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지식 모으는 꿈을 꾼 선지자들
인터넷과 빅데이터 개념을 100년전에 구상
초연결 사회에도 유효한 혁신적 사고
이를 계승한 거대 기술플랫폼 기업들
낡은 규제와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한국
세계 지식 창구, 대한민국의 꿈 버릴 수 없어

벨기에의 책 애호가이며 서지학자인 폴 오틀레(Palul Otlet)와 그의 동료인 앙리 라 퐁텐(Henri La Fontaine)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아놓은 박물관 ‘문다네움’(The Mundaneum)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이를 위해 1910년까지 수천 권의 책, 신문, 잡지, 포스터, 엽서 등을 수집해 색인 카드에 상세하게 링크로 연결된 문서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를 레조(Reseau)라고 불렀다. 프랑스어로 ‘그물’ 혹은 ‘네트워크’라는 뜻이다.

이러한 국제 서지목록은 새로운 도구로서의 서지학의 양식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최초의 사례다.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최초의 검색 엔진 모델이다. 구글(Google)의 종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조는 일반적인 도서관의 색인 카드와는 다르게 링크를 통한 문서 간 상호연관성을 표시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맨틱웹(Semantic Web)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시맨틱웹은 ‘의미론적인 웹’이라는 뜻이다. 인터넷의 분산환경에서 각종 문서, 파일, 서비스 등과 관련된 정보와 자원 사이의 관계와 의미정보를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온톨로지’(Ontology) 형태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 기술이다.

시맨틱웹은 웹에 올라온 정보의 의미를 사람뿐 아니라 자동화된 기계가 탐색, 추론해 원하는 결과로 해석함으로써 의미정보를 바탕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나 블로그, 정보검색 엔진인 포털, 가상 공동체의 연결, 기업과 조직의 데이터 통합과 관리 등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폴 오틀레는 문다네움에 모은 데이터가 방대해지자 종이 색인 카드 형태의 주석을 활용해서는 자료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료 정리 방법을 종이 카드를 넘어선 새로운 기술의 적용을 구상한다. 즉, 라디오, 엑스레이, 영화, 현미경 등을 이용해 자료를 촬영해 거리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살펴볼 수 있는 기계를 구상했다. 1934년, 그는 세상의 모든 문서를 TV 화면으로 전송할 수 있는 전자 망원경인 ‘텔레 포토크라피’(Tale Photographie)에 대한 꿈을 역설했다.

그는 1930년대, 즉 웹을 발명하기 60여 년 전에 이미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를 예견하며, 사용자들의 참여와 이를 통한 활용을 예견했다. 또한, 1906년 쓴 글에선 모바일의 혁신적 변화를 예측했다. 전화의 사용에 선이 사라지고, 누구나 수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1944년 사망과 함께 그의 혁신적인 사고는 잠시 모두에게 잊힌다. 그러다 보이드 레이워드(W. Boyd Rayward)가 1975년 오틀레의 전기를 발간하면서 그의 선지자적인 아이디어는 다시 세상의 빛 속으로 등장한다. 그의 업적을 기려 1998년 벨기에 몽스(Mons)에 문다네움(The Mundaneum) 박물관이 건립됐다. 2012년 구글(Google)은 폴 오틀레와 앙리 라 퐁텐의 혁신적 정신과 노력을 자신의 기업 이념으로 기리며 지원을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시작이 두 사람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며 업적을 기린다.

4차 산업혁명은 앞선 1, 2, 3차 산업혁명과 다르게 시장의 소비자가 기술의 혁명을 활용해 소비시장의 혁명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아마존(Amazon)의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데이터가 곧 소비자의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시장 주도권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를 읽지 못하면 기업의 성장은 멈추고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글로벌시장의 소비자와 데이터의 등치 현상은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도로 진행됐다. 글로벌기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며, 미래산업의 원유라고 불리는 빅데이터와 그것의 쓰임과 분석을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찾는다.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국가는 물론이고,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까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소비자 시장에 초점을 맞춰 나간다.

세계시장 경제의 혁명적 변화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시가총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세계 기업 시가총액 순위를 보면, ▲애플(Apple) 1068억 달러(1259조 원)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1057억 달러(1246조 원) ▲ 아마존(Amazon) 869억 달러(1024조 원) ▲구글(Google) 862억 달러(1017조 원) ▲페이스북(Facebook) 530억 달러(625조 원) 등이 1~5위를 차지한다. 7위와 8위는 중국의 알리바바 440억 달러(475조 원)와 텐센트 403억 달러(475조 원)다.

이들 기업은 제조업으로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한 전통적 기업들과 다르게 역사가 비교적 짧다는 것과 "혁신적 파괴"를 무기로 시장 변화를 이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또한, 빅데이터로 소비자를 읽고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자발적 충성고객이 되도록 만든 기업들이다.

세상은 디지털 소비 문명 시장을 놓고 격돌한다.기술혁명을 바탕으로 시장혁명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혼돈과 무한경쟁 시대로 진입한다. 새로운 글로벌 시장경제의 큰 흐름은 플랫폼 비즈니스가 주도하며,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응용하는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해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을 받으면 순식간에 유니콘기업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1~3차 산업혁명 시대엔 이런 기업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기술을 만나면 짧은 시간에도 시장의 스타로 등극하는 변화무쌍한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변화무쌍한 가능성이 넘치는 시장에서 어디에 들어서 있는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시장의 변화와 기준에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글로벌시장에서 엄청난 추진력을 바탕으로 세를 확장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신사업 모델을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불법으로 간주한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의 상호연관적 비즈니스 모델을 예로 들어보자. 아마존(Amazon),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IBM 등이 핵심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은 빅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서 가공한 후 인공지능에 접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모델이 우리나라에 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은 한국 기업을 새로운 무한경쟁 글로벌시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비판이 지속된다. 이로 인해 빅데이터를 통한 정보 가공이 초보 수준에 멈춰 서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업과 소비자, 기업과 근로자, 기업과 하청업체 간 다양한 관계의 개선과 조정을 시장의 메커니즘에 맡기지 않는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익과 이념에 근거해 관리 통제하려는 구시대적 사고도 한국 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힘을 잃는 데 일조한다.

시장에서의 사업 활성화와 창의적 기술 적용을 통한 신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적 발전을 모두가 기원한다. 제조업이 중심인 나라.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피폐한 나라. 그러나 ‘잘살아 보자’와 ‘교육이 힘이다’라는 열정적 구호를 가슴에 새기고 달려온 나라. 인류 현대 100년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우며, 지금의 오늘을 만든 위대한 나라. 국민소득 100달러 이하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해 유니세프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 원조를 제공하게 된 세계 유일의 나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이 나라가 산업의 쌀인 철강업, 조선업,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제조업 세계시장 정상을 차지한 풍요로운 나라. 앞선 세대들이 열정과 고단한 삶을 녹여 만든 우리의 나라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열리는 새로운 초연결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다시 세계시장 1등의 역사를 새롭게 창조해 우리의 아이들에게 ‘헬조선’이 아닌 ‘가장 사랑하는 나의 나라’를 물려주려면 기업과 연결된 모든 이들의 현명한 상생과 발전적이고 혁신적 사고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폴 오틀레가 못다 이룬 문다네움의 꿈,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모아 활용할 수 있는 세계의 지식 창구로서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꿈을 오늘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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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천 Global ICT Lab 소장은 미국 오하이오대학(Ohio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광고/PR 부전공)를, 뉴욕주립대 버펄로(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융합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분석 그리고 뉴미디어를 교육하고 연구했다. Global ICT 연구소를 개소해 빅데이터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 산업, 정책 등의 연구와 자문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전기공사협회 남북전기협력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사)국방안보포럼 ICT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블록체인의 사회 확산과 발전, 남북전기 교류의 발전, 국방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