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70~80년대 일본 표준을 여러 분야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국제표준 제안 실적도 일본의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22일 이승우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의 작심 발언이다. 이 원장은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 분쟁과 같은 대외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우리나라가 국제표준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 국제표준화 선점전략 이행 및 확산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가운데) / 김동진 기자
’4차 산업혁명시대 국제표준화 선점전략 이행 및 확산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가운데) / 김동진 기자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날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20개 기업・기관을 초청,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표준화 선점전략 이행 및 확산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장 분위기는 상당히 진지했다. 더 이상 일본 표준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반응이었다. 민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의 국제표준을 선점해야 한다는데 머리를 맞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은 초연결이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을 주도하려면 국제표준화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지닌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표준화는 필요하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이 원장의 말대로 표준 주도권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집계한 국제표준 제안 실적을 보면 한국은 811개인데 비해 일본은 1790개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관련 국제기구 의장단 수도 선진국보다 부족하다.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의장단 수는 독일은 64명, 일본은 56명인데 비해 한국은 26명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장단 수는 중국 18명, 러시아가 16명이고 한국은 15명이다. 이상훈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장은 선진국보다 부족한 의장단의 수를 2023년까지 60명으로 늘려야 국제표준화 선점이 수월하다고 강조했다.

한진규 삼성전자 그룹장도 정부 차원의 글로벌 표준 주도권 노력을 역설했다. 한 그룹장은 "국제표준화 기구 의장이 되려면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이 필요하다"며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제기구 의장에 기업의 핵심 인력이 뽑힌다면 손실은 막대해 이를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손해를 감수하며 표준화에 꾸준히 투자하기는 어렵다"며 "산업 전반이 국제표준화에 몰두하도록 지원해 달라"고 전했다.

간담회에선 의장단 수 확보뿐만 아니라 2023년까지 국제표준 300건을 제안해 국제표준의 20%를 선점하자는 구체적 목표도 나왔다.

이어 각 기관은 혁신성장산업 표준개발과 산업정책 간 표준연계 강화 등 국제표준화 선점전략 3대 추진과제와 9개 세부과제를 위해 역할을 분담했다.

전자부품연구원, 자동차부품연구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LS산전은 자율주행차와 수소에너지・스마트공장 등 10대 산업 분야별 국제표준 300종 개발과 개발자 지원을 위해 협력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국가 연구·개발 결과물을 보유한 국가기술은행(NTB)의 자원을 국제표준화와 연계하는 작업을 돕는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발굴한 기술을 국제표준화하도록 지원한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등 시험·인증 전문기관은 기술의 상호 운용성을 검증하고 안전성 평가표준 개발을 위한 시험장 등을 만든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우석대학교는 산업정책에 기반한 국제·국가 표준화 전략 로드맵이 나오도록 지원한다.

특허청은 표준특허 활성화를 위해 국가기술표준원을 비롯한 관계부처와 '표준특허 전략협의회'를 구성하고 이를 지원한다.

중앙대학교는 기업 실무자가 국제표준화 회의에 활발히 참여하도록 기업 경영자 대상의 표준 고위과정을 운영한다. 표준 석박사 대학원 전공 과정도 개설해 표준화 전문인력을 배출한다.

한국표준협회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표준화 활동을 돕는 표준화 지원 매치업(match up) 사업을 추진한다.

참석자들은 간담회를 꾸준히 열어 과제 수행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