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회장 레이스 선수가 9인으로 최종 결정됐다. 전현직 KT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참여정부 시절 장관 출신도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물망에 올랐기에 큰 반전이라 할 만한 인사는 없다.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과거부터 회장 선임 때마다 불거졌던 정권발 ‘낙하산 인사’ 논란 부분은 상당 부분 희석됐다. 이제 남은 것은 경영능력 평가다.

박근혜정부 때 취임한 삼성 출신 황창규 회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풍을 겪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황 회장은 민영 KT 출범 후 처음으로 연임 임기를 꽉 채운 회장이 될 예정이다. 민간 회사임에도 주인이 없다보니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졌던 KT 회장 자리다. 이 흑역사를 완전히 끊을 길이 열렸다. 이건만으로도 황회장의 업적이 될 정도로 의미 있는 일이다.

차기 KT 회장이 누가될 지 예측하기 어렵다. 후보자가 예상보다 많아 더 그렇다. 하지만 KT 안팎에서 보는 차기 회장 덕목만큼은 대체로 일치한다. 미래 비전을 제시고 이를 힘있게 그려낼 추진력과 계열사 포함 6만명이 넘는 구성원을 이끌어 갈 재목이어야 한다. 이에 합당한 인물이라면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KT 내부는 이석채 전 회장 때부터 어수선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원래 KT’와 ‘올레 KT’로 완전히 갈라져 구성원 간 편가르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이 전 회장은 ‘올레’라는 새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KT를 재구성했다. 애초부터 KT에 있던 인사(원래KT)보다 외부 영입 인사(올레KT)에 힘을 더 실어줬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줄을 댄 인물이 낙하산으로 들어왔고, 내부 갈등으로 이어졌다. 황창규 회장 취임 후 6년이 다 돼가지만 이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차기 회장의 과제가 이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는다. 할 일이 수두룩하다. 당장 국회가 논의 중인 유료방송 합산규제와 케이뱅크 대주주 변경 문제 등을 원만히 해결해야 한다. 5세대(G)와 인공지능(AI) 시대 새로운 먹거리 창출과 인공지능 전문회사 도약을 위한 추진력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이통사는 과거 통신 인프라 구축자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모든 산업과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플랫폼 사업자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구현모 KT 커스터머&미디어 사장, 김태호 전 KT기획실장,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박윤영 KT 기업사업부문장, 이동면 플랫폼사업부문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사장, 최두환 전 KT종합기술원장, 표현명 전 롯데렌탈 사장./ KT 제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구현모 KT 커스터머&미디어 사장, 김태호 전 KT기획실장,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박윤영 KT 기업사업부문장, 이동면 플랫폼사업부문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사장, 최두환 전 KT종합기술원장, 표현명 전 롯데렌탈 사장./ KT 제공
KT 회장들은 그간 사업보다 외풍 차단, 내부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해야 했다. 그 사이 SK와 LG라는 오너 있는 경쟁 통신그룹은 부쩍 성장했다. 심지어 늘 꼴찌라고 무시했던 LG유플러스로부터 도전을 받는 지경이다. KT로선 전통적으로 강했던 통신을 넘어 방송과 신사업 분야까지 업계를 주도할 능력자를 뽑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KT 회장후보심사위원회의 후보 자격심사와 심층면접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후보마다 능력을 검증할 심층면접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이 절차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사실상 통과의례였다. 이번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후보자도 공개했기 때문이다.

1차로 걸러진 후보 면면을 봐도 그렇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당장은 차기 회장 자리와 먼 거리에 있어 보이더라도 누구나 실력으로 판을 바꿀 만한 후보자들이라 게 KT 안팎의 시각이다.

사장과 부사장이 함께 오른 KT 사내 후보는 ‘계급장 떼고’ 실력을 검증할 대진표로 받아들여진다. 사내 후보는 사외 후보보다 유리하다. KT 내부 현안을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적이라는 결과물도 있다.

그렇다고 강점만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KT 안에만 있었기에 되레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과 해결책 제시가 부족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한 사내 후보가 있다면 최종 후보자에 바짝 다가설 수 있다.

KT 출신 사외 후보들은 새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바깥에 있었기에 현 KT의 문제점을 객관적이고 볼 수 있다. 저마다 KT를 나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장을 떠난 이후 통신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를 얼마나 잘 파악했느냐에 따라 이들이 제시할 해결책도 달라지며, 심사위원들의 판단에도 즉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노준형 전 장관만 유일한 비KT 출신 후보다. 무게감으로는 다른 후보를 압도한다. 참여정부 장관임에도 현 정부나 정치권과 거리를 유지해 ‘낙하산’과 같은 꼬리표도 붙지 않았다. 신산업과 융합산업에 걸친 통찰력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다른 후보와 달리 실제 경영 경험이 없다는 점은 큰 약점이다. 이를 불식시키는 게 노 후보자의 과제다.

KT 한 관계자는 "내외부에서 이번만큼은 공정한 인선 프로세스를 통해 실력있는 신임 회장 선임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 KT를 이끌어갈 분이 뽑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KT 내부에 정통한 정부 고위관료 출신 한 인사도 "예상보다 후보자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력 있는 인사를 신임 CEO로 선출할 것으로 안다"며 "누가 유리한지를 언급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KT 이사회는 12일 총 37명의 회장 후보 신청자 중 9명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 ▲현직인 구현모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 이동면 플랫폼사업부문장(사장), 박윤영 기업사업부문장(부사장) 등 3명 ▲전직인 임헌문 전 매스총괄(사장), 김태호 전 KT 혁신기획실장(사장), 표현명 전 텔레콤&컨버전스 부문 사장, 최두환 전 KT종합기술원장(사장) 등 4명 ▲외부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비공개 1명 등이 있다. 비공개 1인과 관련해 다양한 추정이 나오지만, KT 출신이면서 미래창조과학부 차관까지 지낸 윤모씨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KT 이사회는 이르면 12월 말, 늦어도 내년 1월 초 최종 1인을 확정한다. 확정 직후 인수위 구성과 함께 황창규 현 회장 퇴직 프로세스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