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술은 발효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술 맛이 들어간다. 그럼 커피도 발효과정을 거치면 맛이 더 좋아질까?
맥주는 종류에 따라 상면발효, 하면발효 등의 공정을 거친다. 와인도 오크통 속에서 일정기간 발효시킨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가공 공정에 따라 다양한 발효과정을 거친다.
커피 맛은 기본적으로 어떤 토양에 어떤 품종의 씨앗을 심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재배하였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또한 커피의 맛과 향은 ‘커피생콩’(green coffee bean)을 어떻게 로스팅하였는지, 로스팅한 커피 원두를 어떠한 방법으로 추출하였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 외에도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한 후 어떤 가공방식으로 처리하였는지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은 크게 달라진다.
가공공정은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한 후 과육을 벗겨내고 그 속에 있는 알맹이를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열매에서 과육을 벗겨낸 알맹이가 바로 커피생콩이다.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이 가공공정을 거쳐야 한다. 바로 이 가공공정에 발효 과정이 포함된다.
수확된 커피 열매는 곧바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통상 수확 당일 3시간 내에 가공 처리를 시작한다. 그 방법은 수확하여 선별한 커피 열매를 그대로 건조시키는 자연건조방식, 반건조방식, 물에 씻는 수세식방식과 여러가지 방식을 변형한 방법 등 다양하다. 어떠한 가공방식을 택할지라도 발효과정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자연건조방식과 반건조방식은 커피열매를 자연적으로 건조하는 과정에서 미생물이 생성해 발효가 일어난다. 커피열매 그대로 껍질을 벗기지 않거나 커피열매의 껍질을 벗기고난 후 대기 속에 일정한 시간 동안 놔두어 과육에서 미생물이 생성하게 하는 것이 건식발효 방식이다. 일정한 시간 한계를 찾아 발효과정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세식방식은 커피 열매를 물속에 일정시간 담궈 껍질을 벗겨내고 점액질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발효가 된다. 물 온도와 담가둔 시간이 커피의 향과 맛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즉, 온도와 시간을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물 속에 떠다니는 미생물이 콩에 되붙어 악취를 내는 결점두가 될 수가 있다. 따라서 일정 시간이 되면 신속하고 깨끗하게 여러 번 헹구어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일명 습식발효라고 부른다.
최근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는 무산소발효라는 새로운 가공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수확한 커피열매 그 자체나 외껍질을 벗긴 것을 통(캔이나 오크)이나 비닐 안에 넣고 산소를 차단시켜 일정시간을 두는 방법이다.
커피는 위의 여러가지 공정을 거처야만 커피열매에서 알맹이를 빼낼 수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발효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커피의 품질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페셜티커피 가공업체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2019년 11월 7일~10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카페 쇼’에 코스타리카 산지 조합원들이 방문해 산지의 커피생산 현황 및 가공 방식에 대해 콘퍼런스를 했다. 이때 무산소 발효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무산소 발효를 위해 통에 가공처리할 커피열매나 파치먼트(커피외피를 벗기고 과육이 남아있는 상태)를 담고 그 위에 특색있는 향미를 갖춘 파치먼트나 커피열매를 추가한 후 공기를 차단한 채 24~30시간 동안 놓아둔다. 그러면 내부 열에너지와 미생물이 생겨 발효가 일어난다고 한다.
일정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발효과정에서 폭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친 무산소 발효 커피는 위에 올린 파치먼트 종류에 따라 계피향이 나거나 사과파이, 메이플 시럽과 같은 향미를 낸다. 그린커피에 여러가지 향을 추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특이했다.
카페쇼를 둘러 보던 중 특이한 발효커피를 소개하는 곳이 있었다. 루왁커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09년부터 개발했다는 루왁발효커피는 루왁커피의 발효균과 같은 균을 찾아내 인위적으로 배양한 후 커피콩에 스며들게 한다. 루왁커피는 사향고향이가 배설한 커피콩을 세척해 만든 커피를 말한다. 구수한 누룽지맛이 난다. 루왁커피는 커피열매가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는 동안 발효를 진행하므로 배설된 커피는 당연히 발효된 커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발효과정에서 카페인이 20% 감소된다고 한다.
그런데 루왁커피의 약효와 맛은 소화기관을 거치는 동안의 발효과정보다 커피에 사향고양이의 사향이 묻어나 특유의 향미를 낸다 사향고양이 배설물에 있는 발효균과 같은 균을 인위적으로 배양하여 커피콩에 입혔다 하여 루왁발효커피라고 불러야 할까? 어떠한 커피든지 가공공정에서 발효과정을 모두 거치는데 특별히 발효커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구체적인 커피생콩의 발효 방법과 실험 방법, 실험 결과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정확히 답변을 듣지 못해 아쉬웠다.
또다른 인공적인 발효커피로 (재)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이 순창지역 전통장류기술을 결합하여 개발한 ‘리던순창발효커피’가 있다.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은 2016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하에 발효커피 연구를 시작했다.
수백여종의 발효미생물을 평가하여 최종 2개의 균주(유산균, 고초균)를 선별한 후 다양한 커피품종에 접목해 실험했다. 그 결과 가장 활성화한 것을 최종 선정하여 상품화하였다. 이 발효커피의 특징은 구수하고 풍부한 단맛을 가졌다는 점이다.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은 2019년초 발효커피를 캡슐화한 후 커피 전문가와 커피 전공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반 커피와 인스턴트 커피와 비교하는 관능평가를 실시했다. 일반 커피에 비해 조금은 더 거칠게 느껴졌으나 더 구수하고 단맛을 가졌다는 평가를 얻었다. 전주 시내 일부 카페나 전북대학교 내 카페, 고속버스 휴게소 등의 개인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커피 생산국들은 커피에 다양한 향미를 첨가하기 위해 무산소발효법과 같은 새로운 가공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소비국 역시 다양한 커피의 향미를 구현하려는 실험 연구를 꾸준히 한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노력과 연구 또한 계속될 것이다. 지금껏 맛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향미를 가진 커피를 마실 날이 올 수 있다. 커피 매니아로서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혜경 칼럼리스트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커피산업전공으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커피바리스타제과과와 전주기전대학교 호텔소믈리에바리스타과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바리스타 1급 실기평가위원, 한국커피협회 학술위원회 편집위원장, 한국커피협회 이사를 맡고있다. 서초동에서 ‘젬인브라운’이라는 까페를 운영하며, 저서로 <그린커피>, <커피매니아 되기(1)>, <커피매니아 되기(2)>가 있다. cooykiwi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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