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완의 IT정담] 유명 벤처 1세대, 과거의 망령에 굴복할 것인가?

  • 박철완 박사
    입력 2016.07.01 18:02 | 수정 2016.07.02 00:00

    2015년 하순 어느 날, 창업한 지 1년 정도 된 스타트업 CEO에게 조언할 기회가 있었다. 강남 쪽에서 유명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 활동하는 고등학교, 대학교 C 선배와 커피 마시다가 일어난 조우였다.
    IT와 생활용품이 접목된 제품을 개발한 인상 좋은 30대 초반 CEO였는데, 제품의 양산 시기가 언제쯤일거고 양산에 얼마쯤 들건 지에 관해 대략 한두 시간 동안 랩톱컴퓨터 화면 자료를 보며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CEO는 다음과 같이 유창하게 이야기했던 거로 기억한다. 이 제품은 유일무이하며 독창적인 발상에 기반을 뒀다. 스타트업 전도사를 자처하는 유명 벤처 1세대 CEO 출신 A씨, B씨, C씨들이 회사 자문역이다. 덧붙여 1세대뿐 아니라 자신의 벤처 성공 후 엑셀러레이터로 화려하게 변신한 전직 스타트업 CEO들에게도 자문하고 있으며 목표 시장 자체가 워낙 확고한데다 해외 진출 후 홍보와 네트워킹을 도와줄 면면도 이미 다 갖춰져 있다고 했다. 펀딩 쪽도 시리즈 B, C가 유망하며 양산 후 성공적인 납품 그리고 남은 건 '대박'뿐임을 이야기하는 전도유망한 청년 CEO가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설명이 무르익어갈 즈음 나는 그에게 무미건조하게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다.

    "그런데 제품이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어요?"

    그러고 나서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개발품은 겉보기는 괜찮지만 써보는 순간 UX 자체가 잘못 설계되어 관리가 어렵다. 또한 위생 문제도 유독 두드러진다. 내 지적을 침착하게 듣던 청년 CEO는 그제야 창업 후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자기에게 해준 분이 거의 없었다며 자기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토로했었다. 이윽고 돌아온 C 선배와 셋이서 황태 해장국으로 점심을 같이하고 만남을 맺었다. 이날 이후 창업 일선에 나선 다른 스타트업 CEO들의 의견을 듣는 등 상황을 알아보니 이는 일상화된 병폐란 진단에 도달했다.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몇몇 '스타급, 원조급' 1세대 벤처 전도사들이 문제였다. 다른 훌륭한 분들도 분명히 있음을 전제하고 이야기하자면 그냥 광대에 지나지 않고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 같은 소수들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거였다. 이들은 지금도 자기네들의 실패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성공의 원인도 모른다!). 모르다 보니 반성하지도 못한다. 자기 벤처 흥망성쇠를 패키지로 '신화화'해 팔고 다닌다. 자신들은 백조가 경박하게 물밑 발길질 하듯 정부 보조금 빼먹는 '사악한' 사업을 하면서 말이다.

    다음으로는 1.5세대 혹은 몇몇 스타급 2세대 벤처 CEO 출신 '사이비' 엑셀러레이터, 창업 컨설팅 업자들이 또다른 원인이었다. 위의 청년 CEO의 사연을 들어보니 1, 2세대 벤처 전도사들이 창업 테크 트리라며 창업 초 자금 가뭄을 해갈하려면 다양한 정부 지원과 과제를 받아야 한다 해서 관성적으로 정부 과제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 과정 중에 하필이면 기술에 무지한 평가위원을 만나 그의 성향에 맞추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멍청한 게 나와 버렸던 거다. 그러며 보여주는 최초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평가위원들의 손 탄 것보다 훨씬 나았었다. 결국 처음의 괜찮은 아이디어는 창업 테크 트리를 타면서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제조업하는 청년 CEO는 기술개발, 제품화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멀리하고 펀딩, 경영, 마케팅 쪽 사람들을 만나고 정부 과제 평가 받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이건 이 친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2016년 스타트업 생태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한거다. 여기에 더해 같은 상황의 청년 CEO의 모임을 자주 가지며 '그 놈의 인맥질'의 늪에 매몰되며 주객전도가 일어난 게 작금의 현실이었던 게다.

    오늘날 스타트업 생태계의 뒤편은 참으로 기괴하다. 꿈 가득한 청년 CEO들에게 여기저기서 같잖은 수준의 화두가 던져지고 거기에 고무된 이들은 역삼동 등에 모여 파티 성격 회합을 자주 가진다. '네트워킹이 힘'이라 외치며 곧 성공할 듯 꿈과 미래를 공유한다. 여기에 국회의 청년 보좌관들이 한둘씩 끼어 어울리면 금방 기운이 올라간다. 파티 후 자신들의 야심과 꿈을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 서로를 태깅해 올리며 하루의 전과를 뽐낸다. 이건 성공해야 CEO 습관이 생기는 게 아니라 성공한 CEO 습관을 먼저 배워야 성공한다는 모순적 상황에 빠져 있다.
    물론 갓 시작한 스타트업 입장에서 기술개발, 제품화, 펀딩, 경영, 마케팅 어느 하나도 부족해선 안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팔만한 물건, 그리고 서비스도 없는 스타트업이 과연 존재의 의의가 있을까? 그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스타트업이 사실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청년 CEO들은 자신이 마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엘런 머스크가 된 양 그들의 습관을 모사하며 다음과 같이 흉내내고 다닌다.

    '나는 기업가다. 오늘은 역삼동 XXX에서 열린 창업가 '파뤼'에 참석해서 모모 스타트업 분들과 네트워킹을 했습니다. 나는 3년 안에 업계 최고로 우뚝 서 있을 겁니다.',
    '오늘은 모당 A 의원이 방문하셨습니다. 극찬을 해주셨습니다. 가슴이 벅찹니다.',
    '우리 기업이 저명한 모모모에 10대 제품으로 선정됐습니다.',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전시회인 C, M에 참석합니다! 누구누구가 저희 부스에 방문하셔서 영광이었습니다!'
    '가슴이 벅찹니다. 제 앞에 엘런이 있어요! 곧 찍어 올릴게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랭이 찢어진다는 옛말은 폐기된지 오래고 뱁새가 황새처럼 우아하고 폭이 넓게 걷는 습관을 따라해야 한다는 시절이 되어 버린 거다. 자기네들은 황새의 습관으로 완벽하게 무장된 '황새로 변태하기 직전의 뱁새'라 주장하지만 곁에서 보기엔 뛰어 내리기 직전의 레밍스에 가깝다.

    스타트업이란 막 시작하여 자본력은 없지만 '아이디어와 실행력(혹은 기술)' 충만한 이들을 뜻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 + 실행력' 없이 무작정 뛰어든 이들도 상당히 많다. 이들은 시리즈 B, C의 투자만 당길 수 있으면 자본력으로 얼마든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살 수 있다 믿는다. 성립할 수 없는 전제이고 주객전도의 상황에 다름이 아니다. 이건 그냥 망상에 불과한 것이고 이미 실패가 숙명적인 스타트업계의 악화일 뿐이다. 자기네들이 제2의 오큐러스일거란 망상에 빠져 있다. 벤처 버블 전에는 서울대, 카이스트, 연고대 등의 실험실에서 극비리에 개발된 '망상 속에나 존재하는' 세계 최고의 가짜 기술로 상장하며 수백, 수천 억을 끌어들였다가 다 써버리고 숙명적으로 폐업한 기술 벤처들이 대표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빈약한 기술과 아이디어로 침소봉대하며 몇년 버티다 필연적으로 망하는 패턴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벤처 현황이 집계되기 시작한 건 벤처 확인 및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998년부터였다. 98년 말에 2042개였던 벤처가 2016년 6월 기준으로 31737개가 활동하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의 성장이다. 김대중 정부 때 벤처지원 정책에 힘입어 2001년까지는 순증가한 벤처 숫자가 10000개를 넘어서기 이르렀지만 벤처버블이 터진 후 20% 이상 순감소했었다. 그러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도 쉬임 없이 증가했으며 금융 위기 영향이 컸던 2008 ~ 2010년 사이에는 '위기가 곧 창업 기회'인 양 순증가 추세가 폭발적으로 나타났었다. 스타급은 찾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창업의 일상화가 이뤄진 것은 이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월별 변동 데이터에 따르면 여느 정부 때보다 소극적인 창업 추진력이 확인된다. 20여 년 전의 벤처와 지금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완연히 다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부와 언론이 떠들어 대는 것과 달리 아주 지지부진하다. 외려 스타트업 전도사들이 직전 정부 보다 더 많아졌고 소리 높여 활동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걸 내실이 좋아졌다는 신호라 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2016년 6월만 하더라도 1714개가 창업하고 1449개가 폐업하였다. 약 5% 정도가 한 달사이에 새로 나타나고 사라졌다는 말이다. 워낙 변동성이 큰 쪽인지라 그러려니 싶겠지만 스타트업 생태계가 피어 보기도 전에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홍보와 펀딩 기법은 예전보다 더 세련되어진 반면에 창업 아이디어와 기술 부재는 더 심각해졌다. 사업화될만한 '진흙 속의 진주' 아이템은 가득하니 홍보와 펀딩만 해결해주면 된다는 착각이 불러온 오산인거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겨울을 불러올 법한 악화 문제도 심각하다. 수천 억대 투자가 들어간 연합체 A사에 관한 우려가 안그래도 엑셀러레이터와 창투사 쪽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엑설러레이터와 공공 성격 투자금이 수백 억 투자된 에너지 B사도 국가 R&D 사업으로 연명 중이고 이미 수명이 다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B사는 특히 2000년대 초반 벤처 버블 이후 망한 사이비 기술 벤처 원흉이 창업자 중 하나이다). 이들은 스타트업계의 '악화'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경제 위기라도 온다면 이들을 포함한 중간 크기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올해, 내년에 도미노처럼 무너질 시기가 임박했다. 정신차리고 대비해야 할 때이다. 이들 때문에 선량한 스타트업이 같이 무너지는 사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미리 미리 '스타트업'계의 악화들을 구조조정하고 양화들에게 우호적이도록 스타트업 생태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글을 맺으며 스타트업의 양화이고자 하는 창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내실있고 내공 충만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스타트업의 자존심임을 잊지 말자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 껍데기에 휘둘리지 말고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쳐야 한다.

    PS. 오해가 없도록 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15년에 만난 청년 CEO는 참 괜찮은 친구였다. 자기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는 친구였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친구는 고난은 있을지라도 제대로 된 성공 DNA를 갖춘 이였다. 좋은 엑셀러레이터도 만났으니 사업 2년, 3년차에 좋은 결과가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