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노조 "회사는 알고도 묵인했다" 주장…‘업무상 재해’ 강조

"숨진 직원은 임원 A로부터 비상식적 모욕을 당했다. 또 과로에 시달렸지만 회사는 이를 인지하고도 방조했다."

네이버 노동조합이 공동성명을 내고 고인의 극단적 선택은 인사 평가 전권을 지닌 임원A의 직장 괴롭힘과 이로 인한 잇따른 팀원 퇴사, 직원 미충원으로 인한 업무 쏠림 등 상황을 회사가 묵인한 데 따른 ‘업무상 재해'라고 지적했다.

5월 말 네이버 직원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네이버 노동조합이 7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IT조선
5월 말 네이버 직원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네이버 노동조합이 7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IT조선
네이버 노조는 7일 오전 10시 경기도 분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체 조사한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노조가 고인의 동료, 지인 등을 상대로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원인은 ▲ 지나친 업무지시로 인해 야간·휴일 없는 과도한 업무량 ▲ 부당한 업무지시와 모욕적인 언행, 무리한 업무지시 및 폭력적인 정신적 압박 ▲ 회사의 무책임한 방조 등으로 압축된다.

노조는 우선 고인이 임원A의 부당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인 언행, 야간과 휴일, 휴가를 가리지 않는 과도한 업무 지시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특히 고인 동료들은 2년여 동안 이 같은 문제를 회사에 알려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네이버는 임원A를 승진시키는 등의 결정을 내렸다.

노조 관계자는 "지도 개발 실무·관리를 담당하던 고인은 임원A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인 언행에 시달렸다"며 "임원A는 개발 업무를 담당한 고인에게 서비스 기획과 같은 담당 업무가 아닌 업무를 지시했고, 면박과 모욕적 언행을 계속했다"고 강조했다.

임원A는 앞에서는 고인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기도 했다. 일례로 임원A는 고인이 회의에서 제시한 의견을 타박한 뒤 그의 의견과 동일한 내용으로 과제를 진행하자고 얘기했다. 직원들에게 ‘일주일 내에 이력서 100장을 받아오라'는 등 달성이 불가능한 업무 지시를 내리고 미수행을 타박하는 일도 있었다.

고인은 동료와 대화에서 "임원A와 미팅을 할 때마다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노조는 고인이 임원A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네이버의 인사체계상 고인이 포함된 팀의 조직장인 A가 고인의 인사 평가 전권을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지녔기 때문이다. A의 평가에 따라 고인의 연봉인상률, 스톡옵션 부여와 회수, 보직해임과 업무 변경 등 모든 평가가 진행됐다.

네이버 노조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IT조선
네이버 노조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IT조선
회사·경영진이 문제 인지하고도 묵인·방조

노조는 회사와 경영진이 이같은 문제를 인지했지만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다고 지적했다. 2019년 5월 고인을 포함한 팀장(리더) 14명이 회의를 통해 임원A의 문제적 언행과 조직 운영 방식 등을 경영진C에게 토로했지만 해당 임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회의에 참여한 일부 팀장은 직위가 해제됐다. 또 일부는 퇴사를 결정했다. 반면 임원A는 승진했다.

노조는 인사팀차원에서도 관련 문제를 인지한 정황도 있다고 전했다. 노조는 퇴사자 면담 과정에서 인사팀은 퇴사를 결정한 직원들에게 먼저 "임원A로 인해 퇴사를 결정한 것이냐"고 물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또 노조는 지난 3월 이해진 네이버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한성숙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한 직원이 임원 A씨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책임리더 선임의 정당성에 대해 질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인사담당 임원이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고 밝혔다.

네이버 노조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IT조선
네이버 노조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IT조선
명백한 ‘업무상 재해’ …노조 진상조사·데이터 보존 촉구·고용부 특별근로감독 요청

노조는 고인의 사망이 ‘회사가 지시하고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강조했다. 또 고인의 명예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회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노조는 고인의 사내 메신저(웍스)이력, 사내망 접속 이력, 출퇴근 기록, 고인과 임원A의 사내 메신저 기록, 고인과 임원A 그리고 임원B간 오갔던 사내 메신저 기록, 2019년 1월 지도 업무 중 퇴사한 직원들의 퇴사 면담 이력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또 이날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근로기준법 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 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수사권이 있는 고용부는 회사 측에 관련 사안에 대한 자료 요청 등을 강제할 수 있어 진상조사와 별개로 수사를 요청하기로 한 것이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이 사건은 네이버의 소위 C레벨 경영진 중 한 명이 관계된 일이다. 우리는 그간 경영진이 일으킨 문제와 직원이 일으킨 문제 처분이 공정하지 않고, 조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징계 진행 속도와 결과가 동일하지 않게 진행됨을 목도해왔다"고 말했다. 외부 기관을 통한 조사 역시 공정성이 의심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기에 자체조사와 특별근로감독 요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네이버는 이사회 내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해 해당 사건을 살피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어떤 내용으로 조사하고 수사해야 할지는 앞으로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다만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여기에 최근 주52시간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실도 드러났다. 노조에 따르면 네이버 사내독립기업 비즈, 포레스트, 튠 소속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0%가 ‘주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노조는 5월호 소식지에서 긴급 장애 대응, 서비스 출시 등을 이유로 임시 휴무일에 업무하고 사내 시스템에 업무 시간을 적게 기록하는 등 주52시간을 초과한 증거도 남기지 못한 채 업무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과도한 업무량, 부당하고 무리한 업무지시, 모욕적인 언행 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더라면, 적어도 직원들이 제기한 문제를 사측이 제대로 살펴보기만 했더라면 우리가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는 네이버뿐 아니라 IT업계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소임을 다하겠다"고강조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