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시 축령산에서 혼자 헤맬 때였습니다. 산중에서 갯버들의 꽃망울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김소월의 산유화가 읊조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시구(詩句)에서 전에 알지 못했던 색다른 의미가 느껴졌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는데 저 밖에서는 그걸 모르고 살고 있네~ 산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은 지금 산에 피는 꽃을 알 수 없네~’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새로운 감염병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는 동안에도 속세와 동떨어진 깊은 산에서는 아무 상관없이 꽃 필 준비하며 계절을 달리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얼음장 밑에서는 이미 시작됐을 봄입니다. 올해는 금방이라도 오는가 싶더니 시샘할 꽃도 별로 없건만 꽃샘추위가 와서 시비입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앉은부채 군락지는 올해 해거리하기로 결정한 모양입니다. 꽃은 없고 모두 느지막이 배춧잎만 말아 올립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던 데다 가뭄이 계속된 탓입니다.
최근에 눈과 비가 조금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긴 했으나, 올해 꽃 필 마음을 접어둔 앉은부채는 결코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과 비의 양이 적어서가 아니라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육질의 꽃차례와 두꺼운 불염포까지 만들어야 하는 앉은부채는 더욱 그렇습니다. 앉은부채가 자라는 가장 남쪽 지역이지 않을까 싶은 전북 순창군의 앉은부채도 올해는 모두 꽃을 쉬기로 했습니다. 청주의 어느 유명 자생지의 것만 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뿐입니다.
어쩌면 혹시 이른 봄에 일찍 피는 꽃들이 분포하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붉은대극이나 변산바람꽃이 그 예입니다.
붉은대극의 굵다란 뿌리를 보고 산삼이나 고구마로 착각했다간 큰일 납니다. 3월 1일 즈음에 맞춰 나타나 독립만세를 외쳐대는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들로, 뿌리에 든 부동액 같은 액으로 춘설도 아랑곳없이 피어납니다.
억울해 할 붉은대극 대신 말하건대, 꽃 맞습니다! 꾸미는 건 좋으나 숲은 가급적 최소한만 건드려주시기 바랍니다.
내장산의 변산바람꽃은 갑작스런 꽃샘추위에 벌써 시즌 마감 중입니다. 산에서 살지 않으면 꽃 피는 건 물론이고 꽃 지는 것도 모를 수밖에 없나 봅니다. 하긴, 변산바람꽃은 초본류의 화괴(花魁)인지라 부지런한 사람하고만 만나고 가는 요물 중의 요물입니다.
벌써 몇 번째 와보는 곳인데 내장산의 변산바람꽃은 한 번도 때를 맞추지 못해 시든 얼굴만을 마주합니다. 벼르고 별러서 온 건데 이번에도 그러니 섭섭함을 영 감출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기에 돌아다니는 곤충은 많지 않지만 경쟁상대가 적으므로 일단 끌어모으기만 하면 독점할 수 있어 좋습니다. 멀리 있는 곤충을 어떻게 끌어올까 하는 전략적 고민에 향기만큼 좋은 해결책도 없습니다. 향기를 낸다는 건 수고로운 일이지만 그만큼의 보상이 결실로 주어집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고 믿는 그곳에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편히 스킨십하고 마주보고 밥 먹으며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다시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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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