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3대 버블, 네덜란드 튤립 버블·남해 회사 버블에 이어 프랑스 미시시피 투기를 다루고 있다. 지난 칼럼을 통해 로우가 생각한 오늘날 가상화폐와 같은 혁신은 무엇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요직에 올랐는지 살펴봤다. 이번에는 그가 어떻게 버블을 일으켰는지, 그 말로와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볼 차례다.

당시 프랑스는 미국 루이지애나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대륙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했으나 거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1718년 로우는 이 땅을 개발하기 위해 루이지애나 개발독점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양도거래에 응찰한 후 낙찰 받았다. 이후 회사명을 서방회사(Conpagnie d'Occident)로 개명하고 주식회사로 전환시킨다.

로우가 발행한 주식의 최초 액면가는 당시 500리브르였다. 그는 회사의 주식을 국채로 살 수 있도록 해 마치 '정부에서 출자한 회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후 5만주를 신주로 발행하고 자신이 90%를 인수하는 주식 발행에 성공한다.

주식 매각대금을 프랑스 국채로 받아 국가 채무도 해결하고, 식민지도 개발 가능하다는 사실에 고무된 프랑스 필리프 2세는 로우의 은행에 더 많은 특혜를 줬다. 서방회사는 1719년 5월 인도회사로 재편되며 프랑스가 보유한 모든 해상상업적 권리를 독점하게 됐다. 이 후 이 회사는 다시 '미시시피회사'로 불리게 된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아무 이익을 내지 못하는 땅이었다. 로우는 수감된 범죄자 중 루이지애나에 가려는 희망자를 모았고, 석방 조건으로 결혼을 시켰다. 이들 부부가 루이지애나를 개척하려 삽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은 루이지애나 붐을 일으켰다.

이어 로우는 500리브르에 발행한 주식이 300리브르로 떨어지자 '6개월 이내에 500리브르에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로우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주가를 떠받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로우는 12% 배당을 약속, 주가를 세달 사이 7배 폭등시키고 5만주 신주를 발행했다. 이렇게 조달한 자본을 바탕으로 정부로부터 국제징수권을 추가로 인수받고, 대금은 신주로 지불했다. 그 구실로 액면가 500리브르의 주식을 5000리브르에 10만주나 추가 발행했다. 때마침 루이지애나에 금이 매장됐다는 소문이 나 미시시피회사의 주가는 더 상승했다.

미시시피회사 주가는 1718년 10월쯤 6500리브르를, 11월 말에는 1만리브르를 넘어섰다. 주식 폭등에 힘입어 '백만장자'가 생겨났다. 로우는 투자자들에게 1000리브르 예탁금을 내고 6개월 후 행사가격 1만리브르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을 팔았고, 증가한 롱포지션 덕분에 주가는 1719년 2만리브르까지 올랐다. 여기에는 오를 만한 논리적 이유가 전혀 없었으나, 여하간 주가는 상승했다. 미시시피회사 시가총액은 프랑스 전체 금과 은의 가치를 합한 것보다 8배 많았다.

정치적 입지가 더 단단해진 로우는 프랑스 재무장관이 됐다. 그는 은행권 지폐를 유일한 법정통화로 선언하고, 100프랑 이상 거래는 금이나 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선언한다. 이로 인해 통화량이 세 배로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심화됐고, 로우 소유 왕립은행에서 찍은 지폐로 미시시피회사 주식을 살 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주가는 40배나 폭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콩티 왕자가 미시시피회사의 지분을 팔아 금과 은으로 바꿨다는 소문이 파리에 돌았다. 이 소문 하나 때문에 미시시피회사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났고, 많은 이가 주식을 매각하며 주가는 1만리브르에서 500리브르로, 한순간 무려 95% 폭락했다.

거품 붕괴로 인해 백성과 귀족 모두 희생됐고, 1720년 6월 폭동이 일어났다. 로우를 사형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로우는 해외로 도피했고 사건은 끝났다.

미시시피버블의 파장이 워낙 컸던지라 프랑스 정부는 이후 150년 동안 주식회사 설립을 제한했다. 또한 중앙은행 이외에는 은행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미시시피버블은 당시 사회계층 구조에 심각한 타격을 줘 프랑스 혁명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로우는 금융위기를 야기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자본금 5000만리브르의 인도회사, 300척에서 1800척으로 늘어난 상선 등이 '로우발 버블의 긍정적 효과'였다고 평가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버블은 인류에 발전과 유산을 남기는 만큼, 버블이 나쁜 것은 아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IT버블은 우리에게 인터넷 인프라와 구글, 아마존 등 훌륭한 IT기업을 남겼다.

최근 가상화폐와 관련해 '버블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온다.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버블이 있었기 때문에 투자가 집중됐고, 단기간내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하지만, 만일 독자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우리 지역에 인터넷 통신망을 새로 깔아야 하니 주민 모두 1억씩 투자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당신은 흔쾌히 1억을 투자할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지방자치단체장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코인을 만들어 가격이 1년내에 100배가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며 1억원씩 투자 받은 후 그 돈으로 코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통신망을 깔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사기 소송을 진행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탄핵할 것이다.

미시시피 버블 피해자들은 '미시시피회사에 배 1500척을 사주기 위해' 자신의 돈을 투자한 것이 아니다. IT버블 피해자 또한 '인터넷 통신망을 깔아 주기 위해' 자신의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기반 코인을 산 투자자들도 '전 국가적 블록체인기술 개발을 위해' 희생할 생각으로 이에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자금을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운용하려 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기다.

버블의 희생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개 서민이다. '모든 버블은 인류의 발전과 유산을 남기기 때문에 버블이 일어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곧 '서민의 돈을 투자 받아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투자하더라도, 여하간 국가와 인류발전에 이바지하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이 나쁜 것이 아니다'와 같은 주장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투자자 및 서민을 보호하고 공정한 룰을 제공해야 하는 정책입안자도 이 사상에 동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가상화폐 투자자 중, 시세가 폭락해 팔지 못하고 기다리는 이들을 '시체'라 부른다고 한다. 희생자 위에 이룩한 사회의 인프라와 발전은 공정하지도, 옳지도 않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 및 전자화폐로, 시드니공과대학 재직시절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화폐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SWIFT Institute 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전자화폐가 진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가 대체투자 자산이 될지,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질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