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저명한 인간 작가보다 AI 화가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AI ART’ 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창작으로 예술 분야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AI 바람을 [AI ART, 예술의 의미를 묻다] 시리즈로 인사들의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⑤이수진 중앙대 교수 "인공지능 기술 시대의 예술작품"

지난해 ‘인공지능(AI)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주제로 인사동에서 전시를 열었다.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겐 영 낯설지만은 않은 주제일 터.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소논문 제목에서 따왔다.

사진은 1826년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에 의해 탄생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재하는 물체의 완벽한 ‘재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사진은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삶의 보편적인 표현 양식으로 진화했다. 당장 우리의 수족인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사진을 접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이 놀라운 사건에 환호했다. 그가 재현 기술에 매료된 이유는 여러 맥락에서 짚어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가장 주목한 건 전통 예술 작품의 미묘한 고유성을 의미하는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소논문에서 그가 펼친 주장은 타당했다. 아우라의 소멸은 광범위한 재현을 통한 새로운 대중 예술의 가능성을 열었다. 필자조차도 사진을 한창 공부하던 1999년에는 그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아우라를 씌울 수 있을까? 예술을 하는 혹은 예술을 하고 싶은 1인으로서 늘 고민이었다. 하지만 불현듯 벤야민의 통찰이 찾아왔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가시화하는 작업이 시각 예술이다.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이 있고 필자는 그 매체로 사진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붓이나 펜에는 능숙하지 않지만 기계는 친숙했고 잘 다루기도 했다. 또 ‘완벽한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담아내고 현상과 인화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정착하는 과정이 더욱 정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정직성은 결국, 생산 과정에서의 일정한 문법에 근거하는 것이다. 문법이 있다는 건 이해하기만 하면 틀리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법의 정확성은 기술의 정확도에 따라 확정된다. 사진기라는 기계로 만들어 놓은 사진 이미지는 재현의 순간을 정확하게 복제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유일무이한 현존성이 아우라를 만들고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50년이 지난 현재는 그 아우라를 만들고자 사진의 에디션을 정한다.

발터 벤야민이 살아 있다면 A.I. 아틀리에(Atelier)를 예술의 아우라를 진정으로 없앤 도구라 칭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누구나 이 도구를 만나면 수많은 이미지 콘텐츠와 스타일을 복제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기계는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으로 연산 과정을 거쳐 마치 생각한 것처럼 복제한 이미지를 재해석한다. 이상하지만 또 정직하게 유일무이의 현존성은 갖되 아우라는 없는 것이다.

이수진 교수가 빈센트 반 고흐를 오마주해 내놓은 작품인 ‘갈색모자의 뒷모습, 2018’. / 이수진 중앙대 교수
이수진 교수가 빈센트 반 고흐를 오마주해 내놓은 작품인 ‘갈색모자의 뒷모습, 2018’. / 이수진 중앙대 교수
A.I. Atelier는 인간의 시각 처리 과정과 인간의 뇌가 생각하는 구조를 학습한 딥러닝 기술로 인공지능연구원(AIRI)에 의해 탄생했다. 스타일 트랜스퍼(Style Transfer) 알고리즘을 응용한 도구다. 기존의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한 컴퓨터가 특정 화풍을 자유자재로 선택해 입힐 수 있다. 또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를 오브젝트로 선택할 수 있고, 그 오브젝트를 자유롭게 재배치하고 생성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이미지와 화풍이 물감이나 붓과 같은 재료 혹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A.I.Atelier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 때도 예술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AI 기술이 예술 영역으로 진입하는 지금, 사람들은 걱정한다. 이제 인간의 정신 영역까지 지배당하는 것인가? 필자는 그 반대를 말하고 싶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물리적 행위와 시간은 뒤로하고, 인간은 더 폭넓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하자. 그 자유를 만끽하자.

그런데 왜 타인의 화풍을 재료로 삼은 것일까. 우리는 표현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이 B.C. 15000년에 그려진 것을 상기해 볼 때 그 욕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필자는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혹은 매료된 스타일을 모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욕망이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욕망이 A.I.Atelier를 이용해 AI 기술 시대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2013년 파리의 도시 공간을 125년 전 파리 공간을 표현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Café Terrace at Night, 1888)으로 전이해봤다. 본 작품(갈색모자의 뒷모습, 2018)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오마주이다. 화가의 정신세계가 담긴 화풍을 수치로 변환해 표현했다. 그의 정신세계가 그만의 화풍을 만들었는데, 이를 수치로 변환해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고흐의 화풍도 살아 있지만 작가가 2013년에 기록한 사진 데이터도 살아 있다. 필자는 사진으로 도시를 표현하고자 연구했고, 컴퓨터 비전 기술로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어떻게 변형할 수 있을까 연구해왔다. 현재는 AI 기술로 동시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술과 예술은 대척점에 있는 듯하지만 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무한한 창의력이다. AI 기술이 예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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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교수는 중앙대 소프트웨어(SW)교육원 특임교수이자 인공지능연구원(AIRI) 협력작가이다. 중앙대와 한남대, 세종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다수 저서와 논문 실적이 있을 뿐 아니라 연구와 전시 경력도 있다. 고려대 응용동물과학과 졸업 후 서강대 미디어공학과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