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동 IP컨설턴트
유경동 IP컨설턴트
일평균 방문자수 3520만명, 개발자 700만명, 시가총액 60조원, 핵심유저 체류시간 유튜브의 2.5배.
이 정도면, "아, 그 회사"하고 몇군데 떠오르는 데가 있어야 할텐데, 아마 딱히 없으실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곳 이름을 들려준다면, 비명부터 지를지 모른다. 오늘 소개할 기업, ‘로블록스’ 얘기다.

메타버스, VR을 넘어서다

이 회사에 대해 말하려면,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로블록스가 바로 이 메타버스 산업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초월’과 ‘가상’을 뜻하는 메타와, 특정 유형의 ‘세계’를 일컫는 유니버스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기존의 VR, 즉 가상현실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예컨대, VR 속에서는 HMD같은 특수 장비를 착용한 채, 나홀로 가상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일방적인 VR 체험을 했다면,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혼자가 아닌 또다른 아바타들과 대화도 하고 게임도 즐기는 다양한 소셜라이징, 즉 사회활동을 하게 된다. 다른 아바타를 상대로 돈을 벌고, 그 돈을 현실 세계에서 쓸 수도 있는 완벽한 경제활동도 가능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사회화를 원하고, 또 그런 사회 활동에 익숙하다. 하지만, 팬데믹 사태 이후 이같은 생활이 제한되면서 자연스레 우리는 그 대안을 찾게 됐다. 비대면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본원적 욕구를 채워주는 메타버스. 코로나 시대 훌륭한 대체재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2021년 상반기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아마존, 페이스북, 텐센트, 애플 등 총 다섯 곳이 메타버스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나선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전세계 메타버스 시장은 현재의 여섯배 이상인 270억달러(약 31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로블록스, 메타버스 시대를 열다

다시 로블록스 얘기다. 미국 IT전문 온라인매체 긱와이어는 최근 "어른들에게 스타벅스가 있다면, 아이들에겐 로블록스가 있다"는 기사로, 이 회사 비즈니스 특유의 사회적 사교성을 강조했다. 애들 코묻은 돈이나 버는, 그런 단순 게임회사가 아니란 얘긴데, 주가가 이를 웅변한다. 2021년 3월 뉴욕증시 상장 이후 연일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중인 로블록스는, 석달 뒤인 6월초 시총이 60조원을 돌파했다. 피파 게임으로 유명한 38년 전통의 게임명가 EA 시총도 상장 직후 단숨에 넘어섰다. 전년도에 3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지만, 시장은 개의치 않는다.


로블록스 주가 추이 / NYSE
로블록스 주가 추이 / NYSE
게임은 병맛, 특허는 참맛

로블록스의 게임을 가르켜 흔히들 ‘병맛’이라고 한다. 초통령 게임이란 수식어만큼이나 ‘맥락 없고 유치하다’는 거다. 하지만, 2004년 창업 이후 20년 가까이 이들이 구축해놓은 IP포트폴리오에선 그런 맛, 찾을 수 없다.

2021년 상반기 현재, 로블록스는 US특허 기준 총 52건의 등록특허와 88건의 출원특허를 보유중이다. 최근 1~2년내 미공개 출원량까지 합하면, 실제 보유 특허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뵌다. IP컨설팅 전문업체 패이턴트피아 분석에 따르면, 로블록스 특허의 평균 평가점수는 99.05점으로 대부분 S등급에 해당하는 역대급이다. 그만큼 이들 특허가 기술은 물론, 사업이나 투자 관점에서도 매력적이라는 뜻인데, 앞서 언급한 주가 상승곡선, 그 이유가 설명되는 대목이다. 자국외 특허는 중국과 EU, 그리고 한국에만 각각 6건과 5건, 그리고 4건을 갖고 있다. 로블록스가 한국 시장을 중국, 유럽과 거의 대등한 위치로 본단 얘기다.

특허출원 건수 추이 / USPTO·패이턴트피아
특허출원 건수 추이 / USPTO·패이턴트피아
이번엔 로블록스 특허문헌에 등재된 기술키워드를, AI기법을 통해 출현 빈도순으로 꼽아봤다. 역시 이 회사는 플랫폼 기반의 가상화 아바타, 즉 메타버스형 게임에 몰입돼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특허는 해당 출원기업의 기술적 정체성과 비즈니스적 지향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로블록스 특허 톱10 기술키워드 / 패이턴트피아
로블록스 특허 톱10 기술키워드 / 패이턴트피아
아래 표는 로블록스 개발자중 상위 10명을 발명건수 순으로 추려낸 거다. 유독 한 사람 눈에 띈다. 독보적인 특허수와 피인용수를 자랑하는 ‘데이비드 바스주키’. 바로 이 회사 창업자 겸 CEO다. 그는 원래 미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개발자 출신이다. 공동창업자 에릭 캐셀도 발명순위 5위에 올라있다. 아무리 개발자 출신이라도 통상 상장기업 CEO 정도되면, 다른 연구원이 발명한 특허에 이름 정도 올리는 식이 많다. 하지만, 바스주키는 달랐다. 그의 발명특허만 따로 떼내, 그 퀄리티를 가늠하는 ‘심사관 피인용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단독발명 특허도 적잖다.

로블록스 발명자 톱10 / 패이턴트피아
로블록스 발명자 톱10 / 패이턴트피아

바스주키 발명 특허의 연도별 심사관 피인용수 / 패이턴트피아
바스주키 발명 특허의 연도별 심사관 피인용수 / 패이턴트피아
바로 그런 특허를 하나 보자. 2019년 9월 미국에서 원출원된 뒤, 한국에도 국제출원돼 2021년 3월 한국 특허청이 공개한 ‘친구 생성을 위한 사용자 생성 콘텐츠 시스템’이라는 비즈니스모델(BM) 특허다.

각종 게임이나 SNS상에서 친구를 추가하려면, 해당 ID에 이른바 ‘친구 추천 요청’을 보내고, 상대방이 그 요청을 수락하면, 비로소 새 친구가 생기는 게 통상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특허는 내가 아닌, 제3자끼리 친구가 될 수 있게 맺어준다. 예컨대, 이 특허의 <도면5>를 보자. 서로 모르는 두 플레이어가 게임상에서 함께 기차를 타고 있다면, 이들에게 "서로 친구가 되면 어떻겠냐"는 친추 요청이 자동 전송되도록 ‘소셜 상호작용 조건’을 시스템화 시켜놨다. 이는 기존의 어떤 소셜라이징 방식과도 차별된다.


‘친구 생성을 위한 사용자 생성 콘텐츠 시스템’ 특허의 <도면5> / 키워트
‘친구 생성을 위한 사용자 생성 콘텐츠 시스템’ 특허의 <도면5> / 키워트
로블록스는 게임콘텐츠 업체답게, 보유특허 중 BM특허가 유독 많은데, 여기엔 여느 업체의 그것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서비스 전체가 아닌, 일부 독특하고 차별화된 기능만을 특정해 청구항을 작성하고 권리화한다는 점이다. 여러 특허 가운데도 BM특허는 특허청 심사 통과가 어렵기로 악명 높다. 하지만, 로블록스는 서비스 전체가 아닌, 누가봐도 독특한 기능에 포커스를 맞춰 등록율도 높이고, 또 경쟁사 진입도 막아낸다.

에필로그

싸이월드, 세이클럽,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도토리에 아바타 아이템까지. 기억하실 거다. 20여년 전, 이 땅은 이미 메타버스 천국였다. 당시 이들이 최소한 특허라도 남겨놓았다면, 지금의 글로벌 메타버스 판도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