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등장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은 과거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다루지 않던 사실적인 전쟁과 캐릭터의 인간 드라마를 그려 ‘리얼 로봇’ 애니메이션의 초석을 세운다.
하지만, 진정한 리얼로봇 애니메이션 장르를 구축한 작품은 따로 있다. 바로 1983년 일본 현지 방영된 ‘장갑기병 보톰즈(装甲騎兵ボトムズ)’다.
타카하시 감독은 보톰즈를 남자 냄새가 물씬 묻어난 하드보일드한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애니메이션 속 로봇 ‘아머드 트루퍼(AT)’는 앞서 등장한 다그람보다 더 사실적인 하나의 무기처럼 그려졌다. 로봇 병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길가메스군 상사이자 주인공인 ‘키리코 큐비’도 자신이 타는 로봇 ‘스코프독’을 소모품처럼 대한다. 키리코는 작품 속 전투에서 로봇이 부서지면 적의 스코프독을 탈취해 탑승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이런 전개는 1950년대부터 이어져 왔던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 콘텐츠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것으로, 로봇이 주인공 행세를 하던 기존 슈퍼로봇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1988년 출간된 책 ‘TV애니메이션 25년사(史)’는 보톰즈 애니메이션을 리얼 로봇 작품의 ‘정점’이라 극찬했다.
◇ 건담과 다르게 만드려다 탄생한 ‘보톰즈’
보톰즈의 탄생은 첫 번째 건담 로봇(모빌슈트)을 모양을 완성시킨 메카닉 디자이너 오오카와라 쿠니오(大河原邦男)가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됐다.
그의 로봇 일러스트를 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는 로봇에 어울리는 스토리와 제작 자금줄이 될 스폰서인 장난감 제조사 타카라(현재 타카라토미)를 붙여 보톰즈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현지 애니메이션 업계 시각이다.
보톰즈 감독 타카하시는 “1979년 건담이 등장한 이후 로봇이 주인공이던 기존 로봇 애니메이션의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고 애니메이트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는 건담을 만든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감독이 우주를 날아는 리얼 로봇을 만들었기 때문에, 건담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로봇 크기가 작으면서 땅에서 싸우는 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타카하시 감독에 따르면 보톰즈는 로봇 전투로 도박을 벌이는 ‘배틀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선수의 모험담으로 그려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선라이즈 애니메이션 제작진과 스폰서가 자신이 내놓은 기획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밝혔다.
보톰즈는 시즌마다 내용 구성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시즌1 ‘우도’는 부폐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느와르 풍 작품으로, 시즌2 ‘쿠멘’은 베트남 전쟁을 연상시키는 전쟁물로, 시즌3 ‘산사’는 전쟁으로 인한 고뇌를 SF스타일로, 시즌4 ‘쿠엔트’는 고대문명을 바탕으로 한 초현실적 내용으로 채워졌다.
타카하시 감독이 선호하는 보톰즈 TV시리즈는 시즌1 ‘우도’와 시즌2 ‘쿠멘’편이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 보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며 “시즌1과 2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제작 마지막 부분에서 체크했다”고 전했다.
감독은 작품 속 전쟁의 느낌을 살리는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과 1955~1975년 베트남 전쟁 속의 일본 사회정세와 정치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서는 직접 그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실적인 인간 드라마와 실제 병기 느낌을 물씬 풍기는 아머드 트루퍼 형태의 로봇은 ‘리얼 로봇’이란 단어와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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