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美 로비자금 줄이는데…제재 풀어달라는 미국 기업은 비용 늘려

입력 2019.06.26 06:00

중국 화웨이가 미국 의회 대상 로비자금을 확 줄였다. 오히려 미 정부의 제재에 대응해 버라이즌 등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특허 소송에 나섰다. 역공을 준비 중인 중국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하지만 거래 제한 조치에 동참한 미 IT 기업은 속이 타들어간다. 최대 고객사인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 손실만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인텔과 퀄컴 등은 거래 재개를 위한 로비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 / 일러스트 IT조선 김다희 기자
◇ 화웨이, 특허권 무기로 美에 거센 반격…中 정부, 블랙리스트 제도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15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회사가 만든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구글, 인텔, 퀄컴 등 화웨이 핵심 협력사가 거래 중단에 동참했다. 미중간 무역전쟁의 불이 화웨이로 옮겨 붙은 셈이다.

화웨이는 제재 수위를 높이는 미 정부에 반격할만한 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특허 사용료 청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이하 현지시각)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화웨이가 버라이즌에 200건 이상의 특허 이용에 따른 비용으로 1조2000억원쯤을 청구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버라이즌이 핵심 네트워크 장비, 유선 장비, 사물인터넷(IoT) 분야 자사 특허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버라이즌 대변인은 성명서를 통해 "특허 사용료 청구 이슈는 버라이즌만의 문제가 아닌 광범위한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화웨이가 방대한 특허권을 앞세워 버라이즌뿐 아니라 다른 미 기업에도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CNBC는 20일 화웨이가 미국 기업에 더 많은 특허 사용료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CNBC에 따르면 화웨이는 세계적으로 6만9000건쯤의 특허를 보유했다. 이 가운데 미국 특허는 18%를 차지한다. 화웨이의 5G 필수 표준 특허 보유량은 노키아나 삼성전자, LG전자 등 기업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자사 통신장비를 압류한 미국 상무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진행중인 소송의 이유는 화웨이가 2017년 7월 캘리포니아 실험실에서 사용한 서버와 이더넷 스위치 등 통신장비를 중국으로 보내는 중 상무부가 알래스카에서 압류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화웨이 비호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조만간 자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외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제도 시행 방안을 조만간 공개한다. 블랙리스트 세부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는 기업 이름이 하나 둘씩 거론된다.

중국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운송업체 페덱스를 블랙리스트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페덱스는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미국으로 배달하지 않은채 임의로 반송했다. 일본에서 중국으로 발송한 화물은 미국에 있는 페덱스 본사로 잘못 배송했다.

하지만 페덱스는 운영상 실수라며 사과했다. 정치적 이유로 배송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 대상 소송도 제기했다. 정부가 화웨이와의 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지만, 물품 배송까지 막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화웨이 로고. / 화웨이 제공
◇ 상반기 ‘대미 로비자금’…화웨이 6350만원·퀄컴 27억원·인텔 16억원

미국의 주요 기업도 다급한 모습을 보인다. 매출 축소에 따른 손실을 우려해 로비자금을 늘린다.

화웨이는 2018년 미국 기업이 만든 부품을 구입하는데 700억달러(81조원)를 썼다. 퀄컴, 인텔, 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은 700억달러 중 110억달러(12조7000억원)를 가져갔다. 화웨이 관련 거래 제한 조치가 장기화 될수록 이들의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로이터통신은 16일 인텔, 퀄컴 등이 화웨이와 거래 재개를 위한 정부 로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인텔과 자일링스 고위 임원은 5월 말 미국 상무부 회의에 참석했다"며 "이 자리에서 화웨이 블랙리스트 포함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퀄컴도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상무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도 화웨이 제재에 따른 업계 영향을 설명하며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지미 굿리치 SIA 글로벌 정책 담당 부회장은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는 기술은 제재 대상에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퀄컴과 인텔은 화웨이 제재 완화를 위해 상당 규모의 로비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로비자금 지출 정보를 공개하는 비영리기구 오픈시크릿의 자료를 보면, 2019년 상반기 퀄컴은 235만달러(27억원)를, 인텔은 138만달러(16억원)를 로비자금으로 지출했다.

이들의 로비활동 내역을 보면 미 정부의 무역 통제와 관련한 이슈가 눈에 띈다. 특히 인텔은 ▲반도체 산업 거래 ▲수출입 통제 시스템 ▲국가 안보 ▲공급망 보안 ▲중국 관세 등 이슈 해결을 위해 로비자금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화웨이는 미 정부 제재 심화에도 ‘쿨하게’ 로비자금을 줄였다. 화웨이는 2019년 상반기 보안 이슈 해결을 위한 로비자금으로 5만5000달러(6350만원)를 지출했다. 거래 제한에 동참한 퀄컴, 인텔과 대조를 보인다. 2018년 로비자금으로 쓴 16만5000달러(1억900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화웨이는 2012년 대미 로비자금으로 120만달러(13억8600만원)를 지출했다. 그해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화웨이 장비를 미국 내에서 쓸 경우 정보를 가로채거나 국가 인프라에 사이버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것과 연관이 깊다.

2019년 상반기 로비자금은 7년 전 대비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미국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중국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간 것으로 풀이한다. 적극적인 로비로 미 정부의 제재를 피하려 시도한 2012년과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임종인 고려대 교수(정보보호대학원)는 "화웨이의 반격은 미중 무역분쟁의 일부로 봐야한다. 정치적 로비로 미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시기는 지났다"며 "화웨이는 기술·부품 자립 역량을 갖추는 동시에 최대 고객인 미 기업에 압력을 넣어 미 정부를 역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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