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표된 후인 9일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제도 축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제도를 축소 운영할 경우 소재·부품 연구를 전문연구요원에게 의존하는 중소기업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고자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100개 전략적 핵심 품목을 선정하고 집중 투자해 5년 내 공급안정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과 과학기술 격차 해소의 막중한 임무를 부여해 전투현장으로 내보내야 할 정예 과학기술 전사(warrior) 확보와 양성을 위한 정책은 오히려 후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MIT 링컨랩이 실용적인 레이더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고 기초과학에 기반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기획·성공이 없었다면 연합군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견인하고 일본의 무조건항복 선언을 쉽고 빨리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현재의 한·일 무역전쟁 보다 더 심각한 안보 위협 상황에 대비하려면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목표는 무엇이고 수단은 무엇인가. 한국의 국가 경쟁력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목표이고, 우위에 있는 기술이 수단이다. 여기에서 경쟁력이란 산업경쟁력을 의미하고, 산업경쟁력은 기술에 근간을 두며 기술은 과학에서 출발한다. 기초과학이 응용과학 그리고 기술개발을 거쳐 산업화 즉 과학의 유용성(usefulness)이 가시화되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의 투자는 물론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국민과 국가의 신뢰가 요구된다. 과학에 대한 현재의 투자가 ‘헛된 일(useless things)’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게 해 한국의 미래 과학기술계를 책임질 인력에 대한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소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가운데 가장 핵심은 우수 과기(科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하는 데 있다. 비용도 시간도 우수인력의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결과가 비례하고 사실상 점프가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더 우수한 과기인력의 확보 노력 그리고 그들을 향한 신뢰와 지원은 시간과 비용의 높은 벽을 뛰어 넘게 할 수도 있다.

국방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병역특례제도 폐지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국방부는 7월 9일 병역자원 부족을 근거로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이공계 대체복무제도를 대폭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사회는 전문연구요원제도 자체의 유용성은 인정하면서도 공정성과 특혜 시비에 대해서는 정리를 하지 못한 상태를 지속해 왔다.

제도의 폐지·축소는 이러한 시비를 그치게 할 수 있겠지만, 국가경쟁력 약화를 담보로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규모의 적정성과 운영 관리는 별개의 것으로, 제도의 악용을 방지하고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 관리의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규모의 적정성 문제와 결부지어 제도 자체를 폐지·축소하는 쪽으로 접근한다는 식이라면 문제가 있다. 정부가 동원한 최고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적 선택인지 국가경영 차원에서 다각적인 검토와 관계부처 간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1973년 제정한 전문연구요원제도는 병역자원 일부를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병무청장이 선정한 병역지정업체에서 연구 또는 제조·생산인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상인원의 규모는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로 정한다. 현재 연구기관의 과학기술 연구·학문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연구요원 1000명과 산업체 제조·생산 분야 종사자 1500명 등 1년 총 2500명을 선발한다. 근무기간은 3년이다. 제도의 목적은 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다.

먼저 대상인원 2500명이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래 국방은 병력의 숫자가 아닌 첨단무기체계와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에 좌우된다.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축소·폐지가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역 자원 감소와 관련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고, 연간 군 입대 인원의 1%에 불과한 전문연구요원 2500명이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다음으로 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운영한 전문연구요원제도 자체가 폐지·축소할 만큼 부족했던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기술혁신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로 전망했다. 클린턴 정부는 1995년 ‘국가안보 과학기술 전략’이란 보고서를 통해서 과학기술 정책을 미국 국가발전정책의 핵심으로 부각하며 동시에 경제·산업 정책보다 이를 우위에 놓았다. 미국은 이민자의 군 입대 시 시민권을 주며, 전 세계 유학생 중 학위를 마친 우수 인력에게도 시민권을 준다. 한국 국토의 100배가 넘는 넓은 국토를 보유했고, 석유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일본은 1억3000만명의 인구 중 20만명이 자위대(모병제)로 활동 중이며, 1850년대부터 산업화를 시작해 총 21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은 산업경쟁력, 과학기술 역량, 인구 규모, 60만 수준의 병력(징병제), 안보위협 등 종합적으로 우수한 과기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학기술의 역사가 짧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가가 존재하는 한 더 우수한 인재를 과학기술계로 유인하기 위해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경영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들이 열정을 갖고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국가가 줄 수 있는 창의 환경, 자유, 신뢰 등을 제공해야 한다. 전문연구요원제도가 해결책의 모든 것이 될 수 없겠지만 중요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국가존립의 최대 관건인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와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공계 분야로 더 많은 우수인력이 모이도록 해야 한다. 국가의 우수인력들이 의학계열 등 비이공계로 집중되는 비균형적 쏠림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균형추를 놓는 일과 우수 과기인력을 세밀하게 관리·지원하는 일은 국가 미래를 위한 정부의 책임이다.

한국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을 시작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지혜롭고 과감한 투자 그리고 과학기술 인력을 소중하게 대접했다. 오늘의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산업 경쟁력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고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과학기술 인력을 대하는 태도가 미래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유용성에 대한 오랜 논쟁이 종지부를 찍고 지혜로운 결론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시중 전과기처 장관의 2006년 기고를 일부 인용한다.

"오늘날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건강,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생활수준, 그리고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사항이며, 기술은 미래의 자산이자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또한 국가의 생존능력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국가간 경쟁과 교류의 절대적인 담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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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교수는 안보과학기술 전문가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한때 파일럿으로 영공을 지키기도 했다. 재난안전에서 국방 영역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국가 안보를 바라보는 과학기술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안보과학기술(Security Science & Technology)의 개념 정착과 확산, 그리고 그 결과를 경제활동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GIST 안보과학기술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