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존(火鳥 2772, Space Firebird, 1980) ★★★★(8/10)
줄거리 : 모든 아이가 시험관에서 만들어져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 사회. 주인공 고도는 우주 사냥꾼으로 살 운명을 받고 여성형 사이보그 올가와 함께 자란다. 유력 정치인의 딸 레나에게 반한 고도. 그를 본 올가는 사이보그임에도 사랑과 질투라는 감정을 느낀다.
레나의 남편 로크는 고도에게 ‘불가능’이라고 알려진 불새 생포 작전을 명령한다. 불새의 영생 에너지로 멸망하는 지구를 살리려는 계획. 불새와 만난 고도는 그의 공격에 고전하고, 결국 올가가 그를 지키려다 사망한다. 순간 고도가 내뿜은 강력한 힘에 불새는 무릎을 꿇고, 뜻밖의 제안을 건네는데…...
"올가는 눈물을 흘릴 수 없어. 우는 장치가 없으니까"
희노애락을 비롯한 감정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도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는 인공지능(AI)도 감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AI가 가장 먼저 배울 감정은 무엇일까요?
1990년대 이전 SF 영화는 대개 AI와 로봇을 ‘인류를 지배 혹은 없애려 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렸습니다.
1951년작 ‘지구가 멈추는 날’과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84년작 ‘터미네이터’ 등이 우선 떠오르네요. 희노애락 중 가장 자주 떠오르는 것이 분노이기에, AI와 로봇이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한편으로는 인간성,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운 AI와 로봇을 그린 영화도 있었습니다. 오늘 다룰 작품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존(火鳥 2772, Space Firebird, 1980)’이 대표적입니다.
"올가는 사람의 마음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당신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존은 불새 시리즈 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의 명암, 그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인간성과 감정. 결국 모든 감정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메시지를 조화롭고 훌륭하게 묶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주인공 고도는 사이보그처럼 만들어진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감정을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운명에 순응하며 인간성을 잃어갈 때, 고도는 꿋꿋하게 지키고 길러온 감정을 따릅니다.
그런 고도와 함께 살아온 올가이기에 사이보그임에도 인간의 감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AI, 로봇임에도 사람같은, 어떤 면에서는 사람의 그것보다 선명한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고도와 올가의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듭니다.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들고, 멸망 직전의 지구를 재생하고,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합니다. 사랑은 때로 희생을 요구합니다만, 그 희생은 또다른 생명을 만들고 사랑을 심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사랑을 부디, 제게 조금만이라도 나누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작품은 1980년 중반 한국에 더빙 비디오로, 이어 1991년 구정 연휴 MBC 새해 특선 영화로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작품을 TV에서 본 기억이 아직 뚜렷합니다.
40년 전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최신 애니메이션처럼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연출, 구성, 음악도 단순하고 고루한 느낌을 줍니다만, 메시지만은 올곧고 진지합니다.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존 외에 불새 우주편·야마토편이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봉황편이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각각 만들어졌습니다. 왜색이 진하지만, 그 이상으로 강한 메시지와 여운을 주니 선입견을 버리고 관람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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