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사이버펑크 스타일 SF에 섹시한 미소녀와 로봇 메카닉을 융합하고 당시 인기작이던 ‘마크로스'로 입증된 성공 포인트 ‘노래'를 결합해 세계적으로 히트한 애니메이션이 1987년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네 명의 여전사가 활약하는 작품 ‘버블검 크라이시스(BUBBLEGUM CRISIS)’다.

버블검 크라이시스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갈무리
버블검 크라이시스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갈무리
버블검 크라이시스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모두 8편으로 나온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따르면 당시 작품은 비디오테이프(VHS)과 레이저디스크(LD)를 합해 60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히트작 반열에 올랐다.

OVA는 TV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고 VHS와 LD등에 담겨 판매되던 상업 콘텐츠다. 만화·애니메이션 왕국 일본은 아직도 OVA 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작품은 블루레이 디스크 등에 담겨 판매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던 1980년대 후반은 스타워즈로 촉발된 SF붐이 뜨던 시기다. 1982년 공개된 SF영화 ‘블레이드 러너'로 인해 사이버펑크 등 SF장르가 세분화 됐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작 만화 ‘아키라(AKIRA)’와 1985년작 ‘애플시드', 1988년 출시된 게임 ‘스내쳐(Snatcher)’, 1989년 만화 ‘공각기동대’ 등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갖춘 명작 사이버펑크 만화·애니메이션 작품에 영향을 줬다.

버블검 크라이시스 탄생 배경에는 SF 애니메이션 ‘메가존 투쓰리(23)’와 판타지 애니메이션 ‘환몽전기 레다(幻夢戦記レダ)’가 있다.

메가존23. / 야후재팬 갈무리
메가존23. / 야후재팬 갈무리
버블검 크라이시스 원작자 ‘스즈키 토시미쯔(鈴木敏充)’는 당시 히트작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제작자였던 ‘이시구로 노보루(石黒昇)’와 ‘미키모토 하루히코(美樹本晴彦)’, ‘히라노 토시키(平野俊貴)’, ‘이타노 이치로(板野一郎)’를 한데 모아 ‘메가존23’을 완성한다.

메가존23은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마크로스가 노래로 세상의 평화를 찾았다면, 메가존23은 이브의 노래로 대중을 선동한다. 미키모토의 그림은 마크로스 팬들의 시선을 메가존23으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당시 음반 판매 정보를 제공하던 오리콘에 따르면 메가존23은 1985년 첫 번째 작인 ‘파트1’만 2만6518장 판매되며 OVA시장 매출 1위를 기록한다.

메가존23과 함께 1985년 등장했던 ‘환몽전기 레다'는 애니메이션 시장에 ‘로봇 메카닉’과 ‘미소녀'의 결합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OVA로 출시된 레다는 1985년 3만장 이상 팔렸다.

환몽전기 레다. / 야후재팬 갈무리
환몽전기 레다. / 야후재팬 갈무리
SF와 로봇 메카닉, 미소녀 캐릭터의 조합이 인기 콘텐츠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 스즈키는 다음해인 1986년 ‘갈포스(GALL FORCE)’, 1987년 ‘버블검 크라이시스'를 선보인다.

◇ 미소녀 메카닉에 큰 영향 끼친 버블검 크라이시스 ‘하드수트'

버블검 크라이시스는 제2차 관동대지진으로 두 쪽으로 갈라진 2032년의 도쿄를 무대로 안드로이드 범죄를 퇴치하는 미녀 4인조 부대 ‘나이트 세이버즈(KNIGHT SABERS)’의 활약을 그렸다.

버블검 크라이시스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버블검 크라이시스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작품 속 세상은 도시 재건을 위해 만든 안드로이드 ‘부머'를 악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AD폴리스라는 경찰 조직으로 부머 범죄 소탕에 나서지만,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 부머를 막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이트 세이버즈는 부머로 인한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나이트 세이버즈 리더 ‘시리아 스팅레이'는 부머 범죄를 조장하는 기업연합체 ‘게놈’에게 암살당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조직을 결성해 낮에는 란제리 매장의 오너로, 밤에는 나이트 세이버즈의 리더로 활약한다.

버블검 크라이시스 주인공인 ‘프리실라 아사기리'는 라이브 하우스 ‘핫레그(HOT LEGS)’의 인기 보컬이라는 설정이다. 친분이 두터웠던 폭주족 리더가 게놈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을 계기로 나이트 세이버즈에 합류한다.

주인공이 가수라는 설정 때문에 프리실라 목소리 연기는 당시 흔치 않던 가수 겸 성우 ‘오오모리 키누코(大森絹子)’가 맡았다. 그녀의 데뷔곡이자 버블검 크라이시스 주제가인 ‘오늘 밤은 허리케인(今夜はハリケーン)'은 다수의 3040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기억하고 있다.

버블검 크라이시스 ‘하드수트'. / 야후재팬 갈무리
버블검 크라이시스 ‘하드수트'. / 야후재팬 갈무리
버블검 크라이시스의 매력은 여성미가 돋보이는 전투강화복 ‘하드수트'에 있다. 나이트 세이버즈 멤버 몸매에 꼭맞게 설계된 하드수트는 여성미를 강조한 디자인과 대조적으로 인간의 10배에 달하는 힘을 내고 등 부분에 달린 비행 장치로 공중 전투도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버블검 크라이시스 미소녀 캐릭터와 여성미를 듬뿍 녹인 하드수트를 디자인한 인물은 ‘소다 켄이치(園田健一)’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소다가 그린 나이트 세이버즈 하드수트가 비록 미소녀 메카닉의 원조는 아니지만, 이후 등장한 애니메이션 작품 속 여성용 파워드수트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줬다고 평가한다.

애니메이션 속 나이트 세이버즈 하드수트. / 야후재팬 갈무리
애니메이션 속 나이트 세이버즈 하드수트. / 야후재팬 갈무리
만화가이자 총기 덕후인 소다는 1991년 미소녀와 총기 액션을 융합한 만화 ‘건스미스 캣츠'를 선보인다.

주인공 미소녀 캐릭터의 섹시한 그림과 부머의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절묘하게 조합된 버블검 크라이시스는 당초 13편이 기획됐지만 1991년 출시된 8편으로 스토리를 매듭짓는다.

원작자인 스즈키 토시미쯔는 자신이 운영하던 기획사 아트믹이 파산하자 애니메이션 제작사 AIC를 통해 TV 애니메이션 ‘버블검 크라이시스 도쿄 2040’을 모두 26편 분량으로 제작했고, 이후 2003년 ‘버블검 크래쉬!’란 이름으로 OVA를 내놓지만 고작 3편을 제작하는 것으로 그친다.

버블검 크라이시스는 일본 외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만큼 2009년 실사 영화를 제작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2012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 기획이 진행됐지만 실제 영화로 개봉되지는 못했다.

버블검 크라이시스는 본편 외에도 세계관을 공유하는 ‘AD.폴리스'와 AD.폴리스의 스핀오프 작품 ‘패러사이트 돌'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