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아이, 로봇(I, Robot, 2004) ★★★☆(7/10)

줄거리 : 로봇 3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로봇과 사람이 함께 사는 미래. 로봇의 아버지라 불리는 래닝 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난다. 스푸너 형사는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닌, 래닝 박사와 함께 일하는 로봇 ‘서니’가 벌인 살인 사건이라 직감한다.

하지만, 이는 ‘로봇은 살인할 수 없다’는 로봇 3원칙에 위배되기에 주변의 비웃음만 산다. 뭔가 숨기며 수상한 모습을 보이는, 나아가 꿈 꾸고 그림을 그리는 등 로봇이라기보다는 사람같은 모습을 한 서니. 서니를 수사하던 스푸너 형사를 별안간 서니와 똑같이 생긴 로봇이 습격하는데…...

"로봇은 사람을 해칠 수 없어요. -알아요, 로봇 3원칙. 당신들의 ‘완벽한’ 보호장치."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에 이어 TV와 에어컨 등 가전, 나아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계에 AI가 탑재됐습니다. 더러는 영화 ‘터미네이터’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를 던지고는 합니다. AI가 로봇을 만들어 인류를 절멸한다는,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인기를 끈 바로 그 SF 영화 터미네이터 맞습니다.

한편으로는 ‘로봇 3원칙’을 들어 AI는 항상 사람의 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로봇 3원칙은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면 안된다.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르는 체해서도 안된다. 2] 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1,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입니다.

이 원칙은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작품 ‘아이, 로봇(I, Robot)’에서 처음 나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 오늘 살펴볼 동명의 2004년작 영화 ‘아이, 로봇’입니다. 내용 자체는 소설과 책이 판이하지만요.

아이, 로봇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아이, 로봇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의 배경은 ‘로봇과 사람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입니다. 영화 속 모든 로봇은 로봇 3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사고를 당한 스푸너 형사를 구하러 온 로봇은 로봇 3원칙 가운데 1원칙의 모순에 빠집니다. 두사람이 동시에 목숨을 잃을 만큼 큰 위험에 빠졌을 때, 두사람 모두를 구할 수 없을 때, 로봇은 누구를 구해야 할까요?

로봇의 판단은 스푸너 형사의 명령과는 정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로봇이 1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생각한 그는 사건 이후로 로봇, 그리고 로봇 3원칙을 믿지 않고 나아가 혐오하게 됩니다.

"저는 그분을 살해하지 않았어요!"

스푸너 형사가 로봇 서니를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상황과 증거 모두가 명백하게 서니를 범인으로 지목하니까요. 서니가 대는 알리바이가 고작 로봇 3원칙, 법적 근거며 안전성이 없는데다 오래 전에 깨진 적이 있는 빈약한 논리라니. 스푸너 형사가 코웃음 칠만도 합니다.

하지만, 서니와 대화할수록,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스푸너 형사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를 구하려 하던 로봇이 그랬던 것처럼, 스푸너 형사 역시 모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서니는 그 모순을 신랄하게 파고들며 ‘로봇은 로봇일 뿐’이라는 스푸너 형사의 생각과 사상을 부정합니다. 서니의 발언이 또한 ‘로봇도 사람처럼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스푸너 형사의 지론을 뒷받침하는, 또하나의 모순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서니는 로봇 3원칙을 어떤 로봇보다도 잘 지켰지만 또 어떤 로봇보다도 교묘하고 치명적으로 어겼습니다. 로봇이지만 로봇이 아니었습니다. 스푸너 형사는 서니를 이해하고 이내 사건의, 로봇의, 자신의 편견도 이해합니다.

그가 다다른 논리의 종착점이 서니의 꿈과 겹치는 순간, 사건의 가공할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 진실마저 딛고 선 스푸너 형사와 서니는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로 우뚝 섭니다.

"(윙크)"

SF 주제에 구성은 추리·액션, 주인공은 흥행 보증수표 배우인지라 재미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 나서 곰씹어보면 또다른 재미가 배어나옵니다. 영화 초중반에 제시된 여러 소품이며 미장센도 훌륭하게 회수됩니다.

참고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 로봇’에는 영화에 등장한 로봇 3원칙의 근간이 되는 또 하나의 원칙 ‘0원칙’이 나옵니다. 내용은 직접 확인해보세요.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니면 가로젓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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