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큰 축을 맡고 있는 전자 업계가 중국의 제조 굴기(倔起), 미·중 무역전쟁 등의 영향으로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7년부터 이어진 반도체 특수는 아직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하지만, 이마저도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일년 전과는 정반대의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인공지능(AI), 5G와 같은 분야에서 이렇다 할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IT조선은 불확실성이 큰 대내외 환경에서 한국 전자 산업이 당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봤다. <편집자주>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단순히 단기간에 투자를 집중해 기술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1위인 한국의 기술 인력에 손을 뻗쳤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는 설계에서부터 제조 공정, 후처리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기술의 총합으로 설명하기 힘든 노하우가 필요하다. 같은 공정 기술, 원자재, 장비를 도입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따라 수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삼성전자가 정부의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명령에 국가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이 있다며 취소 소송까지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반도체 자회사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컴퍼니(YMTC)가 만들기 시작한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사실상 삼성전자 기술을 그대로 배낀 것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립된 지 2년 밖에 되지 않는 YMTC가 비록 삼성전자보다 4년 뒤진 기술이나마 낸드플래시를 만들 수 있게 된 데는 그동안 은밀히 삼성 출신 인력을 확보한 덕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등 중국이 한국 업체보다 3~4배의 연봉을 부르며 인력을 흡수하기 시작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로의 인력 이동 관련 공식 집계는 없지만,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중국 현지 반도체 업종에 취직한 한국 인력이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는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 인력도 있지만, 임원급 고위 인사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중국은 인력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체를 삼키려는 시도도 펼친다. 칭화유니그룹은 2015년 미국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한 바 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D램 시장 3위 업체이자,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도시바, 웨스턴디지털에 이어 SK하이닉스와 4~5위권을 다투는 업체다.

칭화유니그룹의 마이크론 인수 시도는 기술 유출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로 좌절됐지만, 이후 웨스턴디지털에 자금을 대고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하는 등 끊임없이 메모리 기술 확보에 공을 들였다.

최근 중국이 미국의 통상압박에 마이크론 압박을 카드로 꺼내든 것도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격에 그치지 않고,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까지 염두에 뒀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마이크론이 대만 UMC와 중국 푸젠진화에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낸 소송에 대한 반격이란 분석이다.

이는 미중 무역 갈등이 반도체로 번지는 계기가 된다. 한국 반도체 업계은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