 진행 상황과 관련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만큼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된 탓이다. 이번 SK하이닉스 이사회의 투자건 의결 발표는 사실상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의 본계약 체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 한 관계자는 "본계약 체결일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서 더 이상 큰 변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이사회 의결이 이뤄졌다"며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본계약 체결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업계 2위 도시바+5위 SK하이닉스, 3D 낸드 생산 증대 경쟁 예고

반도체 업계는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이 막바지 국면에서 다다르며 향후 낸드플래시 시장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당장 도시바가 매각 작업을 완료하는 2018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3차원(3D) 낸드플래시 생산 증대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시바메모리가 모회사의 재정적 문제에서 벗어나 기술력·생산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원조로 불리지만, 3D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가 최초로 양산에 성공하며 시장 주도권을 잡았다. 3D 낸드플래시는 기존 평면 낸드플래시의 집적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직으로 칩을 쌓아올리는 기술이 핵심이다. 3D 낸드플래시는 현재 4세대(64~72단) 제품이 시장에 공급되고 있으며, 90단 이상의 5세대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초부터 4세대 64단 3D 낸드플래시를 기업 고객에 공급하기 시작한 이래 6월에는 양산 체계를 확대해 소비자용 제품까지 라인업을 넓혔다. 8월에는 64단 3D 낸드플래시 기반의 일반 소비자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제품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단일 라인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평택 반도체 공장을 7월 가동하면서 연내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에서 64단 3D 낸드플래시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도시바와 SK하이닉스도 최근 몇 년간 3D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도시바는 파트너사인 웨스턴디지털(WD)과 공동으로 2017년 초 64단 3D 낸드플래시 제품을 시험 생산한데 이어 7월에는 기존 3비트(TLC)보다 저장 밀도를 높인 4비트(QLC) 3D 낸드플래시 기술까지 개발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7월부터 4세대 72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하고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시작했다. 기술 격차는 어느정도 따라잡은 셈이다.

SK하이닉스의 72단 낸드플래시 제품 모습. /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의 72단 낸드플래시 제품 모습. / SK하이닉스 제공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서 애플, 델, 씨게이트, 킹스톤 등 주요 고객사를 컨소시엄에 끌어들인 점도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기업 모두 최근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으로 자세 제품에 탑재할 제품 수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도시바메모리 매각 본계약을 완료하고 2018년 상반기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면 도시바메모리는 고객사 요구에 따라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생산능력을 높이라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도시바메모리가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전에서 SK하이닉스는 투자금 4조원 중 1조3000억원은 전환사채 형식으로 투자해 향후 도시바메모리에 대한 의결권 지분율을 15%까지 확보할 수 있다. 그동안 SK하이닉스의 지분 확보를 두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SK하이닉스의 뚝심이 통한 셈이다. 나머지 2조7000억원은 베인캐피탈이 조성할 펀드에 펀드출자자(LP) 형태로 투자해 도시바메모리 상장 시 자본 이득도 기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 사업자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5위권에 머물러 있다. 2017년 2분기 기준으로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38.2%), 2위는 도시바(16.1%), 3위는 WD(15.8%), 4위는 마이크론(11.6%), 5위는 SK하이닉스(10.6%)다.

SK하이닉스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이번 도시바메모리 지분 투자를 통해 성장성이 큰 낸드플래시 사업 및 기술적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우위를 확보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