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 대로 차도에서 운행하면 이용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반면 이용자 스스로 안전을 위해 인도에서 탈 경우 보행자를 위협하는 ‘킥라니’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자전거 취급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전동 킥보드’ 얘기다. 차도와 인도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

전동킥보드를 타고 강남대로를 달리는 이용자. / 이광영 기자
전동킥보드를 타고 강남대로를 달리는 이용자. / 이광영 기자
퍼스널 모빌리티 공유 서비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음에도 민간기업이 중심이 돼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의 유망성과 달리 정부의 규제 혁신 속도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퍼스널 모빌리티 산업을 전담할 주무부처조차 없고 불분명하다.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정치권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 대표는 17일 서울 강남 드림플러스에서 열린 퍼스널 모빌리티 공유 서비스 스타트업 미디어데이에서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국내 외로 확산하는 추세지만, 낡은 법·제도로 인해 퍼스널 모빌리티 기업들은 성장 못하고 이용자와 보행자는 안전을 위협받는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향후 1년 이상 시민 안전이 방치될 위기에 놓이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퍼스널 모빌리티 주무부처 없다" 업계 4년째 공허한 외침

킥라니는 전동킥보드와 동물 고라니를 합친 신조어다. 고라니처럼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다른 차량을 위협하는 일부 전동킥보드를 뜻한다.

2016년 6월 윤재옥 의원은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수단의 법적 정의와 운행기준, 안전규제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관련업계도 여기에 발맞춰 전동킥보드가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 부처와 전문가, 시민사회 단체가 합의했음에도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 업계의 체감 온도차가 크다. 법제화 이후 퍼스널 모빌리티 산업을 전담할 부처가 명확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4년째 공허한 외침이 장기화 할 모양새다.

정미나 코스포 정책팀장은 "경찰청은 퍼스널 모빌리티의 단속 주체로서 역할이 명확한 반면 법제화 후 전담하는 주무 부처를 정하고, 어떤 법에 근거를 둘지에 대한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정치권이 관련 법제화 필요성을 체감하고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부처간 조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이 임시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비슷한 법안을 재발의 할 경우 퍼스널 모빌리티 서비스 고도화 및 확산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공유 경제를 기반으로 한 골목상권 확장, 고용 증대 등 신규 시장 창출이 요원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팀장은 "보행으로 굳이 가지 않았을 이동의 창출은 상업적으로 ‘골목의 확장’이라는 효과를 낳는다"며 "서비스 확장에 따른 고객센터와 기기 관리 전담 인력 운영이 필수적으로 수반돼 고용도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퍼스널 모빌리티 업계가 17일 서울 강남 드림플러스에서 도로교통법 개정을 촉구하는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스포 대표, 하성민 피유엠피 이사, 윤종수 지빌리티 대표, 이승건 나인투원 이사, 지헌영 빔모빌리티 대표, 전민수 매스아시아 이사, 김형산 더스윙 대표. / 이광영 기자
퍼스널 모빌리티 업계가 17일 서울 강남 드림플러스에서 도로교통법 개정을 촉구하는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스포 대표, 하성민 피유엠피 이사, 윤종수 지빌리티 대표, 이승건 나인투원 이사, 지헌영 빔모빌리티 대표, 전민수 매스아시아 이사, 김형산 더스윙 대표. / 이광영 기자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싶다

전동킥보드의 사고율은 위험하다는 인식과 달리 공유자전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코스포가 2019년 하반기 전동킥보드 업체 8개사의 기기 운행 횟수와 사고 건수를 분석한 결과 8개사의 총 운행 횟수는 311만251건이다. 이중 회사가 보험사고 상당으로 접수한 사고 건수는 총 83건으로 0.0026%를 차지한다.

서울시 자전거 공유 서비스인 ‘따릉이’는 2015년부터 2019년 8월까지 2891만539건이 운행됐다. 이 중 사고는 820건이 발생해 누적 사고 비중은 0.0028%를 차지했다.

퍼스널 모빌리티 업계는 도로교통법 개정에 앞서 자체적으로 안전 기준 확립하고 관리에 힘쓰고 있다. 코스포 퍼스널모빌리티 산업협의회에 소속된 11개사는 만 16세 이상 원동기 이상의 면허 소지자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공동 기준을 마련했다. 25km 시속 제한도 둔 상태다.

전동킥보드는 일부 지역에서 자전거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다. 기업이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사업을 펼치도록 해주자는 취지에서 만든 ‘규제샌드박스’를 통해서다. 퍼스널 모빌리티 플랫폼 ‘고고씽’을 운영하는 매스아시아는 경기도에서 공모한 규제샌드박스 실증사업에 최종 선정 및 통과돼 지난해 9월부터 동탄신도시에서 실증사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같은 실증도 관련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를 잃는다. 샌드박스 안에 언제까지 갇혀있을 지 모르는 데, 퍼스널 모빌리티 사업이 제대로 성장할리 없다. 업계는 일부 지역에서 전동킥보드 운행을 원하는 것이 아닌 전국의 자전거 도로 운행을 바란다.

진민수 매스아시아 마케팅 이사는 "사업 초기와 달리 이제는 스마트시티와 함께 공존하는 퍼스널 모빌리티 도입을 고려하는 지자체가 많아졌다"며 "개정안이 빨리 통과돼 규제 샌드박스가 아닌 입법화된 서비스로 사업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업계는 ‘전동킥보드 총량제’에 대해 개정안 통과 후 정부와 협의할 문제로 평가했다. 총량제는 공유 전동킥보드 난립으로 골머리를 앓는 국가가 도입한 제도다.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도시교통국(SFMTA)은 공유 전동킥보드가 인도 통행을 방해하고 위험하게 운행된다는 등의 민원이 빗발치자 업체와 운행 대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윤종수 지모빌리티 대표는 "우리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며 "법제화 후 총량제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정부·지자체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