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쿡에 5G 기지국 만들라던 트럼프, 화웨이 역공에 ‘휘청’

이광영 기자
입력 2020.02.03 06: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하던 반(反) 화웨이 동맹이 흔들린다. 영국은 5G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유럽연합(EU)도 화웨이 장비 사용금지 조치를 권고하지 않았다. 캐나다도 영국과 유사한 제한적 도입을 검토 중이다. 백도어 우려를 중심으로 공세를 펼친 미국이 화웨이의 역공에 휘청거리는 모양새다.

앞서 미국은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며 주요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 배제를 요구했다. 화웨이 장비를 쓰는 국가와는 정보 공유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2018년 12월에는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부회장인 멍완저우를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하며 중국 정부 압박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 / 일러스트 IT조선 김다희 기자
미국의 공세에 화웨이는 움츠러드는 듯 했지만 이내 날개를 편다. 오히려 영어권 5개국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균열이 생겼다. 믿었던 ‘우군’ 영국마저 28일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화웨이 장비에 대한 제한적 허용 방침 의사를 밝히면서다.

글로벌 통신장비 생태계에서 화웨이를 견제할 만한 미국 기업은 없다. 대체재를 공급하는 자국 기업이 없는 약점은 꽤나 치명적이다. 백도어 우려를 제기하는 것 외에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라고 설득할만한 명분은 없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화웨이 장비 도입을 확정짓기 전 "한두개 브랜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안을 제시하라"고 발언했다. 대안 제시 없이 압박만 가하는 미 정부를 향한 외침이다.

통신장비업체는 한번 잡은 물고기(이통사)를 거의 놓치지 않는다. 이통사가 다음 세대 장비를 도입할 때 호환성 문제로 기존 장비업체를 택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간과한 부분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9년 3분기 기준 전체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 점유율은 34%로 1위였고, 같은 시기 5G 장비 시장점유율 1위도 화웨이(30%) 차지였다.

화웨이 통신장비 가격은 타사 대비 40%쯤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LTE 네트워크의 상당 부분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영국이 이 회사를 배제할 경우 손실은 68억파운드(10조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영국 경제전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EU가 화웨이 5G 장비 사용을 배제하면 5G 투자 비용이 최대 2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아무리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존슨 총리라도 이같은 손실을 감수하기엔 부담스럽다.

화웨이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목표를 철저히 파고든다. LG유플러스는 경쟁사 대비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장비를 저렴하게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화웨이 장비 도입을 확정지으면서 타사와 협상 테이블을 유리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SK텔레콤 역시 삼성전자와 협상에서 화웨이를 끝까지 배제하지 않으며 전략적으로 활용한 바 있다. 실제 화웨이는 자사 장비를 쓰지 않은 SK텔레콤과 KT를 상대로 LTE 장비 무상 교체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정부는 5월 화웨이와 그 계열사 68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퀄컴, 구글, 시스코시스템스, 인텔 등 자국 기업의 거래를 중단하는 방법으로 화웨이에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자국기업의 피해도 키울 수 있어 현실적으로 지속하기 어렵다. 미 IT기업에 화웨이는 최대 고객사 중 하나다. 거래 중단 기간이 길어질수록 손실이 커진다. 한일갈등에 따른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당장 한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만 한국 기업과 수출 거래선이 끊겨 매출이 급감한 일본기업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 정부의 반격도 만만찮다. 미 동맹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는 동시에 중국과 무역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중국은 최근 영국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자국 기업의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으름장을 놨다.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한 캐나다에는 카놀라유와 육류제품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독일에는 중국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독일차에 대해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국 5G 인프라를 구축해달라고 애플에 제안한 것도 통신장비 생태계에서 화웨이 견제 방안을 골몰하며 꺼내든 카드다. 하지만 스마트폰 제조사인 애플의 사업 구조를 고려하면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11월 21일 트위터를 통해 "팀 쿡 애플 CEO에게 미국 내 5G 인프라 구축에 참여할 수 있는 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며 "애플은 돈과 기술, 비전과 ‘쿡 CEO’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세가 약화하자 화웨이는 점차 여유를 드러낸다. 런정페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없이도 매우 잘 생존할 수 있다"며 "그들(미국)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거기(블랙리스트)에 둬도 좋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22일 세계 경제포럼의 연차총회인 다보스 회의에서도 "올해 미국이 더 많이 공격할지 모르겠지만, 화웨이 사업에 끼치는 영향은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거듭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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