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구글과 페이스북 등 디지털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아시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에 이용자 데이터 보호 조치를 요구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을 넘어, 시장 내 반독점 지위 견제 등 다각적인 제도 개선을 꺼내들며 압박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 및 스포츠 위원회(DCMS)는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최근 18개월 간의 조사 끝에 108페이지 분량의 페이스북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페이스북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시사했다.

데미안 콜린스 DCMS 위원장은 보고서를 통해 "페이스북이 의도적으로 데이터 보호법과 독점 금지법을 위반했다"며 "IT 기업에 대한 자율 규제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DCMS의 보고서는 페이스북에서 사실과 다른 허위정보가 확산되고 있어 영국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를 규제할 독립기관을 설립하는 등 강력한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번 보고서는 페이스북의 캐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태로 촉발된 조사의 최종 결과다. 페이스북은 여전히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국의 데이터 분석회사 캐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8700여명에 달하는 이용자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미국과 영국 조사 당국에 발목 잡혀있다.

페이스북은 CA 스캔들 관련 조사를 종결하는 조건으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협상 중이다. 14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과징금은 약 수십억 달러 규모로, FTC가 IT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중 최대 액수가 될 전망이다.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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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유럽 서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 독점 규제로 번지나

문제는 이러한 규제와 과징금 부과 움직임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페이스북과 구글 등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미국 IT전문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그룹 내 이용자의 민감한 데이터가 다운로드될 수 있도록 방치했다며 미 공정거래위원회(FTC)에 지적 받았다.

해당 그룹은 유방암 유전자(BRCA, Breast Cancer gene)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들이 모인 페이스북 그룹으로,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설치로 그룹 구성원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등을 다운받을 수 있다.

구글의 이용자 데이터 유출 사태도 잊을만 하면 터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구글은 소프트웨어 오류로 자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구글플러스 이용자 52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앱 개발자 등 제3자에게 노출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을 향한 규제 강화와 과징금 부과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도 지난 1월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관련 규정(GDPR) 위반 혐의로 구글에 5000만 유로(약 64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뜻을 밝혔다. 실리콘밸리 기업 중 GDPR 위반으로 과징금 ‘철퇴’를 맞은 것은 구글이 처음이다.

프랑스 정보자유국가위원회는 구글의 타깃광고에서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이유를 문제삼았다.

./ 구글 제공
./ 구글 제공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들 기업 대상 규제 고삐를 조이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지난 14일 인도 정부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이용자 콘텐츠 접근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한 각종 가짜뉴스로 살인사건과 폭동 등이 발생하고 불법 음란물과 성매매 홍보물 등이 유포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독일과 일본 등은 더 나아가 이들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 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안도 마련하고 있다.

독일은 페이스북에 대해 데이터 수집 관행을 바꾸도록 명령한 바 있다. 지난 7일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독점규제 당국인 연방카르텔청은 페이스북의 동의 절차 등 데이터 수집 과정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독일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등 연관 앱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 개인정보를 함부로 수집해왔다는 비판에 근거한다. 페이스북이 이를 위반하면 연간 수익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된다.

일본에서는 거대 IT 플랫폼 기업의 개인정보 남용을 막을 제도 마련과 동시에 시장 지배력도 억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다. 각종 지식 정보가 소수 플랫폼에 쏠리는 ‘뉴 모노폴리(new monopoly)’ 현상을 우려해서다.

일본 영자신문 재팬타임즈에 따르면 지난 1월 일본 당국은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 통신 비밀 보호를 의무화하는 법안 초안을 오는 6월까지 완성해 2020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은 이들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해 독점금지법에 새로운 규칙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특정 기업이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춰 계약 내용을 불투명하게 진행하는지 등을 살피고 자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