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중 시론] 플라톤은 왜 민주주의를 혐오했나?

  • 남시중 박사
    입력 2020.04.28 06:00

    야당이 대패한 이후 한국 언론에 실리는 총선 해석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선거 결과를 유권자의 ‘합리적’(rational) 심판으로 보려는 노력이다.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이나 미국에서, 야당이 중간 선거에서 대패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예외적 현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다보니 별의별 말이 다 나온다.

    다음 선거를 위해 대책을 세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민주주의에서, 특히 박빙의 차이로 승패가 나뉘는 소선구제 선거에서, 선거 결과를 놓고 유권자의 어떤 ‘이성적 의도’를 읽어내려는 과도한 시도는 오히려 비생산적이다.

    승리한 정당이 오만해져서는 안 되듯, 패배한 정당도 패배의 원인을 내부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건 오히려 비이성적이다. 선거에 패배했다고 해서, 자학에 가까운 자기비판을 하는 건,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중 민주주의 정치 현실에서 오히려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다.

    민주주의 선거 결과를 유권자의 ‘합리적 심판’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유권자의 ‘투표 심리는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게 실증적으로 연구해 본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불행히도, 선거는 군중 심리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인다.



    투표를 하려고 줄지어 선 유권자들(사진 왼쪽)과 투표 장면 / CNN 갈무리, 조선DB
    대부분의 유권자는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투표한다. 막연한 느낌이나 이미지에 흔들린다.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한다’는 역사적, 실증적 사례를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백인 유권자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반이민을 내세우는 정치인에 투표하는 성향을 보여왔다. 이민자와 백인 노동자의 실업은 경제논리 상 어떠한 함수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민이 중단되면 미국 경제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백인 유권자에게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반이민 선동은 지난 대선에서 기가 막히게 먹혀 들어갔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자'(outsider)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 ‘원시적 본능'은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정서에 고착되어 있다. 이 비논리적 현상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반복해 일어난다.

    미국 유권자의 투표 행위를 "비이성적"(irrational)이라고 단정한 미국 정치학자 크리스토퍼 애컨과 래리 바텔스는, "유권자는 아무런 논리적 관계가 없는 상황이나 사안을 연계해 투표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책임지는 정부가 선거로 유도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

    연방 국가인 미국에서 각 주의 자치 문제는 미국 대통령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반대로 주지사는 미국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는 이 둘을 연계해 정당과 후보를 심판하곤 하는 게 미국의 정치 현실이다.

    이번 한국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원인’으로 방역 성공이 흔히 거론된다. 방역 의료 체계는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정당 정치와 무관한 ‘국가 시스템’이다. 집권당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방역 종사자와 시민이 일치단결해 코로나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는 야당 시각에서는, ‘코로나 효과'라는 비논리적 선거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인종’(race)이 최대 정치 변수로 작용하는 미국의 경우, 비논리적 함수관계는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권자는 정책이나 정강보다 자신의 인종을 대변한다고 ‘믿기는’ 당에 투표하는 성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백인은 (유색인종 당으로 치부하는) 민주당의 복지정책을 (흑인이나 불법 이민자만을 위한 정책이라 생각해) 무조건 반대한다.


    중간선거를 하루 앞둔 2018년 11월 5일 그의 지지 기반인 백인에 둘러싸인 채 미주리주에서 공화당 지원유세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트럼프 트위터
    사실은 백인이 그 최대 수혜자이다. 불법 체류자는 말 그대로 미국 국민이 아니라서 정부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접수가 되지 않는다.

    미국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은, 미국 유권자의 투표 성향을 연구한 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rational) 투표가 아닌 오히려 경제적 자학 행위가 투표 성향의 주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백인 서민이 대기업과 고소득자 감세안을 추진하는 공화당을 -‘백인당'이라고 생각해- 무조건 지지하는 행위이다.

    미국에서는 주 정부 및 그 이하 지방 정부 차원에서 광범위한 직접 민주제가 실시되고 있다. 매 선거 마다 유권자는 수많은 정책과 법률 제안을 스스로 검토하고 판단해야 한다. 우중(愚衆) 민주주의의 폐단을 강조하는 일부 미국 학자는 ‘직접 민주주의는 대중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합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갖춘 유권자에게만 선별적으로 투표할 권리를 줘야한다’는 반민주적 주장까지 나온다. 냉철하게 사고하는 철인왕이 ‘선의의 독재’를 해야한다고 주장한 플라톤 ‘철인 정치’의 현대판이다.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도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투표 기회를 주는 ‘복수 투표권’'(plural voting)을 주장한 바 있다.

    ‘대중은 이성적으로 투표하지 못한다’는 의심은 민주주의 초기부터 엘리트 지식인이 버리지 못하는 우려이다. 불행히도, 최소한 미국의 경우, 그 의심은 실증적 근거가 있다.

    민주주의 선거는 자가당착과 감정이 앞서는 비이성적 모순이 가득 찬 인간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좌우하는 건, 이념이나 정책 혹은 경제적 이해와 같은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요인이 아니다. 동물적이고 감성적인 ‘부족 논리’ (tribal logic)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부족'을 대변한다고 ‘믿기는’ 정당에 투표한다. 부족은 인종일 수도 지역일 수도, 그리고 세대별 계층 간 구분일 수도 있다. 정책 자체의 타당성이나 후보의 도덕성, 정당의 정책 수립과 집행 능력을 매번 냉철하게 평가하기보다 부족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다.

    유권자를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독립된 ‘개인'으로 보기보다 동물적 ‘무리'로 보면, 유권자의 비논리적 투표 행동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울지 모른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은 무리를 이루어 생존해 왔다. 인간 역시 가족, 부족, 국가 단위로 생존하고 진화해 왔다. 과학이 밝혀낸 인류진화의 역사에 ‘독립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집단, 무리만이 존재한다. 군집 동물은 반드시 특정 부족에 속해야 한다. 무리를 이탈하는 순간 바로 천적에게 잡아 먹히기 때문이다.

    경험많은 리더를 잘 둔 덕분에 옐로스톤에서 25년 가까이 지배력을 과시한 회색늑대 무리 ‘몰리' / NPS Kira Cassidy
    동물학자 키라 캐시디에 따르면 늑대, 코키리, 범고래, 고릴라 등 군집 동물들이 얼마나 잘 생존하느냐는 노련한 리더에 달렸다. / 유튜브 TED


    군집 동물의 특징 중 하나는, 위기의 순간에는 반드시 무리의 지도자인 ‘알파를 본능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무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알파 신호'를 기다린다. 고난에 지친 인간이 구세주를 갈구하는 심리이다.

    위기가 닥치면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지위 싸움을 중단한다. 자신의 생명이 ‘알파 신호’를 따라 오로지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데 달려 있다는 진화론적 교훈이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다. 포유류 군집 동물인 늑대나 인간이나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알파 신호’를 찾는 동물적 본능은 이성과 논리가 마비되는 군중 심리로 나타난다. 선거 직전에 일어난 위기적 사건이 투표와 비논리적으로 연계된다. 전체주의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알파 신호'는 위기의 순간에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독재자가 늘 위기를 조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민주주의 정권조차 권위주의적으로 변질하는 이유도, ‘지구 온난화'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점증하는 잠재적 혹은 실질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위기 시에는 집단 몰살의 가능성이 ‘본능적으로' 감지되지 않는 한 ‘알파'를 교체하지 않는다. 미국 유권자는 단 한 번도 전생 시 대통령을 교체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이라크 전쟁을 일부러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이다. ‘알파 신호'의 주파수를 장악하고 있는 집권당이 선거에서 대개 유리해 진다.

    일단 ‘알파 신호'의 이행 단계로 들어가면, 논리와 이성은 씨도 먹히지 않는다. 떼 지어 움직이는 호르몬에 지배되는 군집 동물일 뿐이다. 대통령 중심의 양당제에서는 극렬한 좌와 우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갈등으로 나타난다. 갈등의 본질은 추상적인 이념이나 가치의 차이가 아니다. 논쟁과 대화로 풀 수 없는 부족 간의 동물적 적대감과 생존 본능이다.

    영장류 중 호모 사피엔스만이 상징 기호로 ‘상상’(imagination)하는 연산 능력을 갖고 있다. 논리적 이성적 사고란 이 연산 기능이 언어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생물학적 기능’이다.

    인간의 논리적 사고 능력은 진화론적으로 극히 최근에 들어 개발된 아주 제한적인 기능이다. 불과 10만년이 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장구한 45억년 진화의 역사에서 찰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거의 모든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초기부터 유도해 온 호르몬 시스템을 제어할 수 없다.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선거에서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즉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엘리트 지식인의 보편적 착각이다. 지식인 역시 몰려다니는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족적 편견’을 지식인 어휘로 포장할 수 있을 뿐이다.

    유전자와 호르몬 시스템이 통제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운명’은 ‘말’(언어)로 가르치고 ‘말’(개념)로 이해하는 (서구식) 학교 교육으로 극복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이타심이 배양된 인격체를 교육하는 데는 동양의 옛 지혜가 과학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스리는 불교의 ‘수행’이나 유교의 ‘수신’을 통해서만 우리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 ‘진리'(언어 개념)를 이해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중도'(신체 호르몬의 균형)를 이루어야 인간은 유전 인자에 각인된 ‘동물적 충동’(비이성적 행동)을 극복할 수 있다.

    히틀러도 합법적인 민주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차지한 이유는 단 하나, 백인 유권자의 군중 심리를 조장하는 ‘알파 신호'를 낼 줄 알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조국 아테네의 대중 민주주의를 혐오한 이유이다.

    민주주의는 인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대로 반영할 뿐, 제도 자체에 어떤 모순이 있는 게 아니다. 정치를 하려다 실패한 플라톤은 현실에 부적응한 몽상가였을 뿐이다.

    선거는 한 쪽이 이기면 그냥 끝나는 부족 간의 정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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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시중 박사는 실리콘밸리에서 변호사 및 엔젤 투자자로 20년 넘게 활동했다. 최첨단 기술 시대의 윤리 철학 문제에 관심을 두고 미국에서 저술 활동을 해온 철학자이기도 하다. 국내 출간 저서로는 동물의 도덕적 문제를 다룬 <개를 위한 변명 - 보신탕과 동물권리론에 관한 철학적 성찰>과 초기 인터넷 혁명을 실리콘 밸리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미래를 전망한 <벤처@실리콘 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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