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가상통화? 암호화폐? 비트코인? 명칭보다 개념이 중요하다

  •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입력 2017.12.27 09:56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화폐, 비트코인…...우리는 지금 때 아닌, 게다가 소모적인 호칭 논란에 빠졌다. '블록체인 기반 전자코인'의 호칭 이야기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기관에서는 이를 '가상통화'라 부르고, 언론과 소비자는 '가상화폐' 또는 '비트코인'이라는 호칭을 주로 쓴다. 그런데, 최근 일각에서 '암호화폐'가 정확하다며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사실, 호칭 논란 자체가 SNS 및 기사 댓글, 각종 행사에서 이름을 알린 업계 기술자들의 주장이 맞물리며 생겨난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논쟁이 큰 의미 없고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찾기 좋아하는 이들, '암호화폐' 표기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도 일리 있다고 생각하므로 정확한 호칭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후 블록체인 기반 코인의 법적 지위를 정할 날이(올지는 모르겠지만)온다면 이 논의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통화'는 '유통화폐'의 줄임말로 '유통수단이나 지불수단으로 기능하는 교환수단'을 뜻한다. 이 통화의 범주에는 우선 국가가 공식 지정하는 돈 '법정화폐'가 속한다. 달러처럼 외국화폐가 법정화폐와 함께 통화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한 국가 내에서 유통화폐는 일반적으로 하나에서 두개다.

    통화의 정의를 대입해보면, 블록체인 기반 전자코인을 지칭할 때 가상'통화'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 이들은 유통화폐가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는 어떤가? 화폐는 교환경제사회에서 '상품의 교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일반적인 교환수단 내지 유통수단'이다. 화폐의 개념에 유통화폐가 포함된다. 화폐는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모든 존재를 이야기하며, 한 국가에서 수십 가지 화폐가 이용될 수 있다. 싸이월드 도토리 역시 일종의 화폐다.

    블록체인 기반 전자코인은 사실상 상품 교환수단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화폐'라는 호칭도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가상'이라는 표현은? 가상통화를 가상 세계, 즉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화폐로 볼 수 있다. 원화를 이용한 온라인결제가 대표적인 예다. 블록체인 기반 전자코인에 '가상'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다. 물론 이들이 모든 '가상'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그 범주 내에 속하기 때문이다.

    '암호'는 어떨까? 블록체인 기반 전자코인에 암호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 하에서 거래 승인 시 암호를 푸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암호'라는 표현도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상'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기반 전자코인이 모든 '암호'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그 범주에 속할 뿐이다.

    이처럼 정확한 호칭의 잣대를 들이대면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화폐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엄밀한 의미로, 암호화폐가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정의를 따르면 우선 '블록체인 기반'이 정확하다고 본다. 현재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은 화폐가 아닌 '전자 물건'이기 때문에 이 호칭을 합쳐 '블록체인 기반 전자물건'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단어의 정의와 범주까지 들어가며 정확한 호칭을 찾아야만 하는지. 필자 역시 '암호화폐'가 정확한 명칭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들을 때 이처럼 의아한 기분이다.

    엄밀한, 정확한, 정의적(붙일 수 있는 미사여구를 다 붙여보자) 의미로 따지면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화폐 모두 잘못된 호칭이다. 이유는 위에서 들었다.

    가상통화는 규제당국이 쓰는 호칭이다. 소비자 대부분은 가상화폐라는 호칭을 쓴다. 그런데, 왜 지금 암호화폐만이 옳다며 이 호칭을 쓰지 않는 이를 무지하다며 매도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들은 외국에서 'crypto(암호)currency(화폐)' 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유럽 중앙은행에서는 규제되지 않는, 개발자들이 제어하는 디지털 화폐를 지칭할 때 공식적으로 'virtual currency'라는 호칭을 쓴다.

    언론사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 또한 'Bitcoin', 'virtual currency', 'digital currency', 'cryptocurrency' 모두 사용하고 있고, 빈도로 따지면 'Bitcoin' 과 'virtual currency'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관련 논문을 검색해봐도 'virtual currency'라는 호칭의 빈도가 가장 많다. 결국 외국에서도 저 네 단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으며 가장 자주 불리우는 호칭은 'virtual currency'라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규제기관에서 추천한 '가상통화', 또는 가장 널리 쓰이는 '가상화폐'라는 단어를 주로 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상통화건 가상화폐건 암호화폐건 쓰고 싶은 단어를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규제기관이 가상통화라고 부르는 것이, 소비자가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면, 마찬가지로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적절하지 않은 호칭을 내세워 논의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소모적 논쟁 속에서 '가상통화의 본질을 모른다'는 식으로 상대를 매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약 누군가 필자에게 '암호화폐'라는 단어가 정확한 의미라고 또다시 강요한다면, '블록체인 기반 전자물건'이라고 대답하려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조교수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 및 전자화폐로, 시드니공과대학 재직시절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화폐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SWIFT Institute 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전자화폐가 진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가 대체투자 자산이 될지,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질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