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으로 소통 채널 역할을 해 온 블라인드 서비스의 본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퇴사자 계정을 '급행료(일을 빨리 처리해 달라고 건내는 돈)'를 받고 해당 기업 커뮤티니에서 삭제하는 등 순수성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IT업계에 따르면 폐쇄형 소셜네트워크 서비스(특정한 사람들과만 소통할 수 있는 SNS)인 블라인드가 퇴사자 계정 삭제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어 이용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블라인드가 퇴사자 계정 삭제에 급행료를 도입해 서비스 본질이 훼손된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지적이 나온다. / IT조선 DB
블라인드가 퇴사자 계정 삭제에 급행료를 도입해 서비스 본질이 훼손된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지적이 나온다. / IT조선 DB
블라인드는 올해 초부터 가입자가 다니던 회사를 퇴직할 경우, 해당 계정을 신속히 삭제하는 조건으로 5000달러(약 500만원)의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원래 블라인드 서비스 초기에는 무료로 퇴사자 계정을 삭제해줬다. 회사 측의 계정 삭제 요구가 접수되면 퇴사 여부를 검증한 후, 계정을 삭제했다.

하지만, 블라인드의 영향력이 커지고 가입자 수가 늘고 계정 삭제 요청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블라인드는 '급행료'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퇴사자 계정을 삭제하고 있다. 돈을 내지 않으면 퇴사한 직원들이 이전 회사 이메일 계정으로 활동하고 회사에 대한 악의적인 글을 올려도 회사 측에서는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실제로 A사는 퇴사한 한 직원이 블라인드에 접속해 A사를 비방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A사는 블라인드 측에 퇴사 직원의 계정 삭제를 요청했지만, 블라인드 측은 업무가 과도하게 밀렸다는 이유로 계정 삭제를 거절했다.

A사 관계자는 "블라인드에 회사를 폄훼하는 글이 올라와 확인해 본 결과 퇴사한 전 직원이 해당 글의 작성자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블라인드 측에 문의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계정이 삭제되지 않아 재차 문의한 결과 신속히 계정을 삭제하려면 수수료를 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블라인드 측으로부터 급행료가 새로운 수익 모델이라는 말까지 들어 황당했다"고 덧붙였다.

블라인드는 이직한 회원 수가 늘어난 데 반해 계정 삭제 업무 처리 속도가 뒤따르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블라인드 관계자는 "돈을 받고 계정을 삭제하는 것은 새로운 수익모델로 신속히 계정 삭제를 요청하는 기업이 있을 때만 굉장히 제한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 사내 이메일 서버서 '김OO' 실명 확인?

특정 기업이 퇴사자의 계정 삭제를 요청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블라인드 서비스의 최대 장점으로 인식됐던 익명성도 훼손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커뮤니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 이메일로만 가입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블라인드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재직 중인 사내 이메일을 통해서만 본인인증이 가능하다. 해당 이메일은 기업 내 메일 서버에 고스란히 기록이 남게 되는데, 회사 측이 마음만 먹으면 이메일 서버를 확인해 직원의 블라인드 가입 여부를 알 수 있다.

블라인드 로고 및 회사 메일 인증 관련 이미지. / IT조선 DB
블라인드 로고 및 회사 메일 인증 관련 이미지. / IT조선 DB
블라인드 측 역시 퇴사자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사내 이메일을 활용하고 있다. 가입자가 처음 등록한 사내 이메일로 퇴사 여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고 일정 기간 회신이 없으면 사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퇴사자 계정을 삭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블라인드의 초기 가입 약정에도 명시돼 있다. 서비스 가입 초기 해당 약정에는 "블라인드는 직장인을 대상으로한 익명 커뮤니티이므로, 사용자가 직장인임을 판별하는 최소한의 정보로 회사 계정을 활용합니다"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블라인드는 서비스 가입의 이메일 정보를 암호화하고, 다시 이를 분리된 DB에 분산 보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블라인드 내부 고객 정보 관리 방식에 제한된다. 서비스 가입자의 회사 이메일 서버에 남은 정보까지 암호화된다는 것은 아니다.

블라인드 측은 특정 회사가 직원의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은 관여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에 블라인드 관계자는 "퇴사자의 이메일을 확인해 블라인드에서 활동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다"며 "블라인드는 해당 기업이 어떻게 퇴사자의 이메일을 확인해서 퇴사자 명단을 넘기는지 알 수 없다. 퇴사자가 이전 계정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해 단지 계정 삭제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받아서 처리할 뿐이다"고 해명했다.

한편, 네이버는 1000억원 규모의 '신성장기술펀드'를 조성, 블라인드 측에 30억원을 투자했다. 공교롭게도 올초 블라인드 내 네이버 게시판에는 역대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이 줄어 들 것이라는 내부 소문에 대한 직원들(블라인드에 가입한 네이버 직원)의 성토글이 잇따랐고 이를 계기로 지난 2일 노조가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