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가 폐국 딜레마에 빠졌다. 우본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판매에 전사적 역량을 쏟고 있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우체국 ‘폐국' 이슈로 시끄러웠다. 우본은 우편 적자 고리를 끊기 위해 ‘우체국 창구망 효율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폐국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27일 오후 업무시간이 끝난 서울 마포구 망원우체국 앞에서 소규모 촛불시위가 열렸다. 폐국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망원우체국은 서울에서 1호 폐국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27일 오후 기준 망원동 주민들 1900명이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이 밖에도 부산, 강원, 울산, 전주 등에서도 폐국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망원동 우체국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모습./ IT조선
망원동 우체국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모습./ IT조선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에 따르면 우본은 2023년까지 전국 1352국 직영 우체국 절반 수준인 677개 우체국 폐국을 추진한다. 2020년 상반기에만 171개국이 문을 닫는다. 세부적으로는 서울 24개국, 경인 28개국, 충청 25개국, 부산 29개국, 전남 19개국, 경북 22개국, 전북 11개국, 강원 10개국, 제주 3개국 등이다. 지역별로 폐국을 검토대상인 우체국 리스트가 돌자 대상으로 내부도 시끄럽다.

우본은 1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상록회관 우체국도 이용고객 감소 및 우편수입 대비 비용증가로 적자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폐국을 행정예고한 데 이어 21일 부천과 남양주 우편취급국 폐국을 고시했다.

연이은 우체국 폐국 움직임에 노조는 물론 지역 주민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신명춘 공노총 우본 서울지역본부장은 "마포구 내에서도 이용률이 많은 우체국인데 갑작스럽게 없애려 하는 것에 지역주민들도 당황스러워한다"며 "폐국 반대 서명을 받으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망원동 주민들이 우체국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며, 특히 고령자분들이 많이 이용하기에 폐국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직영 우체국 중에서도 유상임차는 임대차 계약을 안 하면 자동으로 폐국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폐국을)강행하기 좋다"며 "우본이 주민들의 동의나 이용률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폐국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체국 폐국을 반대하는 현수막./ 공노총 제공
우체국 폐국을 반대하는 현수막./ 공노총 제공
김황현 공노총 우정사업본부 사무총장도 "시골 지역은 (우편취급국)공고를 해도 들어오려하지 않으니, 지원자가 없으면 결국 폐국수순을 밟는 것이다"며 "취급국은 우편업무만 할 수 있을 뿐더러, 공무원이 직접 응대하지 않고 위탁계약을 맺은 직원이 응대하기 때문에 서비스 질도 낮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우본은 완전한 폐국이 아니라 우편 업무만 취급하는 민간 우편취급국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사무총장은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기관에서 적자를 운운하는 것도 잘못됐지만, 우체국을 없애면 경영 상황이 정말 나아지는지도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지금도 금융사업에서 이익을 내고 우편 사업에서 적자를 내는데, 우편 업무만하는 취급국으로 전환하면 금융수익마저 안 좋아져 재정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본 "매년 인건비 1000억원 상승, 운영 효율화 필요"

노조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노사는 협의 모드에 돌입했다. 우본 노사는 1주일에 한 차례씩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노조 측은 우체국 공익적 기능을 무시한 폐국 추진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 중이다. 하지만 2019년에만 2000억원쯤의 적자를 기록한 우본은 운영의 효율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우본 관계자는 "우체국은 일반 은행처럼 대출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급국에 무인 기기를 비치하면 입출금 등의 간단한 금융 서비스를 할 수 있다'며 "지금 돌고 있는 폐국 대상개수는 목표치일 뿐이며, 얼마든지 지역 주민들의 의견과 지역 특성을 고려해 계획을 변동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간 인건비만 1000억원이 느는 상황에서 창구망 효율화를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며 "계속 협의를 할 것이며, 폐국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