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의 신약이야기] 제약 강국이 되는 길

  •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
    입력 2018.08.28 06:45 | 수정 2018.08.28 06:48

    우리 정부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대한민국 미래 신산업으로 정하고 막대한 투자를 한다. 글로벌 신약 15개를 5년 이내에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일자리 14만개를 창출해 제약강국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국내 제약사를 비롯해 삼성 등 대기업도 제약바이오 사업에 뛰어든다.

    정부는 희귀난치 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투자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미국국립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에서 근무할 때 본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희귀질환 가운데 고셔(Gaucher)병이 있다. 4만명 가운데 1명이 걸리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간에 쌓이는 글루코세레브로사이드(glucocerebroside)라는 지방을 대사시키는 효소(enzyme)결핍으로 인해 간과 비장에 지방이 축적돼 환자가 청년기에 도달하기 전에 사망하는 치명적 질환이다.

    고셔병은 우리나라에도 100여명 이상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케나지(Ashkenazi) 유대인 중에는 450명 가운데 한 명이 걸린다. 동유럽에 살던 유대인이 종족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동족 결혼 전통을 유지하면서 고셔병을 발생시키는 유전적 결함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로스코 브레이디 NIH 박사는 1952년부터 지질(脂質 lipid)질환 연구를 시작해 1965년 고셔(Gaucher)질환 원인이 특정 효소(glucocerebrosidase, G-dase) 결핍임을 밝혀냈다. 그는 1980년대 G-dase가 태반에서 추출될 수 있음을 밝혀내고 추출 기술을 젠자임(Genzyme)이라는 신생 바이오텍에 전수해 소량의 G-dase 추출에 성공하고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20명분도 안 되는 양으로 기억한다. 임상시험은 성공적이었다. 브레이디 박사는 다시 유전자 재조합 방법으로 G-dase 생산에 성공해 효소대체요법 (ERT, Enzyme Replace Therapy)이라는 새로운 의학 분야를 열었다. 1995년이었다. 1952년에 시작된 연구가 43년 만에 결과를 본 것이다. 젠자임(Genzyme)은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됐고 유사 유전질환 치료가 가능해졌다. 국내서도 최근 이수엡지스에서 에브서틴(Abcertin) 이라는 고셔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NIH가 브레이디 박사 연구를 40년 이상 지원했고 브레이디 박사가 50년 이상 지질(lipid) 관련 질환연구를 한 것은 재정적 보상 또는 미래 제약 산업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고셔병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신약 후보물질은 실험실 연구과정과 동물시험을 거친 후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위해 최소한 3단계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이렇게 생성된 자료를 정부기관에 제출해 승인을 받으면 신약으로 인정된다.

    미국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Pfizer)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높이고 나쁜 콜레스테롤 (LDL)은 낮추는 꿈의 신약을 연구해 1992년 톨씨트라핍(Torcetrapib) 발견에 성공했다. 1999년 사람에게 최초 투여해 2004년 1만5000명 규모의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하지만 임상시험이 끝날 무렵인 2006년 12월 2일 돌연 개발을 중단했다. HDL을 높이고 LDL을 낮추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톨씨트라핍을 복용한 환자 사망률이 높아 질 수 있다는 중간분석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화이자가 20년 이상 최소 2조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꿈의 신약은 이렇게 끝났다.

    글로벌 제약사 머크(Merck)는 1999년 5월 미국 FDA로부터 관절염 등으로 인한 급성 만성 통증을 치료하는 바이옥스(Vioxx) 승인을 받았다. 바이옥스는 세계에서 8000만명 이상이 복용하는 대박 의약품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2004년 9월 30일 머크는 바이옥스를 시장에서 철회했다. 고용량 장기복용자 가운데 심장질환과 뇌일혈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이었다. 개발에 성공하고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약물이 시장에서 사라진다.

    성공과 실패 사례는 ‘왜 미국이 제약 최강국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브레이디 박사는 하버드 의대를 나온 수재지만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고셔병 환자 치료를 위한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40년 이상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를 믿고 지원하는 사회적 풍토와 정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톨씨트라핍(Torcetrapib) 실패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최선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30일 제프리 킨들러 화이자 CEO는 2007년에 톨씨트라핍을 미국 FDA에 등록하게 될 것이라고 성공을 자신했다. 하지만 12월 2일, 토요일 아침 톨씨트라핍 관련 부정적 보고를 받고 즉각 회의를 소집한 뒤 저녁 9시에 킨들러는 개발중단을 결단했다. 세계 제약계가 경악하는 소식이었고 불과 2일전 성공을 자신했던 화이자는 체면을 완전히 구겼지만 나쁜 소식 발표를 강행했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 태도다.

    바이옥스는 대박 신약이었지만 일부 환자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자 머크는 즉각 철회를 선언하고 피해자 보상에 나섰다. 돈을 아무리 잘 버는 상품이라도 소비자 안전 제일주의를 넘을 수 없다는 상업적 윤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바이오 제약 강국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제약 산업에 투자를 시작했다.
    신약은 의지와 투지, 투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조변석개하는 정책으로는 제약강국이 될 수 없다. 성공한 고셔병 치료제, 실패한 꿈의 신약 톨씨트라핍, 철회된 바이옥스 모두 단단한 기초과학 위에 서있다. 아낌없는 기초과학 투자, 불치병을 정복하겠다는 사회적 열정, 정부의 변함없는 지원 그리고 책임있는 제약기업이 미국을 제약강국으로 만들어 냈음을 위의 세 사례는 보여준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통계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연구를 담당했다. 1999년 한국으로 귀국해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2000년도에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권위 인명 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도 등재됐다. 현재 서경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