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며 무산설까지 나왔던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시바가 최근 실적 발표에서 도시바메모리 매각 의지를 재차 밝힌 데 이어 미·중 무역 갈등이 해소될 조짐이 보이면서 중국 정부가 버티기 태세를 누그러뜨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시바메모리 주력 제품인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의 모습. / 도시바 제공
도시바메모리 주력 제품인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의 모습. / 도시바 제공
도시바는 최근 2017 회계연도 결산 발표에서 순이익 8040억엔(7조8680억원)을 기록해 4년 만에 흑자를 냈다고 밝혔다. 부정회계 사건으로 재무위기를 맞은 도시바는 이로써 9656억엔(9조4500억원) 적자를 봤던 2016 회계연도의 충격에서 벗어났다.

도시바는 2018 회계연도 순이익 목표로 전년 대비 33% 증가한 1조700억엔(10조4710억원)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도시바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을 분사해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기로 한 도시바메모리 매각 이익 9700억엔(9조4910억원)도 포함됐다. 도시바가 연내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반드시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도시바는 애초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을 2017 회계연도 마감 시한인 3월 31일까지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으나, 중국 당국의 독점금지규제 심사의 벽을 넘지 못해 연기됐다. 도시바메모리 매각은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브라질, 필리핀, 대만 등 7개국으로부터 모두 승인을 받았으나, 중국 심사만 통과하지 못했다. 중국이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의도적으로 승인을 지연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도시바는 이후 5월 1일을 2차 시한으로 잡고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추진했으나, 중국이 계속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도시바가 한·미·일 연합과 협상안을 재조정하거나, 심지어 매각을 중단하고 도시바메모리를 상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일부 도시바 주주는 도시바메모리 매각 금액을 더 높여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시바는 "도시바메모리를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매각 중단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도시바는 이와 함께 경영 혁신 차원에서 '도시바 넥스트 플랜'을 가동해 도시바메모리 매각 후 자사주 매입 등을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도시바의 의지와 달리 대내외적인 환경이 매각에 걸림돌이 될 수는 있지만, 도시바가 매각 철회 카드를 쉽게 꺼내 들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ZTE에 대한 제재 완화를 예고하면서 미·중 무역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도시바메모리 매각에 청신호가 될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앞서 ZTE가 규제를 어기고 이란에 통신 장비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7년 동안 미국 업체의 부품과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제재를 내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2차 무역 협상을 앞두고 ZTE에 대한 규제 완화를 시사하자, 중국도 미국 퀄컴의 NXP 인수를 재검토하겠다며 화답했다. 퀄컴은 2016년 10월 NXP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도시바메모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현재까지도 인수를 완료하지 못했다.

중국이 도시바메모리 매각 승인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SK하이닉스 외에 미국과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도시바메모리 최종 인수 협상자인 한·미·일 연합의 중심에는 협상을 주도한 미국계 사모투자 운용사 베인캐피털이 있을 뿐 아니라 애플 등 미국 업체 다수가 투자 형태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퀄컴의 NXP 인수 승인 건과 함께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메모리 인수 승인 건까지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미국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ZTE 제재 완화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점은 변수다.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판단에 반기를 들면서 자칫 미국과 중국의 2차 무역 협상이 안갯속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도시바메모리 매각의 최종 키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 협상의 결과도 향후 도시바메모리 매각 성사 여부를 가늠하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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