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최근 SUV 대공세를 선언했다. 2015년 선보인 티구안을 시작으로, 티구안 올스페이스, 티구안 L(중국), 소형 SUV 티록에 미국 시장을 겨냥한 아틀라스, 중국 전략 모델 테라몬트 등이 줄줄이 출시돼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건 3세대 신형 투아렉이다. 폭스바겐 SUV 제품군은 물론 브랜드 전체를 이끄는 플래그십이다. 이 차의 글로벌 언론 시승회가 유럽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렸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뮤지컬 및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로마 시대 때부터 조성된 유서깊은 지역으로,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하다. 흔히 알프스의 관문으로 불리기 때문에 시 외곽 도로는 대부분 산길로 이뤄져 있다. 투아렉이 누비기엔 최적의 곳이었다.

3세대 신형 투아렉은 4월 중국에서 열린 2018 베이징모터쇼에서 최초 공개됐다. 플래그십 세단 페이톤이 퇴장하고, 실질적으로 폭스바겐 브랜드의 최고급차를 자처한다. 폭스바겐의 모듈형 세로배치 엔진 플랫폼 MLB 위에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이 플랫폼은 폭스바겐그룹의 중형 이상급 모델에 적용되는 것으로, 아우디 Q7, 벤틀리 벤테이가, 포르쉐 카이엔 등이 투아렉의 사촌차다.

개발 방향 중 중요하게 여긴 점은 연결성이다. 또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인포테인먼트의 질감과 완성도에도 큰 신경을 썼다. 외관 디자인은 최신 폭스바겐의 흐름을 그대로 이었다. 특히 아테온에서 볼 수 있었던 그릴과 일체감을 이루는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헤드램프가 꺼져있으면 전면부 전체가 그릴처럼 보여 존재감이 남다르다.

투아렉의 차체를 그리는 각종 선은 이른바 '엣지'있는 스타일이다. 손으로 꼬집어 만든듯한 굵직한 선은 빛을 받게 될 경우 차체의 음영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웅장한 기분을 낸다. 측면의 지붕선에도 굵직한 선 하나가 더 들어가 차체가 낮은 느낌을 갖는다. 후면 역시 폭스바겐 디자인 기조를 품었다. 커다란 엠블럼 밑 투아렉 레터링이 깔끔하게 들어갔다.

MLB 플랫폼을 장착한 덕분에 이전대비 더 길어지고, 넓어졌다. SUV지만 스포츠카의 디자인 작법인 '와이드&로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새로운 차체 규격 덕분에 비율은 완벽해지고, 넓은 실내 공간도 구현했다. 트렁크 크기 역시 810ℓ로 2세대보다 100ℓ 이상 늘었다. 알루미늄을 차체 곳곳(전체의 48%)에 적용, 2세대와 비교해 106㎏ 가벼워진 것도 장점이다.

첫 인상을 뒤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압도적일 정도로 넓은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에 눈이 휘둥그레 진다. 15인치의 광활한 화면에 센터페시아의 모든 조작 버튼을 넣었다. 여기에 12인치 디지털 클러스터가 더해졌다. 이 폭스바겐의 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가리켜 '이노비전 콕핏'이라고 부른다. 최근 터치 방식이 적용된 넓은 디스플레이는 자동차 실내 디자인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투아렉의 길이와 넓이에서 오는 깊이감이 남다르다. 디스플레이의 모든 화면은 개인화(커스터마이징)가 가능하며, 하단의 센서를 통해 제스처 콘트롤도 일부 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본래 페이톤을 위해 개발됐으나, 페이톤이 단종되면서 투아렉으로 넘어왔다. 다른 차종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투아렉 상품 담당자의 설명이다.

시동을 걸었다. 3.0리터 V6 디젤엔진이 낮게 '그르릉' 거린다. 투아렉은 3.0리터 디젤과 4.0리터 디젤, 3.0리터 가솔린 등의 엔진으로 구성된다. 먼저 286마력을 내는 3.0리터 디젤 엔진으로 판매된다. 2019년말 중국에서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추가되고, 2020년쯤 유럽 판매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큰 차체에 3.0리터 디젤은 어딘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실제로 차는 가속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아주 매끄럽게 반응한다. 엔진의 반응이 신기하다. 부족함도 과하지도 않은 엔진의 힘은 네바퀴굴림 시스템 4모션을 통해 각 바퀴에 전달된다. 앞바퀴에는 구동력의 70%, 뒷바퀴에는 구동력의 80%가 실린다. 아이신에서 만든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에어서스펜션이 승차감에 기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폭스바겐은 대중 브랜드로 알려져 있으나, 플래그십에서는 에어 서스펜션의 사용에도 과감한 브랜드다. 새 설계에 의해 탄생한 이 에어서스펜션은 안락함 뿐 아니라 거친 지형에서의 주행 능력 등을 보장한다. -40㎜에서 70㎜까지 차고를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승차감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다. 딱 알맞은 느낌의 진동이 엉덩이로 전해져온다.

벤틀리 벤테이가에서 먼저 경험해 본 48V 전자식 안티 롤 바가 투아렉에도 들어갔다. 자동차는 코너를 돌 때, 원심력에 의해 차체가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이를 가리켜 롤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투아렉은 안티 롤 바에 의해 차체 쏠림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 전체 흔들림을 없앴다. 오스트리아 산길에서 그 능력이 최대한 발휘됐으며, 아무런 불안감도 없이 코너를 공략해 나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여기에 올 휠 스티어링이 코너링 성능을 극대화한다. 일반적인 자동차는 스티어링(조향)이 앞바퀴만 이뤄지나, 투아렉은 네바퀴가 모두 움직인다. 시속 37㎞ 아래에서 스티어링 휠 조작의 반대방향으로 뒷바퀴가 움직이고, 시속 38㎞ 이상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뒷바퀴가 각도를 조절한다. 이로 인해 코너링에서의 안정감이 높아지고, 대형 SUV 임에도 최소 회전반경이 최대한 억제 됐다.

투아렉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지능형 라이트 기능이다. 'I.Q. 라이트 - LED 매트릭스 헤드라이트'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기술은, 개별적으로 제어되는 128개의 LED 램프로 상황에 따라 조사각이나 광량을 조절한다. 고속도로에서 하이빔을 활성화하면 앞 차의 시야방해를 막기 위해 앞 차 쪽으로 가는 빛을 차단하고, 위험 요소가 나타나면 빛을 더 쏴 확실하게 운전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산길을 달리다가 마을이 나타나면 빛의 세기를 낮춘다.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라이트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꼼꼼한 ADAS 역시 투아렉의 특징이다. 차선을 유지하는 레인키핑시스템은 너무 민감해서 오히려 조작을 꺼둬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 차선유지기능을 포함한 트래픽 잼 어시스트는 다양한 기능과 조합돼 시속 60㎞ 이하에서 손을 떼고 달릴 수 있는 부분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앞 쪽의 상황에 맞게 차는 자동으로 속도를 높였다, 낮췄다를 반복하고, 도로 제한 속도에 따라 차의 설정 속도를 달리 한다. 손을 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차는 운전자에게 스티어링 휠에 손을 대라는 경고음을 보낸다.

투아렉은 내년 상반기 국내 출시가 예정돼 있다. 3.0리터 디젤과 4.0리터 디젤이 설정될 전망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폭스바겐이 아우디 Q7 대비 200~300만원 낮은 가격에 출시할 것을 염두한다고 했으나 국내 시장에서 그룹내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투아렉의 고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투아렉은 아우디나 포르쉐 등 그룹 내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경쟁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경험해 본 3세대 투아렉 역시 상품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동력 성능은 물론이고, 높은 수준의 내외관 디자인, 이노비전 콕핏, 다채로운 ADAS 등에 엄지손가락을 충분히 들어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