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용 메모리 모듈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통하던 삼성전자의 위상이 흔들린다. 해외도 아닌 국내에서 외산 램(RAM) 업체에 일격을 맞았다. AMD의 3세대 라이젠 프로세서를 지원하는 제품을 제때 내놓지 못한 영향이다.

하지만 경쟁사인 마이크론의 메모리 제품은 수요 증가에 따라 소매가격이 인상되는 등 인기를 누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급 불안정과 주요 부품의 가격 상승 여파로 메모리 가격이 상승해야 하지만, 삼성전자 램 가격은 내려가는 추세다.

마이크론 3200㎒ DDR4 메모리가 인기를 끌며 삼성 메모리의 인기가 한풀 꺾였다. / IT조선 최용석 기자
마이크론 3200㎒ DDR4 메모리가 인기를 끌며 삼성 메모리의 인기가 한풀 꺾였다. / IT조선 최용석 기자
21일 PC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PC용 DDR4 메모리는 1월 마이크론이 선보인 ‘크루셜(Crucial) DDR4 PC-25600’ 시리즈에 한방 먹었다. 작동속도를 업그레이드 한 제품이 없는 것이 핵심 이유다.

최근 조립 PC 시장에서는 AMD 3세대 라이젠 프로세서의 인기가 높다. 3세대 라이젠 프로세서는 메모리 작동속도 3200㎒(PC4-25600 규격)를 지원하고, 이를 지원하는 메모리에서 제 성능을 100% 발휘한다.

라이젠 프로세서와 가장 궁합이 좋은 제품은 삼성전자의 DDR4 메모리 모듈이었다. 업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 기술 덕에 얻은 높은 안정성과 성능, 최고의 호환성 덕이다. 삼성전자 메모리는 오래전부터 ‘업계 표준’ 제품이라는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유통되는 삼성 DDR4 메모리 모듈은 2666㎒(PC4-21300 규격)의 속도까지 지원한다. 라이젠 프로세서가 3200㎒ 속도를 지원하므로, 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메모리 오버클럭이 필수다. 일반 사용자가 오버클럭을 시도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3200㎒로 작동하는 PC4-25600 DDR4 모듈은 현재 기업 및 OEM 시장에만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삼성전자의 안방인 국내에서 3200㎒ DDR4 메모리를 먼저 출시하며 기선을 잡았다. 꽂기만 하면 오버클럭이나 별도의 설정 없이 3200㎒의 속도로 작동하는 편의성을 강조하며 홍보에 나섰다. 이용자 사이에 입소문까지 나며 단숨에 ‘라이젠 프로세서에 가장 잘 맞는 메모리’라는 자리를 꿰차는 모양새다.

PC 업계에 따르면, PC 판매 성수기를 맞아 삼성전자 메모리 제품의 수요와 판매량이 꾸준하지만 그 위세가 한풀 꺾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2월 초 4만원대 초반까지 올랐던 삼성전자 DDR4 8GB 모듈의 가격은 21일 기준으로 한 달 전 가격 수준인 3만6000원 선까지 내려왔다. 품귀현상으로 8GB 제품 기준 5만원대를 눈앞에 둔 마이크론 제품과 대비된다.

삼성전자의 대응이 늦은 것은 일반 소비자나 조립 PC 시장에 메모리 모듈 제품을 직접 공급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립 PC용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삼성전자 메모리는 몇몇 전문 업자들이 기업 및 OEM 등으로 납품되는 일부 물량을 가져와 유통하는 물량이다. 삼성전자가 유통 라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의 3200㎒ DDR4 메모리 모듈이 시중에 풀릴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실제 유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이크론은 ‘크루셜’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일반 소비자용 메모리 제품을 직접 공급한다. 일반 소비자의 수요를 빠르게 파악해 신제품을 선보이기 쉬운 구조다.

유통사인 대원CTS 관계자에 따르면 1월 중순부터 판매를 시작한 마이크론 3200㎒ DDR4 메모리는 한 달 동안 2만개쯤 팔렸다. 국내 조립PC 시장 규모와 짧은 기간을 포함하면 예상 이상의 인기다.

마이크론의 메모리 제조 공장은 미국과 일본에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생산 라인이 마비된 다른 기업과 달리 제품 수급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메모리 시장 정보 전문 사이트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여파로 최근 상승세를 유지하던 메모리반도체의 공급 가격이 한풀 꺾였다. 2월 4일 1개당 현물 가격 3.48달러(DDR4 8Gb 칩)로 고점을 찍었고,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며 20일 기준 3.31달러에 판매됐다. 한 달 전인 1월 20일 기록했던 3.35달러보다 오히려 1.2% 더 인하됐다. 메모리 가격 반등으로 실적 회복을 노리는 국내 메모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악재가 터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