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로봇 1990년 첫 탄생… 훅과 슬라이스 등 모든 샷 가능
감정까지 복제하는 시대 도래하면 과연 따뜻한 동반자될까

2016년 3월15일. 인공지능(AI)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 황제 이세돌 9단에게 4대 1 승리를 거뒀다. 인간은 이전까지 AI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계산만 빨리하는 줄 알았다. 창의력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었다. AI는 능력 발휘를 위해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복잡하고 심오하다는 바둑에 도전했다.

바둑이 창의력을 흉내낼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착각에 불과했다. 인공지능은 바둑의 두터움을 수치화했다. 중앙의 두터움과 귀의 실리, 그리고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모조리 파악하고 내다봤다. 프로 바둑기사는 이제 AI로 연구한다. 바둑방송에서 AI는 실시간으로 승률을 알려준다. 이세돌이 이긴 1승은 인간이 AI를 상대로 거둔 최초이자 마지막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

퍼팅을 하는 골프 로봇 엘드릭의 모습. 엘드릭은 인간이 구사하는 모든 샷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 유튜브
퍼팅을 하는 골프 로봇 엘드릭의 모습. 엘드릭은 인간이 구사하는 모든 샷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 유튜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한 달 전인 2016년 2월4일. 엘드릭(LDRIC)이라는 골프 로봇이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 프로암에 나와 홀인원을 기록했다. 엘드릭은 ‘론치 디렉셔널 로봇 인텔리전트 서키트리 : Launch Directional Robot Intelligent Circuitry)’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면 ‘지능형 회로 장착 발사 로봇’쯤 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본명(엘드릭 : Eldrick)과 발음이 같다. 우즈에 대한 경의의 차원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즈가 1996년 프로 전향 기자회견에서 "헬로, 월드!"라며 말을 뗐던 것처럼 엘드릭도 "헬로, 월드!"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엘드릭이 홀인원을 기록한 건 스코츠데일 골프장의 16번 홀(파3)이다. 우즈는 1997년 이 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전장 160야드 안팎으로 세팅되는 이 홀은 2만명 쯤의 갤러리가 빙 둘러싸는 구성의 홀이다. 로마시대 검투장을 연상케 해 ‘콜로세움’으로도 불린다. 정숙을 강요하는 일반 대회와 달리 이 홀에서는 갤러리들이 맥주를 마시며 마음껏 떠들고 즐긴다. 선수들이 그린에 볼을 올리면 환호성을 내지르고 실수를 하면 온갖 야유를 퍼붓는다. 일종의 ‘골프 해방구’인 셈이다.

9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기록했던 우즈는 과거 인터뷰에서 "캐디 코완의 손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등 뒤로는 맥주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말했다. 엘드릭이 홀인원을 기록했을 때에도 환호성과 맥주 냄새가 콜로세움을 가득 채웠다.

통상 아마추어 골퍼들의 홀인원 확률은 1만2000분의 1, 프로골퍼의 확률은 3000분의 1로 알려졌다. 당시 엘드릭은 다섯 번의 시도 만에 홀인원에 성공했다. 엘드릭은 언제든지 원하면 다섯 번 정도의 샷으로 홀인원을 할 수 있을까. 거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엘드릭의 개발자 중 한 명인 진 파란테는 "엘드릭이 피닉스 오픈 프로암에서 기록했던 홀인원을 다시 재현하는 데는 대략 150번의 시도를 하면 될 것이다"고 했다. 100야드 거리에서는 100번 정도면 된다고 했다.

엘드릭이 홀인원을 기록한 후 갤러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  / PGA 투어 동영상 캡처
엘드릭이 홀인원을 기록한 후 갤러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 / PGA 투어 동영상 캡처
골프 로봇이 처음 탄생한 건 1990년의 일이다. 미국의 골프랩이라는 회사가 만들었다. 당시 타이틀리스트가 볼 테스트 용도로 이 로봇을 구매했다. 현재는 대다수의 용품 회사들이 골프 로봇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의 골프 룰을 관장하는 R&A와 미국골프협회(USGA)도 골프 로봇을 이용해 볼과 장비의 성능 테스트를 진행한다.

골프 로봇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건 2013년이다. 유러피언 투어가 로리 매킬로이와 골프 로봇을 주인공으로 '상상하는 모든 샷(Every Shot Imaginable)’이라는 광고 캠페인을 제작했다. 당시 로봇의 이름은 제프였다. 드라이빙 레인지에 여러 대의 세탁기가 놓여 있고, 그 안에 볼을 넣는 스킬 샷 대결이었다. 매킬로이가 아홉살 때 TV쇼에 출연해 드럼 세탁기 구멍에 웨지로 볼을 넣었던 걸 패러디한 것이었다.


2013년 유러피언 투어가 진행한 광고 캠페인에서 로리 매킬로이가 골프 로봇을 살펴보는 모습  / 유러피언 투어 유튜브 영상 캡처
2013년 유러피언 투어가 진행한 광고 캠페인에서 로리 매킬로이가 골프 로봇을 살펴보는 모습 / 유러피언 투어 유튜브 영상 캡처
엘드릭은 7.8마력의 힘에 최소 시속 1마일(약 1.6㎞)에서 최대 시속 130마일(약 209㎞)의 스윙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임팩트 각도를 조절해 훅이나 슬라이스 구질을 마음대로 칠 수 있고, 날씨와 바람 등 외부변수를 고려하며 볼의 출발 각도(론치 앵글)와 스핀 양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페어웨이와 그린을 놓치는 법이 없고, 세심한 손 감각이 요구되는 퍼팅도 가능하다. 우상이던 타이거를 넘어선지 오래다.

골프는 ‘멘탈 게임’이라고 한다. 양 귀 사이의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분노와 좌절, 기쁨과 희열, 그리고 슬픔과 걱정 등의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다. 언제 어떤 감정이 뚝 튀어나올지 모른다. 챔피언 조에서의 중압감은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몸을 얼어붙게 한다. 내상을 반복적으로 크게 입으면 ‘입스(yips : 샷 실패 불안증세)’라는 주화입마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통산 20승을 거둔 김경태도 ‘돌부처’란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퍼팅 입스에 걸린 적이 있다. 그는 "코스가 아닌 호텔방에서 연습을 하는 데도 퍼터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고 했다. 심한 경우 주화입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은퇴를 하는 선수도 있다.

인간과 달리 골프 로봇의 마음은 고요한 호수 같다. 갤러리들이 맥주캔을 던지며 홀인원에 열광하고 있을 때 엘드릭은 7번 아이언을 지면과 수평으로 든 채 고고하게 서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절제된 홀인원 축하’라고 했다.

2013년 공개된 제프는 얼굴이 없었지만 엘드릭은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AI가 감정까지 복제하는 시대가 온다면 어떨까. 고요한 호수에 감정이라는 돌덩이가 던져졌을 때 그 파장은 어디까지 퍼질까. 골프 로봇이 따뜻한 동반자가 될지, 차가운 적이 될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김세영 기자 sygolf@chosu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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