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집단 휴진에 돌입한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호소문을 내고 "의료계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의료정책을 철회해달라"고 밝혔다.

대전협은 31일 공식 홈페이지에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호소문을 게재하고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원점에서부터 재논의해달라"며 "의과대학생들과 전공의, 전임의들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홈페이지
대전협은 "대통령 말씀처럼 젊은 의사들은 ‘적과 맞서 싸울 장수들’임에도 불구하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있고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자의 자리에서 사투를 벌이던 우리를 병원 밖으로 끌어낸 것은 의료계와 협의 없이 세상에 등장해 졸속으로 추진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의료정책이었다"라며 "이 같은 정책들이 불러올 정의롭지 못한 미래를 대통령께서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특히 "젊은 의사들은 누구보다 진료 현장에 복귀하고 싶다"며 "정부 및 국회 책임자들과 거듭 논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여러 이해당사자들과 논의된 사항을 철회할 수 없다’, ‘합의안을 명문화하기 어렵다’는 신뢰하지 못할 답변들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정책을 철회하고 대한의사협회와 원점에서부터 재논의 해달라"며 "두려움에 떨며 대한민국 의료를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의과대학생들과 전공의 및 전임의들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을 멈춰 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코로나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법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하루속히 업무에 복귀하여 환자들을 돌보고, 국민의 불안을 종식시키는 의료계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대전협 호소문 전문.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 젊은 의사들은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대확산이라는 세계적인 보건 위기에 맞서 방역의 최전선에서 불철주야 싸우고 있었습니다. 또 저희는 미래의 대한민국 의료를 이끌어나갈 전문의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진료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심각해지는 이 시기에, 저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의료정책들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 젊은 의사들은,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적과 맞서 싸울 장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해 저희의 양심에 따라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혼란의 시작이 저희 젊은 의사들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투를 벌이던 저희를 병원 밖으로 끌어낸 것은, 의료계와 일체의 협의 없이 세상에 등장해 졸속으로 추진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의료정책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선발과 수련 후 취업 과정에 있어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 ▲본질적인 문제의 원인에 대한 고민 없이 단편적인 통계 수치만 곡해하여 추진 중인 의대 정원 확대, ▲이미 효능이 검증된 고가의 항암제는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수많은 암 환자가 고통받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동일한 수준의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한약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첩약 급여화. 이 정책들이 불러올 정의롭지 못한 미래를 막아주시기를 대통령님께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되는 의료 정책의 이면에 어떤 이해 당사자들이 있는지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대통령님, 정책의 이해 당사자들보다는 국민을 바라봐 주십시오. 우리 국민은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의료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그 의료정책에 의해 부여되는 기회는 평등하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된 의료정책으로 인해 국민이 받아들이게 될 결과는 정의롭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젊은 의사들은 누구보다 진료 현장에 복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총파업을 이어오며 대한민국 의료를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지난 한 달간, 정세균 국무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 정부 및 국회 책임자들과 논의를 거듭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여러 이해당사자들과 논의된 사항을 철회할 수 없다.’, ‘합의안을 명문화하기 어렵다’는 신뢰하지 못할 답변들 뿐이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의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의료계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의료정책을 철회해 주십시오.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원점에서부터 재논의해주십시오.

이번과 같은 졸속 의료정책 추진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국회 내 협의기구 등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명문화된 안전장치를 마련해주십시오.

두려움에 떨며 대한민국 의료를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의과대학생들과 전공의 및 전임의들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을 멈추어 주십시오.

하루빨리 저희가 진료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또다시 다가온 코로나19 대확산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부디 대통령님께서 도와주십시오.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나서주십시오.

하루속히 업무에 복귀해 환자들을 돌보고 국민의 불안을 종식하기 위한 대통령님의 대승적인 결단을 촉구하고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8월 31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박지현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