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은 2017년 7월 취임 당시 ICT 연구개발 투자가 시급한 분야로 인공지능(AI)과 함께 양자정보통신을 지목했다. 양자정보통신은 양자암호통신이나 양자 컴퓨팅 등 양자 관련 ICT를 총칭한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양자정보통신 글로벌 경쟁력이 선진국 대비 뒤처진 것으로 평가된다"며 "핵심기술 개발과 전문인력 양성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집중 투자하겠다는 유 장관의 말은 공염불에 그쳤다. 부처 간 칸막이 영향으로 양자암호통신은 시장 진출의 첫 단추인 ‘인증’ 절차 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초기 시장 공략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기업이 시장 진입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차단됐다. 과기정통부는 책임 떠넘기기에만 몰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양자암호통신 시장은 2025년 26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기정통부 기조에 발맞춰 SK텔레콤 등 기업도 양자암호통신 기술 고도화와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냈다. SK텔레콤은 2011년부터 8년간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갈고 닦았다. 2016년 자체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장비를 국가 기간 통신망에 우선 납품해 기술력을 인정받고, 향후 해외 수주까지 추진해 시장 선점에 나설 계획이었다.

SK텔레콤은 기무사령부, 국방부 등과 여러 차례 양자암호통신 장비 공급을 논의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인증 제도 자체가 없어 납품 계약 무산이 반복됐다. 장비를 개발한지 3년이 지났지만 납품 실적은 전무하다. 인증을 받지 못하면 납품 자체가 불가능하다.

과기정통부는 2015년 6월부터 150억원의 예산을 들여 양자암호통신 실증 기준을 만들고 있다. 정보보안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곳은 국가보안기술연구소(이하 국보연)다. 양측에 인증 절차 마련과 관련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지만, 부처간 칸막이가 얼마나 두꺼운지 체감할 수 있었다. 책임 떠넘기에만 열심이었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복지부동’ 행정의 전형을 드러냈다. 인증절차 구축을 위해 과기정통부와 국보연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인증 관련해서는 국보연이 알아서 판단해 처리할 문제라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12월 내 실증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지만 소관이 아닌 인증절차 구축에서 발을 빼겠다는 입장이다.

또 국보연은 과기정통부의 결단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국보연 한 관계자는 "인증절차 구축 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할 권한이 없다"며 "부처간 괜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조심스러운지, 어떤 오해가 생길까 두려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 부처 입장에서는 인증절차 구축을 내일로 미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초기 시장 공략을 위해 어떻게든 시장을 뚫어야 하는 만큼 하루 하루가 급하다. 한국에서 누구 하나 인증조차 해주지 않은 양자암호통신 제품을 해외 정부나 기업이 거들떠 볼지 의문이다.

ICT를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이제라도 5G 상용화에만 목매지 말고 양자암호통신 등 미래 ICT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기반 기술 확산에 최소한의 책임감부터 가져야 한다. 말로만 부처간 칸막이를 쳐냈다는 말은 그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